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사과 파이

by 와리

맛있는 사과파이를 먹었다. 세모꼴로 잘라진 작은 사과 파이 속에는 가을의 향과 맛이 꼭꼭 눌러 담겨 있었다.

가을의 향과 맛을 한껏 느끼도록 만들어진,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레시피. 대량 생산의 편의에 따라 조작되지 않은, 본래의 의도 그대로를 담은 맛이다. 접시에 포크를 달각거리는 소리가 오래도록 울렸다.

굳이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을 만한 별다른 장식도 없고 특별하고 화려한 어떤 것도 없는 그 소박한 공간은 마치 현실에서 살짝 빗겨 있는 듯했다. 미닫이 창문 너머로 환한 햇살이 빛났지만 편안한 어둑함이 방 안에 드리워져 있었다. 마치 희고 늘씬한 진돗개가 하품을 하며 네 발을 뻗고 느긋하게 누워 있는 기분이었다. 공기 중에는 시나몬과 커피와 채소를 불에 굽는 듯한 뭐라 말할 수 없이 향긋한 냄새가 감돌았다.

마음이 편안해져서 별것 아닌 것에도 쿡쿡 웃음이 났다. 그곳에서는 내 목소리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울렸다. 목소리의 울림만으로 말의 의미가 좀 더 명료해지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그 공간에 어울리도록 소리를 높이지 않고 작고 비밀스럽게 웃었다.

그 툇마루 같은 곳에 걸터앉아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현실에서 벗어나, 그러니까 도망쳐 와서 잠시라도 그저 ‘여기, 내가, 있다'는 감각을 확인할 수 있도록.

달큰하고, 부드럽고, 향긋하게 흘러가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함부로 대해도 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약속해 주는 공간과 시간.

우리는 눈을 맞추며 쿡쿡 웃고, 그 은밀한 편안함을 확인하고, 우리가 서로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가끔, 정성과 마음을 담아 만든 음식은 이런 효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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