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기자의 삶
대학생 때였다.
10년도 더 된 그 시절, 과외를 해 번 돈으로
휴학을 하고 혼자 유럽여행을 떠났다.
3달 가까이 유럽 이곳저곳을 여행했는데,
스위스에 머문 기간은 3주 정도.
그 중 도시 취리히에는 5일 정도 머물렀던 것 같다.
취리히는 깨끗했고, 평화로웠고, 아름다웠다.
취리히 유스호스텔에 머물렀는데
트램을 타고 15분 정도 도심과 떨어진 위치에 있었다.
숙소 바로 앞에는
취리히 주민들이 이용하는 대형마트가 하나 있었다.
푸드코트도 함께 있어서,
나는 간단히 점심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마트를 찾았다.
그곳에서 만난 한 가족이 눈에 띄었다.
남자아이 둘이 아빠와 마트에 와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요즘은 한국도 정말 많이 바뀌어서
아빠들이 엄마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온갖 곳을 다니지만,
(당장 우리 집만 해도 내가 주말 근무하는 날
아빠가 애 둘과 문화활동, 여가활동을 수도 없이 누리고 산다 ㅎ)
당시 한국에서는 아빠 혼자 애들을 데리고 다니면
'이혼남'이라고 생각하거나,
"어쩌다가.."라며 안쓰러워하는 시선을 한 몸에 받아야 했다.
아빠하고만 마트를 찾았지만
그 상황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스위스 아이들이
그토록 신기하고 부러웠다.
그래서 사진을 찍어 그 순간을 남겨뒀었다.
나도 언젠가 결혼을 한다면
내 남편은 아이들과 나 없이도
저렇게 자연스럽게 외출할 수 있길 바랐다.
마을은 온통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따로 놀이터가 구분되지 않고
마을 곳곳에 놀이기구들이 녹아들어 있었다.
아이들이 길을 건널 땐
차들이 저 멀리서부터 멈춰섰고,
킥보드를 타고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그런 도시가 바로, 스위스 취리히였다.
인터라켄을 방문했을 때
평일 오전 마을 산책을 하던 중
초등학교 저학년 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만년설이 쌓인 대자연 속 잔디밭에 모여
신나게 뛰어 노는 모습을 봤다.
우리로 치면 '수건 돌리기' 같은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아이들의 천진한 얼굴이
하나하나 빛났다.
이런 나라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부럽기도 했다.
그리고 10년이 넘게 흐른 지금,
난 딱 저 나이 또래의 아이들을 대한민국에서 키우고 있다.
길을 건널 때면 늘 아이에게
차가 오는지 양옆을 봐야한다고 가르치고 또 가르친다.
미세먼지 농도가 짙어지는 날이면
갑갑해하는 아이에게 건강을 위한 거라며
KF80이 쓰여진 봉투를 뜯고
마스크를 씌운다.
놀이터 밖에서는 엄마 손을 잡아야 한다고 소리친다.
놀이터와 놀이터 밖은 확실하게 구분된다.
불과 얼마 전에도 음주운전하는 차량에 치어 초등학생이 사망했고,
보행자를 확인하지 않은 채 우회전하는 차량에도
아이들이 치어 숨졌다.
그런 나라에서 나는 늘 불안해하며 아이들을 돌본다.
그랬던 우리 가족이
스위스로 떠난다.
4년을 스위스에서 살게 됐다.
내 기억 속 스위스는 아이들의 천국이었다.
과연 그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건 어떤 모습일까.
여행객이 아닌, 스위스인이 아닌, 타국민이 사는
스위스는 어떤 곳일까.
걱정스럽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다.
그래도 그 4년이 우리 가족에게
더할나위 없이 귀한 시간일 것이란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다.
이 멋진 나라에서의 4년을 즐겨봐야지.
우선은 독일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아이들의 국제학교를 잘 선택해야한다.
스위스라는 나라를 좀 더 깊게 공부해야겠다.
세계사를 다시 훑어 공부할 필요성도 느낀다.
우리 아이들에게
스위스라는 나라에서의 경험이
힘들고 어려운 기간이 아니라
행복하고 즐거웠던 시절이 될 수 있도록
부모로서 최선을 다해봐야지.
여행할 때 내게 '꿈의 나라'였듯,
그 곳에 살게 될 내게도 '꿈의 나라'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