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야기 #4
나는 지금부터 당신이 내어준 숙제를 할 것이다. 그것은 나 스스로의 인생을 돌아보고 답을 적는 부끄러움의 시간을 팔아야 한다. 당신에게 무언가의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부끄러움을 팔겠다는 얘긴 아니었는데. 어쨌거나 나의 손엔 당신이 준 질문지가 들려 있고 나는 거절할 수 없이 맛있는 밥을 사 받았다.
당신을 도와주면 당신에 대해 더 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얻은 정보라곤 크래프트 비어를 좋아한다는 것 뿐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첫 만남에 모든 궁금증을 해결할 순 없지만 당신과 마주 앉기 까지 어렵게 낸 용기였는데 우리는 정말 사적인 얘기는 하나도 하지 못하고 공적인 얘기만 잔뜩 늘어 놓았다. 솔직하게 아쉽다고 이야기 했다. 그때 당신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 나는 모르지만 곤란한 표정을 보아서는 시덥잖게 느껴졌나 보다 생각해서 더이상 아쉽다는 얘기는 꺼내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몇년간의 회사 생활을 해봤다고, 일에 관한 미팅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4시간이 지나도록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업무 얘기만 잔뜩 했으니 말이다. 당신과 나는 비슷한 성취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서로에게 기름을 부어주기 좋은 관계인 건 맞는데 불은 기름만 붓는다고 잘 타는 것인지. 여러가지 다른 것을 같이 부으면 더 잘 탈것 같은데.
당신에 대해서 또 한가지 알게 된 것이라면 소소한 선심을 받는것도 빚을 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선심이란 놈은 쓰는 것이지 받는 것은 아니다!라는 고집스런 사내대장부 같은 모습에 좋게 말하면 착한사람 나쁘게 말하면 더럽게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에게 들었던, 선심도 받아본 사람이 받을 줄 안다고 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그 속에 시꺼먼 흑심이 있다고 의심하다보니 점점 더 받지 못하는 것 이라는 말이 생각 났다. 나의 소소한 선심에는 소소한 흑심이 들어 있었으니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궁금했던 점은 인터뷰 관련 업무 미팅이 끝나고 나서였다. 분명 일은 다 마무리 했고 더 이상 나눌 업무도 없는데 둘 중 아무도 자리를 일어나지 않았다. 신기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느낌의 교류인가. 아니면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인가. '혹시'라는 단어로 시작되는 생각은 대부분 희망고문이라는 느낌이 들어 먼저 일어나자고 권유 했지만 당신은 친절하게도 내 저녁 일정이 시작되기 전 밥이나 한끼 같이 먹자고 했고 일정이 빠듯해 고민은 했지만 응했다.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설문지에 응답하는 조건이 걸린 밥이었다. 식사자리에서 약간의 사담이 오가긴 했지만 그 뿐이었다.
당신은 아쉬움을 만드는데 천재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음 미팅에서도 아쉬움을 남길지 그 아쉬움을 즐길지는 모르겠다.
빠른 시일 내에 당신과 나는 또 업무를 진행 할 것이고 또 약간의 사담을 나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