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첫째의 최근 취미는 ‘토론’이다. 아빠와 목욕을 하면서 30여 분 주제를 정해 토론을 하는 ‘놀이’의 일종인데, 주제는 주로 딸이 정한다. ‘왜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하나’, ‘누나는 동생에게 얼마만큼 양보를 해야 하나’와 같은 생활밀접형 주제가 대부분이다. 따뜻한 물에 몸을 푹 담근 채 아빠와 도란도란 자신의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런데 요즘 우리 딸의 가장 큰 관심사가 새로 생겼다. 바로 ‘대선’.
엄마 직업이 직업인지라 국회의원이 뭐 하는 사람인지, 대통령은 누구인지, 현 여당이 어디고 현 야당이 어디인지 등 정치 기본 지식(?)은 이미 어느 정도 익힌 상태. 북한에도 관심이 많아 어린이 북한 관련 도서들도 많이 사다 줬고, 미국 대통령이 바뀔 때도 뉴스를 챙겨볼 정도로 우리 딸은 ‘정치’에 관심이 많다. 겨우 7살이지만 국회의원이 300명이고, 지역구와 비례대표로 나뉘어 뽑힌다는 걸 술술 얘기할 때는 좀 깜짝 놀라곤 한다.
딸과 얼마 전, 대선 후보 TV토론을 함께 시청했다. 토론도 대선도 그녀의 관심 분야다 보니 TV토론을 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저도 보고 싶어요!” 소리를 질러댔다. 7살 딸과 대선 후보 TV토론을 같이 시청하는 모습이 웃기긴 했지만, 나도 일 때문에 봐야 했기에 그냥 함께 앉아 시청하기로 했다. 덩달아 4살짜리 꼬맹이도 나란히 소파에 앉았다.
‘7짤‧4짤 남매’는 그렇게 처음으로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기 시작했다. 딸은 토론을 보며 계속 이것저것 질문을 쏟아냈다.
“엄마, 저 후보는 어느 당 대표 후보예요?”
“엄마, 근데 왜 저 아저씨는 대답을 못하고 있어요?”
“엄마, 근데 시계가 왜 계속 나타나요?”
“엄마는 알이백이 뭔지 알아요?”
“엄마, 왜 여자는 한 명이고 남자는 저렇게 많아요?”
아이 눈에 비치는 대선 후보들의 토론이 생각보다 흥미로웠나 보다. 10분 앉아서 보면 잘 버티는 거겠거니 했는데, 첫째 딸은 토론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물론 4살 아들은 온몸을 베베 꼬아대더니 어느 순간 놀이방과 거실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딸은 토론 초반에 “엄마! 000 아저씨가 엄청 잘생겼네요! 난 저 아저씨가 대통령이 되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차마 어떤 후보인지 밝힐 수는 없지만, 난 딸의 취향을 우려(?)하게 되었다. 그 후보가 잘 생겼다니... 잘 생겼다니...............
그런데 토론을 거의 마지막까지 지켜본 우리 딸은 “엄마, 처음에 말했던 후보 말고 다른 후보 뽑을래요.”라며 선택을 변경했다.
“왜? 000 후보가 아니고?”
“네. 000 후보보다 @@@후보가 훨씬 똑똑해요.”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똑똑한 사람이요.”
“왜 똑똑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왜냐면 똑똑해야 우리나라를 더 잘 다스릴 수 있으니까요”
굉장히 단순한 논리인데, 난 순간 무릎을 탁 쳤다. 그렇지, 대통령은 똑똑해야지.
똑똑하다는 사전적 정의는 <1. 또렷하고 분명하다. 2. 사리에 밝고 총명하다. 3. 셈 따위가 정확하다.> 이다.
한 나라를 이끌 대통령은 분명 똑똑해야 한다. 양당 네거티브 공방으로 대선 판이 최악으로 얼룩지는 이 시점, 우리 딸의 한 마디에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의 눈은 가끔 복잡한 사안을 단순 명료하게 바라보는데 큰 도움이 된다.
첫째는 매 선거 때마다 엄마와 함께 선거장을 찾는다. 그리고 엄마의 선거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함께 꽃집에 간다. 멋진 선거를 한 우리 가족에게 셀프 선물을 하기 위해서다. 우리 아이들은 아직 어리지만 선거의 중요성과 선거의 소중함을 알려주고 싶어 시작한 이벤트인데, 생각보다 아이들에겐 강렬하게 기억됐나 보다. (강추!)
지난 총선 때도 어김없이 선거를 하고 꽃집을 찾았다.
그때는 파란 꽃(딸의 선택일 뿐, 부모의 지지 당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ㅎㅎ)을 사들고 집에 왔더란다. 아이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늘 엄마랑 선거하러 다녀오니 어땠어?"라고 묻자 "얼른 커서 저도 선거해보고 싶어요!"라고 대답하던 눈빛이 초롱초롱했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