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투약일기 #2
전날 약간의 알콜+너무 늦은 시간에 복용해서 잠을 못 잔 거 같아서 9시에 투약을 하고 누워서 잘 기다렸다. 잠드는 건 어렵지 않았는데 여전히 한 시간에 한 번쯤 깨고 3시 40분에 인스타그램을 확인했다가 열받는 일이 생겨서 벌떡 일어남.
그런데 너무 신기했던 건 안 졸리다는 거다.
원래 몸을 가눌 수가 없이 피곤해서 일어나도 계속 소파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시간마다 일어나서 애들을 깨우고 물통을 싸고 설거지하고 샤워를 하고 다시 또 깨우는 사이사이에 계속 소파를 찾았다. 그런데 어제는 일어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슈퍼우먼처럼 엑셀로 영수증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고 애들을 깨우고 출근해서 나왔다. 신기하다.
그리고 돌아보니 나를 깨우게 한 "열받는 일"도 그 순간 잠깐이지 나를 계속 잡아먹지는 않았다. 그리고 오후시간에 나의 어려움에 대해서 다른 분께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울지 말아야지 다짐했는데 진짜 울컥울컥 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너무 신기하다. 나의 심경을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억울한 마음 없이 차분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니. 이야기를 하면서 약간 상기된 느낌이 들기는 했으나 얼굴이 빨개지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나는 늘 짜증과 화를 참고 견디면서 지냈는데. 짜증이 안 날 수도 있다니. 짜증 내는 게 아니라고 화내는 거라고 합리화시키고 나의 화를 정당화시키려고 노력했는데 그런 감정적 동요가 없어도 되는 거라니!!! 살아온 삶이 너무 허무했다. 일찌감치 치료받았다면, 내 학창 시절, 미친 듯이 싸웠던 결혼초기,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부단히 노력했던 감정적 소용돌이를 덜 겪어도 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에 일어났으니 피곤한 게 당연한 건데, 졸리다는 느낌은 있었는데 졸리진 않고 오히려 말똥 댔다. 남편이 상태를 듣더니 과각성 상태 아니냐고 물어봤는데 그건 잘 모르겠고 여하튼 자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눕는 게 좋을 거 같아서 9시에 세 번째 약 먹고 11시쯤에 자려고 누웠다. 그런데 자면서도 스위치가 안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불 켜진 방에서 잠든 것 같은.
새벽에 천둥번개가 쳐서 잠을 설치기도 했고 여전히 한두 시간에 한 번씩 깨긴 했지만 새벽 3시쯤부터는 스위치를 끄려고 작정해서 7시까지 잤음. 저기압 때문인지 몸이 무겁고 여전히 몸이 으슬으슬 하지만 오히려 몸을 감싸던 화와 열기가 가라앉아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하루도 잘 지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