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향이 나는 남자
1. 세상 모든 냄새가 끊어졌다.
“킁킁”
눈을 뜨자마자 스며드는 빵 굽는 냄새에 지원은 중학교 2학년 때 집 앞 자주 가던 빵가게를 떠올렸다. 늘 같은 밀가루를 쓰는 빵가게였는데, 계란을 사 오는 곳이 바뀌기 전까지만 해도 지원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빵을 만드는 유일한 곳이었다. 늘 신선한 재료를 사용했는데, 어떤 재료에서도 묵은내가 나지 않아 지원은 매일 아침 등굣길 빵가게를 들러 빵을 사들고 하루를 시작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묘하게 역한 냄새가 빵에 스며들었는데, 분명 계란에서 나는 누린내였다. 지원은 그 후로 맛있게 빵을 사 먹어 본 기억이 없었다.
방문을 열고 나오자 하얀 앞치마를 두른 엄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 빵 구워?”
“그럼. 빵순이 딸내미 둔 엄마는 아침에 빵 구워야지.”
툴툴대면서도 오븐에서 빵틀을 꺼내드는 지원의 엄마는 세상 행복한 표정이었다. 창원에서 농사를 짓는 엄마는 1년 만에 딸의 집을 찾아오면서 가장 좋은 빵 재료를 엄선해 구해왔다.
“어휴, 뭘 이렇게 많이 구웠어.”
“얼려놓고 하나씩 꺼내 먹어”
“... 나 얼려놨던 거 잘 못 먹어. 냉장고도 산 지 한 1년 넘으니까 슬슬 냄새가 배더라고”
“지지배야. 그러게 냉장고 청소 좀 자주 하라니까”
“바쁜 걸 어떻게 해.”
갓 구워 나온 식빵 한 조각을 한 입 베어 물자 포근포근한 식감과 함께 버터, 계란 같은 재료 향이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계란은 산란한 지 하루 이틀 정도 됐을 것이고, 버터는 엄마가 직접 만드신 것이리라. 밀가루는 올해 수확한 밀로 만들어진 것으로, 창고 등에 보관된 적 없는, 도정 후 곧장 출고된 상품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미세하게 스며드는 쇳가루 냄새는 어쩔 수 없었다. 자주 사용하지 않던 오븐이 문제일 것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 냄새는 다른 훌륭한 재료 냄새에 묻혀버렸다.
“맛있다. 고마워, 엄마. 진짜 얼마 만에 맛있게 먹는 빵이래”
“어휴. 먹어줘서 고~~~맙습니다.”
가자미눈으로 지원을 흘려보는 엄마의 눈꼬리 끝에는 사랑스러움이 묻어났다. 잘만 먹어준다면 100번이고 1000번이고 만들어줄 수 있다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지원은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욕실에 들어간 지원은 직접 만든 비누로 세수를 하고, 직접 만든 샴푸로 머리를 감았다. 푹푹 삶아 쨍한 햇살에 말린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소독기에 들어있던 빗을 꺼내 머리를 빗었다. 마지막으로 직접 만든 화장수로 얼굴 결을 다듬은 뒤, 직접 만든 로션으로 마무리하니 지원의 출근 준비가 끝이 났다.
화려한 색조화장이나, 향수를 뿌리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과한 향을 맡으면 머릿속이 터져버릴 것만 같은 지원이었다. 한 번은 지하철에서 피비린내가 나는 남성을 만났는데, 하루 이틀밖엔 지나지 않은 듯한 역한 냄새에 구토 증세를 일으켜 급히 지하철에서 뛰쳐 내린 적도 있었다. 여성들과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냄새만으로 이 여성이 현재 생리 중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 수 있었다. 친구들과 술집에 갔다가 마약으로 추정되는 역한 냄새에 머리가 어지러워 갑자기 기절한 적도 있었다.
과도하게 예민한 후각이 발현된 건 중1 때였다. 이유도 명확하지 않았다. 지원의 부모는 지원을 데리고 각종 병원부터 유명하다는 전국의 한의원은 다 다녀봤다. 귀신이 붙었다기에 굿도 해보고, 산속에 들어가 100일 기도도 드려봤지만 차도가 없었다. 결국 포기하고 살아온 지 어느덧 15년의 세월이 지났다.
