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서로가 최선의 선택지였음을 바라는 집사의 바람을 가득 담아서,
가게 안을 뒤적여 작은 박카스 상자에 너를 담아주시며, 진짜 잘 선택했다며 탐욕스러운 손으로 돈을 세던
가게 주인에게서 너를 받아 돌아오던 차 안에서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루종일 진열장 안의 인형처럼, 좁은 공간에서 맘껏 뛰지도 못한 채로 그저 구경당해야만 했던 너일 텐데,
그저 사람이면 좋았던 걸까? 아니면 그게 너만의 필사적인 생존 방식이었을까?
처음 보는 나의 손을 핥으며 삼 센티도 되지 않던 작은 꼬리를 붕붕 소리가 날 정도로 흔들며,
집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꼬리를 팔랑이며 쉴 새 없이 여기저기를 핥아대던 너를 품에 안고 돌아왔다.
작은 아크릴 상자에서 벗어난 너에게 30평이 조금 넘는 아파트는 마치 끝이 없는 우주의 공간 같았을까?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작은 너의 존재를 과시하는 모습에 정말이지 오랜만에 행복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 울리는 웃음소리가 신이 났는지 그렇게 거실 여기저기를 폴짝이며 뛰어다니는 너를 보며
그렇게 미련 가득하게 품에서 놓아주지 못하던 하양이를 마음속에서 떠나보낼 수 있게 되었다.
각자의 소중한 가족의 품에서 그렇게 서로 가끔 그리워하더라도 늘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작은 해피 바이러스 하나가 빈 공간을 완벽한 따스함으로 채우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하양이를 키웠던 2년의 시간 동안 우리 가족이 2년 동안 경험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경험할 수 없던' 것이 있었다.
바로 "이름"을 지어주어야 한다는 것.
처음에는 오만가지 이름이 후보에 올라왔던 것 같다.
흔하디 흔한 해피부터 잘 뛰니까 통통이? 알록달록하니까 알록이? 달록이?
아니면 바둑이? 아니다. 아, 이건 너무 촌스러운가?
여러 가지 이름이 두서없이 내뱉어지던 순간, 당시의 나에게는 미쳐 살던 또 하나의 존재가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어벤저스, 그리고 아이언맨이었다. 장난기도 많고, 사고뭉치이지만 천재였던 캐릭터 토니.
우리 집에 온 순간부터 짓궂은 웃음으로 여기저기 사고 치고 장난을 걸어오던, 서툰 배변교육에도 한 번에
소변패드에 볼일을 보던 요 꼬맹이에게 아주 딱인 이름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마쳐지자, 그 뒤로 이름 짓기는 아주 일사천리였다.
"토니 하자! 토니! 아이언맨처럼 재미있고 밝고 웃음을 주는 존재니까! 어때?!"
그렇게 가족 모두의 만장일치를 거쳐 너의 이름이 정해졌다.
자신의 이름이 생긴지도 모르고, 그저 방방 뛰면서 작은 사료를 오독오독 씹어먹던 너를 품에 안고
말해주었다. 너는 이제부터 토니라고, 엄마의 성을 따서 너는 이제 토니 황이라고 말이다.
이름이 지어진지 일주일이 지나갈 무렵, 아직은 낯설기만 할 토니라는 이름을 네가 알아주기를 바라며
하루에 수백 번, 입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이름을 부르고 불러주었다. 네가 하루빨리 알아듣기를 기대하면서.
"토니야! 밥 먹자!"
"토니야, 이게 뭐게? 새로운 장난감이지!"
"토니야 어디 있어? 토니야?"
"토니야! 이제 여기다가 쉬야하는 거야 쉬야!"
"토니야, 엄마온대 엄마! 우리 마당으로 마중 나가볼까?"
토니라는 말에 귀를 쫑긋거리며 알아듣기 시작하는 너를 바라보면서, 매일매일 더 나은 집사가 되기 위해서 아기 강아지 키우는 방법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검색해 보며 서툴지만 천천히 너에게 여러 가지 알려주었고,
하루가 다르게 점점 자라는 너를 보면서 이런 게 행복이지 웃음꽃을 피우던 일상을 보내며,
빨리 야자가 끝나길, 모의고사 문제집에 토니 이름을 끼적이면서 우리 가족은 여름과 가을 두 계절을 지나
그렇게 겨울의 초입에서 토니의 예방접종을 위해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하던 때였다.
"누나, 토니가 너무 심심할 것 같아."
남동생이 문득 예방접종을 마친 뒤, 주말 산책을 끝내고 돌아가던 차 안에서 운을 띄우기 시작했다.
요는 학생 삼인방과 맞벌이를 하던 우리 집 환경에서, 토니가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미안하다는
마음에서 나온 말이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7시에 스쿨버스를 타고 등교하면 밤 10시가 넘는 시간에 하교를 했고,
중학생이었던 동생 둘도, 학교와 학원을 마치면 엄마의 퇴근시간인 6시를 넘어서는 시간에 돌아왔기 때문에,
꼬박 8시간 이상을 토니는 하루종일 우리만 기다리는 게 미안하고 안쓰럽다는 것이었다.
요즘에는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댕댕이 유치원 같은 장소가 없던 시절이다 보니,
토니가 외롭지 않기를 바랐던 우리에게 남은 가장 쉬운 선택지는 단 한 가지뿐이었다.
바로, 토니에게 짝을 만들어주는 것!
지금 생각해 보면 무지했던 초보 집사인 우리에게 타이밍이라는 게 참 얄궂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당시 토니가 다니던 집 앞의 작은 동네 병원의 원장님께서 포메 분양을 하고 계셨다. 처음 보는 강아지에게도 그저 신이 나서 꼬리를 붕붕 흔들며 살갑게 대하는 토니를 바라보던 원장님께서 하나보단 둘이 낫지 않겠냐는 말을 꺼내오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장삿속이었겠지만, 바보 같은 집사가 그걸 알아챘을 리가.) 안 그래도 토니 짝을 만들어줄까- 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던 우리 가족에게는 더없이 솔깃한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토니를 키우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한 마리 더 키우는 것 정도는 괜찮을 것 같은데- 라며 그저 토니 짝 만들어주기에 열이 올라있던 우리는 큰 고민의 시간 없이 원장님에게 그러겠노라 말씀을 드리면서 일주일 만에 포메 여자 아기를 분양받았고, 그렇게 토니에게는 합의되지 않은 반 강제 '여자'친구가 생기게 되었다.
그 안일함이 어떤 파도가 되어 우리 가족을 덮치게 될지는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안녕 인사해, 토니야. 얘는 네 짝이 될 페퍼야!"
p.s. 정말 많이 발전한 요즘의 반려견 인식에 염려가 되어 코멘트를 작게 남겨봅니다.
강아지 입양은 정말 신중하게 생각하고 데려오시기 바랍니다. 당시의 무지했던 저는 몰랐지만, 강아지는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라는 점과, 분양을 통해 새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소중한 생명을 데려오는 결정은 꼭 신중하게, 나의 삶을 포기할 수 있다는 각오가 서는 순간 가족으로 맞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