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너무 일만 하는 기계 같아.”
제 1봉우리
아람은 부끄러움이 많은 고슴도치이다. 새하얀 눈이 온 세상을 이불을 감싸듯 따스하게 덮은 겨울날 먹을 뒤집어쓴 듯 새까만 가시로 뒤덮인 아람이 태어났다. 아람의 집안은 다음 해를 준비할 *열매가 풍족치 않아 항상 배가 고파 앓는 소리를 하는 날이 잦았다. 그래서 배고프지 않고 배부르게 열매를 먹었으면 하는 바람에 “저절로 충분히 익어 벌어진 과실”이란 뜻으로 엄마 고슴도치는 아람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람은 크면서 가족들에게 이유 모를 죄책감을 종종 느끼곤 했다. 아버지가 세일하지 않는 식빵 한 봉지를 잘못 사 왔다고 집안은 한바탕 전쟁터가 되었다. 아람은 고작 열매 몇 푼 때문에 행복을 보지 못하고 정작 옆에 있는 가족을 살피지 못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슬퍼서 방에 들어가 숨죽여 울었다. 식빵 한 봉지 때문에 엄마에게서 입에 담기 힘든 비난을 듣는 아버지가 초라하고 불쌍했다.
아람은 울기를 그치고 '그냥 열매 가지고 싸우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행복하면 안 돼?'라고 부모님께 소리쳤다. 부모님은 조용해졌고 집안은 잠시동안 침묵이 맴돌았지만 다시 듣기 싫은 잡음들로 가득 찼다.
가난할지라도 마음만은 가난하지 않은 풍족한 삶을 살고 싶었고 가난으로부터 간절히 벗어나고 싶었다. 아람은 버티는 거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고 공부머리 일머리가 썩 나쁘지 않아서 어딜 가든 스스로 입에 풀칠을 할 자신은 있었다. 아람은 부모님과 다른 행복한 삶을 살고 싶었고 부모님과 달라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아람이 초등학생 무렵 급식비와 우윳값이 미납돼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손을 들어 올려야 됐는데 너무 부끄러워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아람에게 가난은 수치스러운 기억이다.
아람의 집은 분식집을 했는데 생일 파티 때 친구들을 초대한 적이 있었다. 엄마 고슴도치는 분식들로 조촐한 생일 파티를 꾸몄다. 아람은 시장에서 폐업을 하면서 떨이로 파는 가장 저렴한 추리닝을 입고 다녔다. 매번 친척오빠들에게 물려받은 헐렁하고 커다란 옷들을 소매를 접으며 입고 다녀야 했는데 자신에게 딱 맞는 추리닝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서 매일 빨아서 입고 다니곤 했다.
아람의 생일파티 다음날. 학교의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아람은 초대받았던 친구들이 화장실에서 수군거리는 뒷말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아람 쟤 집 가봤어? 좁고 너무 구질구질하더라. 생일에 피자, 치킨 하나 없이 꼴에 그게 파티래. 급식비도 못 내는 거 봤지. 그리고 옷도 시장에서 파는 구질구질한 추리닝만 입더라. 진짜 그지 같아.” 여러 아이들이 모여서 아람에 대한 말을 하며 낄낄거리며 웃고 있었다.
화장실 칸에 먼저 들어가 있던 아람은 자신의 얘길 하는 친구들의 말이 모두 끝날 때까지 숨죽이며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자그마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흐끅 거리며 북받치고 울컥 올라오는 감정들은 “딩동댕동” 경쾌하게 울리는 쉬는 시간 종소리와 대비되었다. 함께 왁자지껄 떠들던 아이들의 인기척이 모두 사라지고 고요해질 때까지 숨죽여 참아냈다. 아람은 감정을 참고 삭히는데 익숙해져서 감정을 표현하는 게 어려워졌고 감정이 무뎌지기에 이르렀다.