지원이 법적으로 성인이 되자마자 한 건 운전면허증 획득이었다. 그리고는 중고로 소형차를 한 대 샀다. 직접 중고시장을 돌아다니며 하나하나 냄새를 맡아보고 고른 차였다. 어떤 차는 침수가 됐던 건지 역한 하수구 냄새가 났고, 어떤 차는 차 안에서 뭘 한 건지 알코올 냄새가 진동했다. 그렇게 1주일 차 냄새를 맡으러 돌아다니다 찾은 차 한 대. 지원의 애마가 된 지 이제 어느덧 7년이나 되었지만 여전히 깨끗하고 잘 굴러갔다.
어김없이 시동을 켜고 출근길에 올랐다. 오늘은 특별히 좋아하는 성시경 오빠의 CD를 플레이어에 넣었다. 늘 혼자 말없이 출근 준비를 했던 지원은 오늘 엄마와 함께 한 활기찬 아침에 살짝 기분이 업 됐다. 노래 ‘거리에서’가 흘러나오자, 지원은 열창 아닌 열창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네가 없는 거리에는 내가 할 일이 없어서~”
“쾅”
노래가 막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갑자기 뒤에서 육중한 충격이 가해졌다. 고개가 쏠리며 핸들에 머리를 박았지만, 그 와중에도 급히 브레이크를 밟은 덕에 연쇄 충돌은 피할 수 있었다.
주차모드로 기어를 전환하고는 뒤를 돌아봤다, 검은 세단 한 대가 자신의 차 바로 뒤에 맞붙어 서 있었다.
그때, 옅게 코끝으로 파고드는 쇠 냄새에 지원은 인상을 찌푸렸다. 손을 들어 이마를 만져보니 끈적한 무언가가 만져졌다. 핸들에 머리를 박으면서 생긴 상처에서 엹게 피가 나고 있었다.
“하... 왜 하필 오늘이야... 기분 좋았는데”
혼잣말을 중얼거린 지원은 전의를 다지며 운전석 문을 열었다. 본인은 올바르게 주행 중이던 상황이었으니, 뒤차가 끼어들기를 했던지 과속을 했을 것이었다. 행복한 아침 출근길을 방해한 작자가 누군지 곧 확인하고, 처절한 응징을 가하리라 마음을 다졌다.
차에서 내려 자신의 차를 들이받은 차를 바라보자마자 지원은 ‘흡’ 속으로 감탄을 뿜어냈다. 모터쇼에서 콘셉트카로나 봤을 법한 스포츠카였다. 백미러로 힐끗 봤던 검은색은 은은한 펄감을 자아내며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지원의 감탄과 동시에 상대방 운전석 문이 열렸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조금 뒤 운전자가 발을 내밀고 차 밖으로 몸을 꺼냈다. 그리고는 지원에게 다가왔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오늘 정신이 없다보니.. 순간 속도를 충분히 줄이지 못했습니다. 제 과실입니다. 충분히 변상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지원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처음 그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알 수 없는 향기가 지원의 뇌로 흘러들었다. 인공적으로는 결코 만들었다고 할 수 없는 오묘한 꽃향기와 함께 상큼한 레몬향이 감돌았다. 후각이 예민해진 이후로 처음 맡아보는 향이었다. 계속 나던 머리의 피 냄새도, 도로에서 늘 나던 매연 냄새도 전혀 나지 않았다. 그저 그 남자의 냄새만이 가득했다. 마치 그 남자의 향기로 세상 모든 더러운 냄새를 덮어버린 것만 같았다.
“괜찮으세...요?”
자신의 어깨를 살포시 건드는 느낌에 지원이 정신을 차렸다. 눈앞에 서 있는 남자의 모습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과하지 않은 은색 정장 차림의 남성은 지원과 비슷한 나이대로 보였다. 아니, 어쩌면 더 어릴지도 모르겠다. 180cm는 되어 보이는 큰 키에 짙은 쌍꺼풀, 양쪽으로 길게 눈매가 나있었는데, 눈동자가 까매 깊어 보이는 눈망울이 인상 깊었다. 그 와중에 피부는 백옥같이 하얬다. 햇볕을 보고 살지 않은 사람처럼. 핏기 하나 없는 볼이 조금은 비현실적이었다.
