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항암치료를 기다리며 집에서 쉬는 3주동안의 시간이다. 3주동안 매주 한 번씩은 외래가서 피검사를 하고 교수님을 만난다. 다행이 수혈을 받아야 하거나 촉진제를 맞아야 할 정도로 수치가 나쁘지는 않았다. 현재의 상태는 체력이 떨어진거 이외에는 컨디션은 좋은 편이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주민센터도 가서 내가 받을 수 있는 지원에 대해 알아보기도 하고, 지원 가능해 보이는 부분은 신청해서 기다리고 있다. 아내는 이제 나를 간병할 필요가 없어져 , 요양보호자 자격증을 따러 학원에 등록했다. 두 달 과정으로 자격증을 취득 후 요양보호사로 취직할 수 있다.
내가 암진단을 바도 충격과 혼란에 빠쪘던 우리집은 어느정도 안정을 찾았다. 물론 내가 아직 항암치료중이긴 하지만 현재는 비교적 괜찮은 컨디션이었고 아이들도 안심하는 것 같았다. 아내는 당분간 언제까지 집에 있어야 할지 모를 나를 대신해 돈을 벌어야 했기에 요양보호사 학원을 등록해 나가고 있었다.
나는 먼저 건강해지는게 최우선이기 때문에 다른 일은 생각하지 않았다. 마음은 답답하고 초조했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서두르다가 더 나빠지면 안되기 때문에 낫는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집에서 쉬면서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가볍게 운동도 했고, 가급적 몸에 좋은 것들만 먹었다.
다른 건 상관없었는데 술을 못 마시는건 종종 아쉬웠다. 술을 그렇게 많이 먹지는 않는데 좋아했고 자주 마셨다. 특히 퇴근후에 저녁먹으면서 반주를 즐겨했다. 아내와도 집에서 종종 같이 마시는 걸 즐겼고 특히 소맥을 참 좋아했다. 고기도 좋아하지만 회도 좋아해서 집근처 단골횟집에 자주 갔는데 , 암에 걸린 이후로 술은 당연히 안마셨고 감염의 위험때문에 회도 피했다.
술을 안마신다고 해서 계속 술생각이 난다거나 못견디게 힘든 정도의 알콜중독은 아니었다. 다만, 순대국 먹을때 소주 한 잔 곁들이지 못하는게 아쉬웠고, 삽겹살에 소주 한 잔 같이 못하는게 서운한 정도였다. 특히 아쉬웠던건 올해 성인이 된 둘째와 술 한잔 같이 못마시러 가는게 아쉬웠다.
그간 가족까리 외식할때 항상 둘째는 빼놓고 셋이서만 건배하다가 올해부터는 둘째도 성인이 되어 네 가족이 같이 짠 할수 있는데 공교롭게 둘째가 성인이 되지마자 내가 암진단을 받아 버렸다. 내가 완치되는 날 기분좋게 같이 한 잔 하기로 했다.
물론 완치가 되더라도 예전처럼 술을 즐겨 마시는건 안할 것이다. 좋은 날에만 간단히 한 잔씩 마실 생각이다. 내가 완치가 된다거나, 첫째가 좋은 곳에 취직을 한다거나 그런 날에 말이다. 담배는 예전에 피우다가 끊은지 20년이 되었다. 둘째가 태어나면서 금연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둘째가 성인이 된 올해 20년이 되었다.
담배는 항상 끊어여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술은 적당히만 마시면서 끊을 생각은 없었는데 이젠 건강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걸 잘안다. 어찌보면 지금 이 나이에 암에 걸려 건강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게 된 게 다행이라고 생각을 하기도 한다.
아니면 분명히 계속 그랬던 것처럼 술 매일 마시고, 운동도 안하고 살던대로 살았을 것이다. 암에 걸리기 전에는 이런 저런 생각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이젠 무엇보다 건강이 최우선이다. 정말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데 정작 아프기 전에는 이런 생각을 못한다.
몸만 건강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데, 그 소중한 몸을 평소에는 소중한지 잘 모르고 살았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더욱 건강관리를 했어야 하는데 참 나에게도 무책임했고 나만 믿고 있는 우리 가족에게도 무책임했다.
앞으로 완치가 된다면, 아니 지금부터는 무조건 건강이 최우선이다. 나의 옆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고, 부모님이 계신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