아람의 아버지는 말을 더듬었고 내성적이셔서 배달 음식 하나 주문하는 것도 꽤나 어려워했다. 자기주장을 펼치지 못했고 주관이 없는 것 같았다. 아람은 아버지가 싫었는데 내성적인 아버지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이 보여서 싫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매일 시험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공부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집에서 허름한 나시와 사각팬티만을 입고 하루 종일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늦은 밤 야한 짝짓기 동영상을 보느라 핸드폰 요금 폭탄이 터져서 밤에는 엄마에게 혼나고 낮에는 할머니와 멍멍이의 새끼들을 찾으며 자신의 분을 못 이겨 언성을 드높이곤 했다. 아버지를 보면서 무지를 닮지 않아야겠다며 열심히 공부했다.
그런 험한 말을 하는 모습을 닮고 싶지 않았고 말 한마디에도 쉽게 상처를 받았던 아람은 예쁘게 말하고 싶어서 도서관에서 시집을 찾아보곤 했다. 아람에겐 일상적인 풍경이었기에 집이 시끄러울 땐 슬그머니 집을 나와 조용한 곳을 찾아 나섰다. 푸르른 풀이 가득한 공원이나 낡은 종이 내음이 나는 도서관을 찾아가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엄만 이따금 화장실에서 상처 입은 고라니 소리를 내곤 했다.
그 소리엔 깊은 슬픔과 괴로움이 담겨 있었다. 절규를 듣는 것만으로 그냥 이유 모를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사실 무서워서 운 건지 공감돼서 운 건지 아람 스스로도 잘 알지 못했다. 소리에 파동이 온몸에 닿으면 닭살이 돋고 숨이 턱턱 막히곤 했다. 살이 정말 마트에서 파는 생닭처럼 오돌토돌 소름이 돋는 모습이 신기했다.
혼자 네 식구를 부양해야 됐던 아람의 엄마는 지쳐서 결국 집을 나간 적이 있었다.
아람은 '엄마도 엄마의 인생을 살아야지.' 설령 이혼을 한다고 해도 나 같아도 도망갈 거야. 라며 엄마를 이해했다. 엄마는 같이 미술관을 가자고 아람과 약속을 했지만 결국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엄마가 집을 나간 날 친척집에 맡겨졌을 때 분명히 잘 챙겨주시는데도 괜히 눈칫밥을 먹어야 했고 종종 체하곤 했다. 아람은 매일 밤 엄마와의 약속 날을 손꼽아 기다렸고 약속 날이 지나고도 혹시나 전화벨이 울리지 않을까 싶어서 잠잠한 수화기 옆을 서성이며 하염없이 엄마와의 약속을 기다리곤 했다.
그냥 '미술관 같이 가자.'라는 그 한마디를 지켜주길 바랐고 그냥 전화 한 통이라도 해주길 바랐지만 끝끝내 그 약속은 이뤄지지 않았다. 훗날 아람에겐 약속을 지키지 않고 말이 번복되는 비슷한 상황만 돼도 파블로프의 개처럼 관계가 틀어지고 상대가 떠날 거라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불안할 때면 그때 엄마와의 일이 플래시백처럼 눈앞에 선명히 드러나곤 했다. 비슷한 말이나 사건만으로도 몸이 얼음처럼 굳어서 아무것도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곤 했다. 아람은 상처받기 싫었고 불안한 상황이 생기면 상대가 떠나기 전에 먼저 관계를 정리하곤 했다. 일부로 상대방이 싫어할만한 말과 행동을 골라서 하곤 했다. 아람에게 엄마와의 사건으로 인한 실망감이 컸기에 꼭 내뱉는 말은 지키는 약속을 잘 지키는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훗날 이혼을 하려고 집을 나갔던 엄마는 기도원에서 목사님을 만나면서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게 더 큰 불행의 시초가 되리라곤 그땐 알지 못했다. 어린 아람은 그냥 엄마가 돌아왔다는 것만으로 너무 기쁘고 반가웠다.