“아. 네. 아? 아니요!”
지원은 본인이 무슨 얘길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대답을 하고, 또 번복했다. 잠시간의 정적이 흐르다, 먼저 말을 꺼낸 건 상대였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머리에 피가 나신 것 같은데 일단 병원으로 모시겠습니다. 곧 차량이 도착할 겁니다.”
병원. 지원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곳 중 하나였다. 피 냄새와 함께 역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온갖 악취들이 뒤섞여 알코올 향으로 마무리되는 그곳. 순간 손사래를 치며 싫다고, 됐다고 말하려다, 문득 이 남자가 지금 지구의 모든 역한 냄새를 뒤덮는 아름다운 향기를 내뿜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남자와 함께 간다면, 어쩌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까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럼.. 사고 내신 당사자분도 함께 가주시나요?”
“네?”
“본인이 직접 같이 가주신다면 가겠습니다.”
“저 말씀이실까요?”
“네!”
그때 뒤에서 고급 세단 한 대가 서서히 다가와 정차했다. 역시나 검은색 세단이었는데, 운전석에서 내린 사람은 40대로 보이는 지긋한 중년의 남성분이었다.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모습은 앞선 남자와 똑같았고, 얼핏 봐도 부티가 나는 걸로 봐서는 이 사람도 보통의 인물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지원은 늘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체취로 그 사람의 성격과 인품, 삶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리고 그 추측은 크게 벗어난 적이 없었다. 좋은 향기를 내뿜는 사람은 그만큼 아름다운 인품을 가진 경우가 많았고, 더럽고 추악한 냄새가 나는 사람은 대부분 기대 그 이상의 이면을 숨긴 사람인 경우가 많았다. 지원은 습관적으로 새로 등장한 남성의 냄새를 맡으려 했지만, 역시나 사고를 낸 남자의 체취에 가려 아무런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이런 경우는 증상 발현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본부장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네. 전 괜찮습니다. 일단 보험사 잘 불러주시고. 여성분부터 병원으로 모셔야 할 것 같은데.”
“제가 곧장 병원으로 모시겠습니다.”
“....”
중년의 남성이 깍듯하게 행동하는 걸로 봐서는 사고를 낸 남자가 훨씬 높은 직급의 상사인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일을 하기에 저토록 젊은 나이에 저런 대우를 받는 걸까?라는 궁금증이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그도 잠시, 병원은 반드시 본부장이라는 남자와 함께 가야만 한다는 더 중요한 사실이 지원의 머릿속을 대체했다.
“저.. 다시 한번 부탁드리는데, 본부장님께서 같이 가주시면 안 될까요?”
“네?”
중년의 남성이 깜짝 놀라 지원을 바라봤다.
“그.. 제가 사정이 좀 있어서... 병원을 극도로 무서워하거든요. 그게, 설명을 하려면 좀 긴데.. 그니까. 본부장님이 같이 가주시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 모르겠고. 어쨌든 사고를 내신 당사자께서 같이 병원으로 가주세요!”
앞에 선 두 남자가 벙 찐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다시 지원으로 시선을 옮겼다. 지원은 단호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충분히 요구할 수 있는 사항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합리화했다. 사고를 낸 건 나도, 저 중년의 남성도 아닌, 저 사람이니까!
“그렇게 하죠. 일단 운전자분 보험사 측도 연락을 하셔서 부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가 주시는 거예요?”
“네, 요구하신 대로 제가 가겠습니다.”
“본부장님! 오늘 오전 회의는...”
“연기해 주세요. 제가 사고를 낸 게 맞으니,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차량들 좀 잘 정리해 주시고요.”
“... 알겠습니다. 조치하겠습니다.”
그 와중에도 은은하게 흘러드는 레몬 향 비슷한 그의 체취에 지원은 계속해서 ‘킁킁’ 냄새를 맡고 있었다.
