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내가 최선이면 좋겠다.

서로에게 서로가 최선의 선택지였음을 바라는 집사의 바람을 가득 담아서,

by 타이타

14. D-3, 불안과 기대 사이.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원장님한테 가."


2박 3일의 출장을 위해 무거운 발걸음으로 현관을 나서던 엄마가 우리 삼 남매에게 건넨 마지막 당부였다.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느리게 닫히던 현관문 틈새로 보이는 엄마와 우리 삼 남매를 집어삼킨 감정은 단 한 가지였을 터였다.


'하 씨 진짜, 불안해 죽겠네.'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아직은 면허가 없던 나를 포함한 미성년자 동생 둘은 운전대의 'ㅇ'자도 잡아본 적 없는 '무면허인'이었다 보니, 급작스럽게 병원으로 가야 할 경우 운전을 할 수도, 할 수 있는 수단도 없는 상황이었다. 혹여나 새벽에 진통이 오기 시작한다면 텅 빈 도로에서 택시를 붙잡는 것도 아득히 꿈만 같은 일이었다. 그렇다 보니 우리에게 남은 최후의 수단은 원장님께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하는 방법뿐이었다. 다행히 지바의 임신 소식에 원장님 나름대로의 묘한 책임감을 느끼고 계셨는지 흔쾌히 수락해 주신 원장님은, 상황을 봐서 시간 상관치 말고 전화를 달라는 말을 끝으로 다소 부담스러웠을 우리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셨다. (이 글을 빌어 무언의 감사를 전해봅니다..)


현관 너머로 엄마가 사라지자마자,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지바의 출산 준비를 위해 비워둔 안방 책상 아래쪽에 산실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벌써 64일째가 되었다 보니, 언제 진통이 와도 이상하지 않은 지바를 쓰다듬는 여동생을 뒤로하고 햇볕에 뽀송하게 말린 이불들을 포개어 바닥에 깔아놓고 그 위로 커다랗고 푹신한 소변패드를 겹쳐 깔아 놓았다. 혹시라도 축축함에 불편함을 느낄까 싶어 미리 구매해 둔 대형 소변패드가 톡톡히 제 몫을 해주기 바라며 나와 남동생은 책상 위로 순서를 구별하기 위한 색실, 소독을 위한 뜨거운 물을 받아둘 양푼, 탯줄을 자를 가위, 분유와 주사기 등등 필요한 물품들을 가지런히 늘여 놓았다. 우리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한 지바의 분만실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지바는 어때? 진통 아직 없지?"


교육이 끝나자마자 득달같이 걸려온 전화 너머로 지바의 상태를 물어오는 엄마의 목소리에선 오전의 불안이 여전히 느껴지고 있었다. 지바의 뱃속에서 태동이 꽤 세게 여러 번 움직이기는 했지만, 다행히도 지바는 큰 진통 없이 오늘치의 사료와 간식들을 배불리 먹고 부른 배를 옆으로 뉘인 채로 졸린 눈을 끔뻑거리며 막 잠에 빠지는 중임을 전하며, 영상통화로 화면을 전환해서 도롱도롱 코를 골기 시작하는 지바를 화면 너머로 비춰주었다. 제법 안정적인 지바의 상태를 눈으로 확인한 그제야 살짝 안심이 되었는지 가벼운 한숨을 내쉰 엄마는 다시금 지바를 잘 지켜보라는 말을 끝으로 통화를 끊었다. 시린 밤공기가 베란다 틈으로 꾸물거리며 새어 들어오기라도 하는지 제법 썰렁한 기운이 맴도는 거실의 보일러를 켜 온도를 맞추고, 가장 따뜻하게 온기가 도는 장판 위로 지바를 옮겨 놓았다. 뱃속의 아가들에게도 따뜻한 온기가 전해질 수 있도록 털을 밀어 휑한 배에 이불을 덮어 가만가만 쓸어주며 옆에 누워 잠을 청했다.


