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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단편소설들을 접한 적이 있다. 동네 도서관에서 도서대출증 카드를 내고 책을 빌리는 걸 좋아하던 어린 시절이었다. 단편들 중에 접한 ‘검은고양이’ 이야기는 내게 꽤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더해지는 으스스함에 책을 덮어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그의 소설은 결코 덮을 수 없는 매력을 지녔기에 완독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고양이를 무서워했다. 그 큰 두 눈으로 어디선가 울음소리를 내며 나를 따라올까 무서웠었다.
공포영화 ‘고양이’를 봤던 기억도 어린 내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길에서 만난 고양이와 되도록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고양이가 그토록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주요 업무 중 하나가 ‘고양이 챙기기’였다. 카페의 터줏대감처럼, 자기 집처럼 드나들어서 사장님께서 밥도 챙겨주고 놀아주기도 하던 고양이였다. 길고양이라 조금은 사나울까 싶어서 ‘밥을 주다 내 손을 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조심조심 다가가서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옆으로 다가와서 친한 척을 하는 고양이의 모습에, 이미 나는 고양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던 것 같았다.
곁을 주긴 하지만 먼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내가 생전 처음이자 가장 많이 친해진 고양이는 그랬다. 조금은 멀리서 눈을 맞추고 예쁘다고 아껴주는 시간이 쌓이면서 다가왔던 친구였다. 물론, 그 과정 속에 날카로운 발톱 생채기 몇 개는 따라왔지만!
앉은 채로 무언가에 집중할 때 고양이의 뒷모습은 동글 몽글한 구름 같다. 한번 만져보고 싶은데 그러면 어느샌가 날아오는 냥냥 펀치를 생각하면 눈으로 먼저 가득 만져보게 된다.
예상치 못한 그림을 선사하는 고양이들이 사랑스럽다. 카페 마감을 끝내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려던 길, 카페 구석에 있던 큰 화분에 누워서 아늑하게 쉬고 있는 치즈냥이를 본 적이 있다. 그 큰 눈이 졸리다고 꿈뻑꿈뻑 감기는 모습을 보다 보니 퇴근을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예상치 못한 귀여움이 나는 너무 좋다.
마감을 하다 보면 자주 마주치는 치즈냥이. 어느 날은 벤치에 앉아서 포옥 잠자고 있던 고양이 옆으로 슬쩍 나도 따라 앉았다.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더니 기지개를 켠다. 기지개를 켠 솜방망이로 유유히 내 무릎 위로 걸어와 폭- 하고 눕는다! 나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조용히 핸드폰의 카메라를 켜 이 영광의 순간을 기록으로 남겼다. 말로만 듣던 무릎냥이가 바로 내 무릎 위에 있구나!
원래는 ‘반려견파‘ 였던 나다. 오랫동안 강아지를 키워오기도 했어서 그들이 좋았다. 그런데 이제는 ’반려묘‘의 삶도 궁금해졌다. 그러나 절대 쉬이 집사가 되고 싶진 않다. 내가 충분히 그들의 모든 생을 끝까지 지킬 여력이 되는 사람이 되기 전까진 그 어떤 생명도 함부로 키우진 않을 것임을.
내일도, 길을 거닐며 만날지도 모르는 사랑스러운 존재들이 있길 바란다. 생의 차원에서는 하루라도 더 행복한 생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멀리서나마 그들에게 사랑을 보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