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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위트랜드 Aug 08. 2024

레몬향이 나는 남자.

2. 죽음의 냄새가 덮이는 향기.

준서가 그날 왜 그 차키를 집어 들고 집을 나섰는지 알 수 없었다. 그날은 준서 인생에 있어 손에 꼽는 중요한 날이었다.     


콘셉트카를 뛰어넘어 실용성을 가미한 미래형 신차를 발표하자는 회사의 제안을 받은 건 3년 전이었다. ‘천재 자동차 디자이너’로 불리며 살아온 평생에 다시 오지 않을 기회. 선배들의 따가운 시샘을 견뎌내며 디자인에 매달렸다. 밤을 새우고, 또 새며 3년간 인고와 태고의 시간을 견뎌내 만든 게 바로 ‘블랙쉐도우’였다. 짧게 줄여 애칭으로 ‘블랙’이라 불러온 신차가 만들어져 나온 건 3달 전쯤이었다. 3대가 우선 만들어졌는데, 두 대는 차량 테스트를 위해 연구소에 보내졌고, 한 대는 직접 도로주행 테스트를 위해 가져온 것이었다.    

  

본래는 항상 커버를 씌워 형태나 디자인을 꼼꼼히 숨기고 다녔는데, 그날은 신차 발표 당일 이어서 커버를 벗기고 처음 도로주행에 나선 날이었다. 사실 블랙을 끌고 나올 생각은 없었다. 아침 회의 시간이 촉박해 평소 타던 자신의 차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차키를 놓아둔 함에서 정신없이 집어 들고 온 게 하필 블랙 키였고, 다시 집에 올라갔다 오면 회의에 늦을 것 같아 그냥 블랙을 끌고 길을 나섰다. 유독 아침부터 햇살이 좋아 본연의 반짝이는 블랙 색상이 돋보일 것 같아 처음으로 커버도 벗겼다. 그런데 사달이 났다.


준서는 핸드폰을 꺼내 정 비서에게 문자를 보냈다. 접촉사고가 났으니 곧장 와달라며 내비게이션 위치를 사진으로 함께 찍어 전송했다. 다행히 사고 장소는 회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준서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차에서 내렸다.      


준서가 피해 차량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이마에서 피가 주룩 흘러내리는 한 여성이 시야에 들어왔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2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여성. 약간의 원망이 섞인 시선에 준서는 살짝 당황했지만, 자신의 실수가 명확했기에 그런 시선도 받아들여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천천히 차에서 내리는 여성을 꼼꼼히 관찰했다. 한 번도 염색도 펌도 해본 적 없을 것 같은 짙은 검은색의 찰랑이는 머릿결, 약간의 주근깨가 내려앉은 화장기 없이 깨끗한 피부, 액세서리 하나 없이 하얀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말끔한 외모. 준서는 보통의 20대 후반 여성과는 사뭇 다른 상대의 꾸밈없는 외형에 ‘아직 학생인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런데 왜, 저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거지?


준서는 그녀의 눈빛이 불편해졌다.      




거대한 병원 건물 입구.      


그 앞에 선 지원은 몸이 움츠러드는 걸 느꼈다. 항상 병원 앞에만 서면 생기는 두려움. 불빛 하나 없는 거대한 터널에 늦은 밤 혼자 걸어 들어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자신을 덮쳐올 무시무시한 ‘냄새의 홍수’가 떠올랐다. 증상이 발현하고 한동안은 병원에 갈 때마다 결국은 기절했던 지원이었다. 병원 안 그 어디에도 그녀만큼 죽음의 냄새를 가까이 맡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알코올 향으로는 결코 가릴 수 없는 그 어둡고 음침하고 소름 끼치는 냄새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무슨 문제가 있으십니까?”

“네?”     


남자의 말 한마디에 몇 초간의 두려움이 머릿속에서 흩어졌다.      


“제가 오늘 오전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1시간을 미뤄놓긴 했지만, 서둘러 가보긴 해야 해서요. 괜찮으시다면 제가 아는 의사에게 이미 연락을 취해놨는데, 곧장 모셔도 될까요?”

“아. 네. 그렇게 해주세요.”     


지원은 심호흡 후 숨을 크게 들이쉬며 병원으로 들어섰다. 거대한 회전문 안에는 자신과 오늘 아침 교통사고로 만난 기묘한 인연의 남자가 함께 서 있었다. 숨을 쉬고 싶지 않았지만, 버틸 수 있는 건 고작 몇 초뿐. 더 버틸수록 한 번에 몰아치는 고통만 커질 뿐이었다. 지원은 찬찬히 숨을 내뱉고 콧속으로 숨을 들이마셨다.  

