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연휴. '토일월' 3일 연속 쉬는 연휴가 2주 연속 이어지며 '연휴 맞아 가을 즐기는 나들이객' 같은 기사가 쏟아져 나오는데, 난 그 모든 연휴 내내 일요일·월요일 근무를 해야 한다.
7살 딸과 4살 아들은 그런 엄마의 휴일근무를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이미 매주 '토일' 중 하루는 꼭 근무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편은 이번 황금연휴 내내 독박육아를 하고 있다. 연휴가 싫을 만하다. 난 그저 죄인이 된다.
7살 난 딸은 유치원에 가지 않는 날이면 아침마다 아빠에게 "오늘은 어디가?"하고 묻는다. 남편은 어린이 박물관, 체험전시관, 여행 핫플레이스 등을 예약해 아이들을 데리고 다닌다. 혼자 미취학 아동 둘을 데리고 쉬는 날마다 여행을 다니는 걸 보면 대단하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다. 가끔 '엄마 없는 애들'로 비쳐 할머니들이 안쓰러운 눈빛을 보낸다는 말을 들을 땐 헛웃음을 쏟아내기도 했다.
지난 주말에는 KTX를 타고 아빠와 딸 아들 셋이 강원도 양떼목장으로 여행을 떠났다. 1시간 반 남짓 기차를 타고 가서 역에 내려 렌트해놓은 차를 타고 강원도 당일치기 여행을 한 건데, 아이들은 여행 다녀온 이야기를 한참을 하고 또 했다. 그만큼 행복했고, 또 즐거웠다고 말이다.
남편은 근무 중인 아내에게 그런 아이들의 사진을 전송한다. 파란 가을 하늘 아래 양떼목장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사진을 받아보며 난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든다.
이게 흐뭇해할 일인 건가?
저 사진 속에 엄마는 없었다.
아이들의 "오늘은 어디가?"라는 질문 속에도 엄마는 없었다.
엄마는 당연히 일하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의 유년 시절 추억 속에 엄마는 늘 바쁘고, 바쁘고, 또 바쁜 사람일 뿐이었다.
얼마 전, 유치원 대면 상담 기간이 다가와 가능 시간을 가정통신문으로 적어 보낸 적이 있었다. 다행히 금요일 쉬는 날 대면 상담이 가능해 나는 상담 가능 요일로 금요일에 동그라미를 쳐서 보냈다. 그런데 그날 오후 늦게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 **이 담임 선생님이에요. 혹시 어머님께서 금요일에 대면 상담 가능하다고 적어 보내주셨는데, 가능하신 게 맞는 거죠?"
당연히 가능해서 동그라미 쳐 보낸 거라고 하자,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이가 엄마 바빠서 절대 못 올 거라더라고요. 엄마는 취재하느라 바빠서 상담을 올 수가 없다고요. 그래서 혹시나 해서 전화드렸어요. 가능하시다는 거죠?"
머릿속이 그 순간 멍-해졌다. 7살 딸아이에게 엄마는 늘 취재를 하느라 바빠 유치원에 올 수 없는 사람이었나 보다.
전에는 이런 현실이 슬픔으로 다가왔는데, 지금은 슬픔을 넘어 이게 과연 맞는 건지 근본적인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리 좋은 기사로 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든다 한들, 당장 이 아이의 추억 속에, 현실 속에 엄마가 없다면 그게 무슨 소용인 걸까.
최근 통계를 보면 MZ세대들은 높은 연봉보다도 '워라벨'을 중요시 여긴다고 한다. 일부 선진 IT기업들은 이미 주 4.5일제·격주 주 4일제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그러나 언론사는 여전히 주 6일을 시키고, 주말근무가 당연한 문화 그대로다. 시간이 멈춘 듯하다. 그렇다고 연봉이 높지도 않다. 사회적 지위 역시 많이 추락한 것이 사실이다. 그저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치고 진실을 전달한다는 '사명감' 하나만 바라보며 이 일을 이어가기에 현실은 너무도 가혹하다.
얼마 전 기업으로 이직한 한 여자 선배와 밥을 먹었다. 목요일에 만나 밥을 먹었는데, 내일은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간다고 했다. 다음날은 토요일이 아닌 금요일인데 휴가를 내시는 거냐 했더니, 매주 금요일은 오전 11시 반 퇴근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예전에는 시간이 없어서 아이들과 놀아주질 못했는데, 이젠 돈이 없어서 더는 놀 수가 없어. 지난달에만 여행 다니는데 100만 원은 쓴 거 같아"
내 현실과는 너무나 다른, 이직한 선배의 달라진 현실. 솔직히 부러웠다.
난 아직도 기자가 아닌 내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다. 늘 기자가 되고 싶었고, 지금도 기자로 사는 내 '업'에 만족도가 높다. 그래서 지금껏 버텨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간다면, 과연 얼마나 이런 삶이 지속 가능할지 의문이다. 여전히 휴가를 쓸 때면 윗선배들의 눈치를 봐야 하고, 연휴에 연달아 쉬는 게 죄스러운 문화 속에서 아이 둘을 키우는 워킹맘은 설 자리를 잃어간다.
언론계가 사양산업이 된다면, 이는 단순히 SNS를 통한 1인 미디어의 급증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최근 기자직 지원자가 크게 줄어 모든 언론사들이 고심하고 있다는 기사도 나오는 상황. 삶과 일의 양립이 가능하지 않다면, 결국 양질의 인력은 다른 직군으로 빠져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