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했다. 이번엔 아내 없이 혼자 입원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정상적인 세상의 흐름에 맞춰 살아 가고 있는 거 같다. 나는 행군하다 낙오된 군인처럼 멀리 앞서간 부대원들을 바라보며 나로 빨리 합류해서 가고 싶은 마음이다.
항상 우리집의 가장으로 아내와 아이들의 앞에 서있던 내가 이제는 멀찌감치 뒤로 물러나 여전히 걷고 있는 가족들을 바라보며 있다. 뒤에서 밀어주기라도 해야 할텐데 현재로서는 가족들에게 매달린 큰 돌덩이가 된거 같아 마냥 답답하기만 하다.
물론 아내와 아이들 생각은 절대 그렇지 않겠지만 이렇게 나 혼자 병원 침대에 링거 맞으며 누워있을때면 그런 생각이 든다. 아직은 한참 더 아빠의 뒷바라지가 필요한 아이들인데 미안하기만 하다.
지금까지 아이들에게 풍족한 환경을 제공해주지는 못했지만 친근하고 가정적인 아빠가 되려고 했었고 어느정도 그랬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나름 화목한 가정을 이루며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그에 못지 않게 현실적인 부분도 정말 중요하다.
최소한 아이들이 완전히 자립하기전까지는 전폭적으로 지원은 못해줄망정 발목을 잡으면 안되는데, 병원에 누워 있는 신세다.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처음에 암 진단을 받고 떠올렸던 생각중에, 내 장례식에 상주로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작년에 장모님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을 치뤘는데 그때 광경이 오버랩되면서 해서는 안될 생각이 떠올랐었다. 나중에 아빠 없이 결혼식에 서게 될 딸아이 모습이 떠올랐고, 얼마후에 군대에 갈 둘째 훈련소 퇴소식에 아빠 없이 있는 아들 생각이 났다.
지금이야 호들갑 떨었다고 생각하지만, 당시에 암 진단을 받고는 이런 저런 생각을 안 할수가 없었다. 유독 추위를 타서 혼자서는 잘 잠들지 못하는 아내 생각도 했고, 가슴 아파하실 부모님 생각에 가슴이 찢어졌다.
그런데 가장 힘들었던 건 아이들에게 필요할 아빠의 자리가 없어질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내와 부모님은 어찌됐건 이미 세상을 많이 겪어봤지만, 아이들은 아직 한참이나 세상을 살아내야 한다.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오랜 세상에 아빠가 없다는 건 차마 생각하기가 싫었다.
물론 지금은 치료도 잘 받고 있고 상태도 좋은 상태라 그런 극단적인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초반에 항암치료를 받기 전까지 했던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면 지금도 가슴이 철렁한다. 오죽하면 1차 항암치료때 혹시나 싶어 내 영정사진으로 쓰이게 될지 모를 사진을 아들에게 찍어 달라고 했었다. 그때는 웃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사진 찍어달라고 했었지만 속으로는 그런 생각도 했었다.
생각해보면 남편의 자리, 자식의 자리, 아빠의 자리중에 아빠의 자리가 가장 무거웠었던것 같다. 아내가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그래서 처음 암 얘기를 듣고 아이들 생각이 가장 먼저 났던 것 같다.
사실, 이제 아이들은 훌쩍 커서 밥 먹을때 빼놓고는 자기들 방에 틀어박혀 얼굴 보기도 힘들다. 자신의 앞가림도 충분히 할 나이들이다. 몇 년안에 각자 독립들도 하겠지만 아직도 내 눈에는 한참 어리게만 보인다. 이제 아빠의 역할은 아이들 뒤에서 건강하게 있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아빠 뿐만 아니라 엄마도 마찬가지겠지. 부모의 역할은 아이들 옆에 일단 건강하게 오래오래 있어주는 것이다.
일단은 건강해지는 것만 생각하자. 지금은 달리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빨리 건강해지자.
나는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