그렇게 지바의 출산이 임박한 64일의 밤이 조용하게 지나가고, 65일의 아침이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했다.




65일의 아침을 깨운 건 끼잉-하는 지바의 울음소리였다. 온 청각이 지바의 작은 움직임이 내는 소리에 쏠려있다 보니, 작은 칭얼거림에도 정신이 번쩍 든 우리 셋은 정말이지 3초 만에 벌떡 일어나서 지바를 바라보았고, 하품을 하면서 난 소리였음을 깨닫고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풀썩 베개로 쓰러졌다. 짙게 내려온 다크서클이 여실한 서로의 얼굴이 지난밤 한숨도 편히 자지 못했음을 반증하고 있어 새어 나오는 어이없는 웃음소리를 시작으로 65일의 아침이 지나가고 있었다.



"진짜 신기하네, 지바.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곧 아기 낳을 것처럼 낑낑거려 놓고."


엄마가 출장을 위한 짐을 싸는 주말에도 배가 아리는지 작게 낑낑거리던 지바였는데, 엄마가 출장을 나선 순간부터는 한 번의 낑낑거림도 없었다. 마치 엄마가 돌아오는 날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제법 움찔거리는 꼬물이 셋의 태동을 제외하고는 신기할 정도로 평온한 오후가 지나가다 보니, 온갖 긴장을 사서 하고 있던 긴장이 살짝 풀린 여동생이 내뱉은 말이었다. 지바의 진통이 불러올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고려하며 불안의 씨앗을 한껏 싹 틔워 꽃까지 활짝 피워낸 우리의 바보력에 코웃음이라도 치는 것처럼 지바는 한 없이 안정적인 상태로 제 몫의 밥까지 깨끗하게 비워내곤 간식 상자 앞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식욕까지 엄청나다니깐? 진짜 웃기는 짬뽕이야, 지바가."


틈틈이 지바의 상태를 물어오던 엄마 역시도 신기하다는 말투로 내 말에 긍정을 표했다. 정말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지, 정말 66일을 꽉 채우려고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지바의 상태에 이미 꽃까지 활짝 피웠던 불안은 어느새 시들시들해져 호기심의 싹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었다. 기승전 신기하네-라는 말을 끝으로 통화를 마치고 다시금 지바의 산실의 이불을 톡톡 털어 정비하고, 출산 용품들을 다시 한번 정리해서 늘여놓고 있자, 언제 들어왔는지 모를 지바가 산실에 앞발을 들이밀고 킁킁거리며 여기저기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그런 지바를 향해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물끄러미 지바를 바라보며 대답이 돌아올 리 없는 질문을 쏟아내었다.


"지바야, 너 진짜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아? 엄마 기다리는 거야? 배는 안 아파? 너 여기서 애 낳아야 하는데 맘에 들어? 아프면 언니 꽉 물어서라도 깨워야 한다?"


어느새 몸을 동글게 말고 자리를 잡아 잠을 청하는 지바는 내 질문을 자장가라도 삼는 것처럼 무거운 눈꺼풀을 끔뻑이다가 이내 완전히 눈을 감았다. 도롱도롱 소리를 내는 지바에 조용히 그 옆으로 머리를 뉘인 채로 피곤한 눈을 감고 그렇게 65일째의 밤도 안온하게 흘러가고,


대망의 66일째 아침, 1월 23일의 해가 밝아왔다.


아침 11시도 되지 않았는데 삑삑거리는 도어록 소리와 함께 엄마가 돌아왔다. 간단한 조례만 마치고 광속으로 액셀을 밟고 돌아온 엄마는 배를 깔고 드러누워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드는 지바를 품 안 가득 끌어안으며 자신을 기다려준 지바에게 연신 내 아기, 아이고 내 새끼.라는 말을 반복하셨다.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도 그날 오후 6시, 지바가 첫 산통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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