처음에는 강하게 콧속을 파고들던 향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은은해져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냄새는 향에 파묻혀 느껴지지 않았다. 10년이 넘게 도로에서 맡아오던 악취가 사라진 세상. 지원은 제대로 숨을 쉰다는 게 이런 거였지, 정말 오랜만에 느끼고 있었다.
“사고 차량들은 그대로 두고, 저희 비서 차로 같이 가시죠. 혹시 사진 찍어놓으셔야 하면 찍으시고요.”
“아... 사진을... 그럼 몇 장만 찍을게요!”
찰칵찰칵. 좌, 우, 위, 아래. 나름 다양한 각도로 사진 속에 두 차량을 찍어댔다. 대한민국에 딱 한 대뿐일 것 같은 차가 지원의 중고차와 한 도로 위에 놓여있는 이 상황은 지원의 눈에 굉장히 이질적이었고, 휴대전화 앵글 속에 담긴 모습도 매우 이질적이었다. 지원은 자신이 이 남자와 함께 서 있는 이 상황도 그저 이질적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된 거 같아요.”
“가시죠.”
남자가 너무 자연스럽게 중년 남성이 타고 온 차량의 보조석 문을 열며 손짓을 했다. 처음 받아보는 매너에 지원은 순간 당황했지만, 어색하지 않은 척 당당히 걸어가 보조석에 털썩 앉았다.
남자는 살며시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의 체취도 덩달아 끊어졌다. 갑자기 예상치 못했던, 차량의 냄새가 훅 폐 속으로 흘러들었다. 10년 넘게 자신을 따라다니는 냄새들. 정말 잠깐이었지만 남자로 인해 일상을 되찾았던 지원은 그 잠깐이 원래 삶이었다는 듯, 흘러넘치는 냄새에 다시 노출되자 너무 괴로웠다.
남자가 보닛을 빙 둘러 한 걸음, 두 걸음, 보조석에서 운전석을 향해 걸어갔다. 걸음걸음이 파노라마처럼 지원의 시야에서 움직였다. 남자가 운전석과 보조석 가운데쯤을 지나고 있을 때 지원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그대로 숨을 멈췄다. 그리고 그가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지원은 갑갑해져 오는 심장이 자신이 숨을 멈춰서인지, 다가오는 남자의 모습 때문인지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조금 뒤, 남자가 운전석 문을 열었다.
“푸.....하~~~”
“네?”
“하하하... 그냥 숨쉬기 연습 중이었어요!”
남자가 문을 열자마자 또다시 그의 냄새가 차 안 모든 냄새를 잠재웠다. 세상이 온통 레몬향으로 뒤덮인 느낌. 그리고 조금 지나자 역시나 레몬향이 옅어지며 잊고 지냈던 일상의 무색무취한 세상을 되찾았다. 대체 이 남자는 뭘까, 지원은 혼란스러웠다.
“혹시 인근에 다니시는 병원이 있으신가요?”
“아... 아니요. 전 병원은 안 다녀서요.”
“잘 안 아프신가 보네요.”
“아, 네. 하하하.. 아파도 안 가요.”
앞을 보고 있던 남자가 갑자기 옆으로 고개를 돌려 지원을 바라봤다. 잠깐이었지만, 둘의 눈이 마주쳤다. 지원은 계속 남자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걸 들킨 게 순간 부끄러워, 곧장 눈길을 피해 창문 너머 길가를 바라봤다.
“약국 약만 먹어도 잘 낫더라고요.”
“네. 그냥 약국 약으로 버티는 분들도 많으시죠. 일단은 그러시면.. 제가 다니는 병원으로 모셔도 될까요? 30분 정도 걸릴 것 같은데, 급한 일 없으시면 가시는 김에 검사를 좀 받아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머리를 다치신 것 같아 걱정이 돼서요. 따로 시간을 다시 내시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 않으실까요.”
“아! 그럼 저 회사에 전화 좀 할게요.”
“편하게 하시면 됩니다.”
지원은 가방에 들어있던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회사 가장 친한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교통사고로 인해 월차를 사용해야겠다는 말을 전했다.
남자는 그 사이 차량에 시동을 걸고 천천히 차를 출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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