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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랜드
Nov 24. 2022
달콤하지만은 않은 모녀의 비밀 일기장
워킹맘 기자의 삶
우리 딸은 눈을 뜨면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 엄마를 맞닥뜨린다. 혹은 이미 출근해 없는 엄마를 부른다.
운 좋게 아직 출근하지 않은 엄마를 만나면 곧장 이렇게 묻는다.
"엄마, 오늘도 늦게 와?"
이런 아침 패턴이 반복된지도 벌써 반년이 다 되어간다.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화장대에 앉아 급히 파우더를 두드려 바르고 있는 엄마에게 조금 이르게 눈을 뜬 딸은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어제도, 그제도 늦게 퇴근한 엄마에게 저렇게 묻는 딸의 속마음은 '설마 오늘도 늦는 건 아니지?'일 것이다.
딸이 깰까 봐 조마조마하던 난 한 손으로는 화장품을 바르며, 다른 한 손으로 급히 휴대전화 속 일정을 확인한다.
다행이다. 오늘은 일찍 퇴근할 수 있는 날이다. 약속도 없다.
"그럼! 엄마 오늘은 일 끝나자마자 바로 올 거야! 오늘은 엄마가 퇴근해서 책 3권 읽어줄게"
대답을 들은 딸은 재차 엄마가 오늘 확실히 일찍 퇴근하는지를 묻고는 스르륵 다시 잠이 든다. 난 그런 딸의 발끝을 주무르다 시계를 보고는 다시 출근을 서두른다.
이 시간이 난 왜 이렇게 곤욕인지 모르겠다.
난 뭘 위해 늘 너에게 엄마가 언제 퇴근할지, 오늘은 늦는지를 두고 스트레스를 받게 만드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어릴 때 우리 엄마는 늘 일을 하셨다.
그런데 유치원 선생님이셨던 엄마는 늘 내가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집으로 돌아와 계셨다. 내가 좋아하는 간식을 만들어놓고, 학원에 가기 전 꼭 간식을 챙겨 먹을 수 있도록 집에서 날 기다리고 계시다 챙겨주시곤 했다.
당연한 줄 알았다. 집에서 엄마가 날 기다린다는 건 너무나 나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우리 딸은 엄마가 기다리는 건 커녕, 엄마와 함께 잠들지조차 못한다.
얼마 전, 조그마한 열쇠고리가 달린 노트를 하나 구매했다.
늘 새벽에 출근하고, 자주 늦게 퇴근하는 내가 우리 딸에게 해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다 유치원 선생님의 조언으로 시작하게 된 비밀일기다.
딸과 내가 서로 편지를 주고받기 위한 작은 비밀 일기장. 어릴 적, 단짝 친구와 열쇠를 나누어갖고 하루씩 번갈아 쓰던 그 비밀 일기장이었다.
예쁜 열쇠고리까지 갖추고 나니 그럴싸한 우리만의 '시크릿 노트'가 되었다.
난 늦게 집에 온 날이면 어김없이 저 일기장에 딸에 대한 사랑을 한가득 담아놨다. 그리고는 딸의 책상 위에 살포시 자물쇠를 걸어 올려놓고는 출근을 했다.
"오늘도 일하는 내내 네가 보고 싶었단다."
"엄마는 널 정말 사랑해"
"오늘은 엄마가 꼭 일찍 퇴근할게!"
와 같은 내용들이 페이지마다 가득 찼다.
그러면 딸은 답장을 썼다. 동생과 싸운 이야기, 오늘 유치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늘 어떤 칭찬받을 일을 했는지 등이 올망졸망한 글자체로 다른 페이지를 채웠다.
그런데, 그 어떤 내용 중에도 가장 자주 담긴 건 바로 이 내용이었다.
편지를 읽을 때마다 물었다.
"그렇게도 엄마랑 같이 잠드는 게 좋아?"
그러면 우리 딸은 엄마와 잠드는 시간이 세상 그 어떤 시간보다도 행복하다고 했다. 엄마가 옆에 누워 엄마 냄새를 맡고, 엄마랑 이야기를 나누다 잠드는 게 너무 좋단다. 그래서 엄마가 늦더라도 자기가 잠들기 전에는 퇴근했으면 좋겠다고 몇 번이나 얘기하고 또 얘길 했다.
하지만 난 그럴 수 없는 직업을 가졌고, 그럴 수 없는 나라에 살고 있다.
나도 우리 딸과 늘 함께 잠들고 싶다. 하루를 도란도란 나누며 책도 읽어주고, 서로의 냄새도 맡고 싶다.
대체 무엇이 잘못인 걸까. 어린 내 딸과 함께 잠드는 게 무엇 때문에 이토록 어려운 걸까.
내 딸이 내게 더는 저 질문을 하지 않게 해주고 싶다.
엄마와 잠드는 게, 소원인, 그런 아이로 자라게 하고 싶지 않다.
난 내 아이의 잠드는 하루하루를 지켜주는 엄마이고 싶다.
그러기 위해 선택을 해야 한다.
후회 없는 선택을 하고 싶다.
그리고 흔들리지 말자. 또한 그 새로운 선택을 빛나게 가꿔나가자.
응원한다,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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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를 키우는 여기자가 스위스 취리히에서 살아가는 좌충우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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