    

알코올, 피, 종양과 같은 것들이 알 수 없게 뒤섞인 향들, 수많은 아픈 이들의 고통 섞인 내음이 스믈스믈 폐로 스며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어디선가 레몬향이 섞여 들었다. 분명 레몬향이었다. 오늘 처음 맡았던, 자신의 고통을 잠재워주던 그 레몬향. 그리고 어느 순간 그 두려움의 터널에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지원은 조용히 옆을 바라봤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서있는 남자의 얼굴을 향해 시선을 맞췄다. 남자는 찬찬한 눈으로 지원이 바라보는 시선은 느끼지 못하는 듯 그저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원의 눈에서 조용하고도 깊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지원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은 천천히 그녀의 볼을 지나 목덜미를 훑어 내렸다. 간질거리는 느낌이 상쾌했다.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병원 엘리베이터는 지원이 병원 안에서도 특히 두려워하는 곳이었지만, 이 남자와 한 공간에만 있다면 지원에게 두려울 건 없었다. 조용히 한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지원의 눈물을 남자는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렇게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8층 병원 꼭대기층에 내린 지원과 남자는 아래층과 다르게 너무나 조용하고 이상하리만치 사람이 없는 복도를 지나 한 작은 방문 앞에 섰다. 가는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여기는 제 주치의가 진료를 보시는 곳입니다. 일단 들어가서 인사 나누시면, 진료를 진행해 주실 거예요. 저는 인사를 나눈 후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나름 프라이빗한 진료가 가능한 곳이니, 최대한 편하게 진료를 받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아까 병원을 많이 무서워하신다고 하셔서, 제가 최대한 신경 써서 진료를 진행해 달라고 부탁드려 놨습니다.”

“감사합니다.”


짧은 대화 후 둘은 진료실로 들어섰다. 꽤 큰 방 안에는 의학 서적이 벽을 둘러 높게 세워진 책장 한가득 꽂혀있었고, 그에 비해 왜소한 외형의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이 앉아계셨다. 둘을 보자 벌떡 일어난 의사는 반갑게 남자에게 다가가 인사를 나눴다. 그 모습에 지원은 둘이 많이 가까운 사이임을 알 수 있었다.     


“잘 지내셨죠? 겨우 한 달 만에 뵙는데 뭘 이렇게 반가워하세요.”

“너는 이 녀석아, 오랜만에 봐서 반가우면 반갑다고 말하면 되지, 뭘 또 그렇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대”

“갑자기 이런 부탁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오늘 신차 발표 날이라 경황이 없는데 이런 일이 생겨서요. 떠오르는 게 선생님밖에 없더라고요.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

“그럼! 걱정 말고 어서 일 보러 가봐”

“감사합니다.”     


가만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지원은 순간 정신을 차렸다. 남자가 이 공간에서 떠나려고 한다. 병원 한가운데 자신을 홀로 내버려 두고 사라지려 한다. 두려운 냄새의 한가운데 또 홀로 남겨져야 한다. 모르면 몰랐지, 이미 눈 뜬 새 세상을 이렇게 쉽게 보내버릴 순 없었다.     


“안 돼요!”

“네?”

“안 된다고요!”

“뭐가... 말입니까?”

“여기서 나가는 거요. 안 된다고요!”

“네?”

“당신이 사고 냈고, 당신이 책임져야죠. 누구한테 나 떠맡기고 갈 생각하지 말고, 끝까지 계셔야죠!”   

  

지원은 일단 우겨대기 시작했다. 이 남자가 떠나고 나면 남는 건 고통뿐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지원은 이 남자의 사정 따윈 모르겠다는 태도로 일관하기로 마음먹었다.     

 

“... 제가 오늘 매우 중요한 일정이 있습니다. 저도 말씀하신 대로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오늘 정말 중요한 날이라서요. 지금도 사실 이렇게 이곳에 있을 시간이 없는 상황입니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양해를 좀 부탁드립니다.”     


너무나 정중하고도 단호한 남자의 말에 지원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 남자는 오늘 오전 중요한 회의가 있다고 했다. 그 회의에 오늘 접촉사고로 인해 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오늘이 아닌, 이 남자가 시간이 여유로운 날, 함께 다시 병원에 오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럼 시간이 되실 때, 다시 같이 와요.”

“네?”

“전 무조건 사고 내신 당사자가 계신 상태로 진료받고 싶어요. 오늘은 보아하니 바쁘신 거 같은데, 안 바쁘신 날 같이 와주세요. 제가 여기서 다 설명드릴 순 없지만, 병원을 정말 정말 아주 많이 무서워하거든요. 제가 얼마나 병원을 무서워하는지 댁은 상상도 못 하실 거예요. 암튼, 거두절미하고, 그냥 시간 되시는 날 같이 와주세요! 진료받을 때 같이 계셔주세요. 제가 바라는 건 그거 하나예요. 합의금 이런 거 안 주셔도 되니까. 제 몸 건강한 거 확인하고, 차 고치는 거 그것만 해주세요. 대신 병원 올 때는 무조건 같이 와주세요!”     


지원의 요구에 남자는 순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만하지’ 지원은 남자의 황당함을 이해했다. 얼마나 황당할까. 애도 아니고, 병원이 무서우니 같이 와달라고 요구하는 오늘 처음 만난 20대 교통사고 피해자라니. 그래도 제발 자신의 요구를 받아주길 가슴속으로 빌었다. 제발, 제발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해!     


“표정을 보니 이상한 요구라는 걸 본인도 아시나 보네요.”

“...”

“합의금 대신 제 시간을 달라고 요구하시는 걸까요?”

“뭐...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 좋습니다.”

“오예!”     


남자의 대답과 동시에 지원은 짧은 환호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이 레몬향을 다시 맡을 수 있다. 몇 번일지, 몇 시간 일지 모르지만 다시 이 상쾌한 향기 속에 들어갈 수 있다는 그 사실이 지원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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