그 첫 번째, 쏟아내는 글
아침마다 쏟아내는 글을 쓴다.
쏟아내는 글이란 흔히 알려진 바로는 모닝 페이지다. <아티스트 웨이>에서 캐머론이 제안하여 미라클 모닝의 흐름을 타고 널리 퍼져나간 바로 그 모닝 페이지. 하지만 누군가 제안하여 널리 쓰인다 해서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은 멋없는 일. 나는 이 개념을 훔쳐다가 내가 아침에 하고 있는 일의 성격을 가장 잘 포착한다 싶은 이름을 붙였다. 그래서 ‘쏟아내는 글.’ 의미로는 카타르시스, 배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싸지르고 싶은 대로 싸지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는 내가 ‘글’이라는 형식을 너무 사랑한다. 그리고 약간 경외감도 품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 뒷담화를 하면서 욕할 수는 있다. 사용하는 언어가 품격 있기로 평이 자자한 나이지만, 특정 몇몇 정치인에 이르면 생각지 못하게 입이 걸어진다. 하지만 그 욕과 저주(대부분의 욕은 어느 정도 저주의 형태를 품고 있다)를 글로 쓰는 일에는 어쩐지 거부감이 든다. 저주 인형을 만들어 그 몸 안에 저주의 부적을 채워 넣은 다음 부정의 불길로 불살라 버리는 것만큼 본격적이지는 않다 해도 어떤 특정 인물에 대한 뒷담화나 욕이나 원망의 말을 어딘가에 완성된 글로서 구구절절 남겨 놓는 것이 어딘가 꺼림칙하다. 내가 글이라는 형식에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만큼 더더욱.
게다가 플루칙 선생님도 그랬든 인간의 감정에는 부정적인 것이 더 많기 마련이며,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쏟아내는’ 글에 온갖 부정적인 것들이 모이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러기가 너무나 쉽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저 싸지르고 싶은 대로 싸지르지 않는다. 일종의 형식과 존중과 사유를 부여한다. 어떤 사람에 대한 원망을 글로 남기려면 글로 쓸 가치가 있을 만큼은 고민한다. 그 사람의 신발에 발을 넣어 보고, 그 사람에 대한 내 감정이 부당하지는 않은지,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원망할 일을 다른 사람에게 쏟아내는 것은 아닌지 한번은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공정하고 온당한 판결 하에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그 ’ 원망들’은 정당한 절차를 밟아 엄숙하고 숙연하게 ’ 쏟아내는 ‘ 집필 의식을 거친 끝에 ’ 씻김글‘로 완성되어 암호가 걸린 아이클라우드 안에 영구히 저장된다…는 말이다.
아무튼 아침에는 일어나면 쏟아내는 글을 쓴다. 일어나자마자 누운 채로 창 밖을 올려다보며 머릿속의 온갖 생각들이 뭉게뭉게 피어나게 내버려 두다가 무언가 반짝 떠오르는가 싶으면, 혹은 무언가 푹 가라앉는가 싶으면, 하여튼 뭔가 의식에 뛰어드는 것이 있으면, 바로 그때!
이불을 개 놓고, 화장실에 가서 아침 볼 일을 해결하고, 텁텁한 입 안을 헹구어 낸 다음, 물 한 잔 차 한 잔을 옆에 두고 글을 쓴다. 쏟아내는 글. 오늘의 날짜와 이 시간 말고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글이다.
생각에 애써 그물을 쳐서 잡으려 하지 않고 그저 먼저 의식에 와닿은 한 가지 생각이 가는 대로 멀리멀리 따라가는 글. 매일 아침 내 무의식과 꼭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