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는 만나면 별거 아닌 걸로 와르르 웃었다. 매일을 꼬박 만났는데 그렇게 만나는 밤 시간이 너무 즐거워 새벽이 될 때까지 붙들곤 했다. 다음날의 일정이 빡빡해 아쉬워하며 잠이 들었던 게 셀 수 없이 많다. 이 정도 나눴으면 소재거리가 떨어질 만도 한데 평소에는 별로 말도 하지 않는 내가 어떻게 그렇게 말을 많이 하는지 스스로도 놀랐다.
사람을 이야기가 아닌 장면으로 기억하는 나였기에 당신과 쌓여가는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나와 쌓아가는 이야기가 당신에게도 쌓여간다는 게 재밌는 포인트였고 그것이 나와 같은 이야기라는 것도 또 하나의 포인트였다. 덕분에 다른 사람과도 언젠가 이렇게 이야기를 쌓아보려는 용기도 조금 생겨났다.
신기한 사람이었다. 어떤 날은 아이가 되었다가 어떤 날은 노인이 되기도 섹시한 커리어우먼이 되기도 했다. 가끔은 강아지 같기도 하고.
아이의 모습도 날마다 다른 모습이었다. 사춘기의 모습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삐뚤게 보기도 하고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사탕이라도 하나 쥐어주고 싶은 사랑스러운 모습이기도 했다.
그 모습을 기억하고 싶어서 일기장 첫 줄을 당신으로 시작했다.
자연스레 일기장 절반이 당신의 이야기로 채워졌고 그 아래는 나의 것으로 채워졌다. 매일 쓰지는 못했지만 그렇게나마 기록해놓으니 사람들이 말했던 일기를 돌아본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알게 되었다. 늘 나의 일상은 반복적이기만 해서 할 이야기가 없다고 툴툴거렸는데, 돌아보니 생각보다 다양하고 특별한 것으로 채워져 가고 있었다. 스스로만 몰랐던 거다.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거나 누군가에게는 겁나서 말하지 못했던 철학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다른 철학이어도 당신은 나를 충분히 이해해주었고 배려있는 토론이 지속되었다. 당신의 그런 배려가 고마워서 나 또한 예의를 갖추어 대하였고 대화가 지속될수록 한층 더 생각의 폭이 넓어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이 성장하는 건 그 시간을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속도가 달라진다는 생각을 했다. 당신 덕분에 나의 생각은 많이 성장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의 일정에 의해 대화 시간이 밤에서 저녁으로 낮으로 약간씩 변동이 있었고 하는 일이 바빠 가끔 놓치기도 하지만 서로가 대하는 마음은 달라지지 않아서 매일의 꽃 선물을 받는 기분으로 당신과의 이야기를 즐기고 있다. 그 새벽을 함께 한 만큼 감성적이진 않지만 감정을 담아서. 대화가 끝날 때는 '이따 만나요'라는 인사와 함께 다음의 만남을 기대하며 일기장 속 첫 줄을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