아람은 엄마와의 약속을 계기로 타인에게 기대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세상에 누군가에게 기댄다는 게 아람에겐 어려운 과제였다. 기대하기를 포기하니 오히려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가진 것 하나 없고 도와줄 사람 하나 없는 아람은 집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정신 단단히 차리고 더 홀로 단단해지고 똑똑하고 강해져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독실한 신자였던 엄마는 매일 새벽 기도를 나가고 40일 동안 물만 먹으며 금식을 하면서 몸의 무리가 왔다. 젊은 나이에 치매초기증상을 보이셨다. 초등학생 때 방학이면 엄마를 따라 기도원에서 금식을 했는데 온몸이 기운이 쭉 빠져서 물에 축 늘어진 빨래가 된 것 같았다. 3일을 연속 굶고 물만 마실 때 아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람과 달리 엄마는 40일을 금식하면서 일을 나갔었는데 정말 독하다.라는 표현이 절로 나왔다. 그만큼 엄만 간절했던 것 같다. 모태신앙이었던 아람은 엄마를 보면서 절대로 종교에 깊게 빠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 두려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세상에 기이한 일들을 목도하며 보이지 않는 신의 존재를 스스로가 알 수 없는 영역이기에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맹목적으로 저렇게 확신을 갖고 믿을 수 있는 건지 아람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람은 그냥 마음 편히 젖어들어 믿음을 갖고 정신승리를 하고 있는 그들이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같은 공간 안에 있지만 홀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아람은 그들처럼 믿지 못하는 자신이 이상하고 어딘가 동떨어진 존재 같았다.
같이 소속감을 느껴보려고 믿어보려고 노력도 해보고 옆사람들이 하는 걸 살짝 따라 해보곤 했지만 너무 이상했다. 그냥 찬양을 부르며 음악과 감정에 취하는 느낌이었고 학교 수업은 너무 재밌었는데 시답잖은 얘기를 하며 농담 따먹기나 하고 있고 종교인이면서 사람에게 함부로 언행을 하는 부분을 보며 실망했다. 아이들을 놀리던 전도사의 설교는 지루했고 내리 눈꺼풀이 무거워지곤 했다.
성경은 옳은 진리들이 담겨 있을지 모르지만 그걸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바른 사람인양 얘기했지만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심한 언행으로 사람의 마음을 찌르고 후벼 파는 경우도 많단 생각이 들었다.
태어날 때부터 생물학적으로 두 가지 성을 가지고 태어나서 부모가 임의적으로 성을 선택한 사람들도 있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무조건 죄인취급하며 소수의 성을 가진 사람들을 차별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아람은 흑백으로 너무 사람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선입견을 갖고 있는 것은 오히려 종교인들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세상의 이치라든지 진리 같은 게 궁금했지만 딱히 답이 나오진 않았다.
아람은 도서관의 소설책이나 학교에서 배우는 수업이 몇십 배는 재미있고 유익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교회에 있는 시간이 한편으로는 아깝게 느껴졌다. 아람은 겁이 많아서 혹시 모를 지옥이 두려워서 보험을 들어둔다는 생각으로 교회에 빠지지 않고 나가곤 했다. 아람은 가까운 동물들도 못 믿었기에 하나님 아버지를 찾으며 감사하다며 사랑한다며 자지러지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믿음이란 추상적인 감정에 대해 궁금했다.
아람은 엄마에게 어리석은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물에 빠지면 엄마는 엄마가 사는 게 더 중요해? 아님 날 먼저 구하려고 할 거야? 엄마는 엄마 자신이 사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내가 있어야 너도 있는 거지. 내가 죽으면 다 아무 소용도 없는 거야. 아람은 맞는 말이라고 그 말에 수긍을 했다. 어리석은 질문을 던진 걸 후회했다. 도서관 속 소설을 보면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을 하던데.. 아 역시 지어낸 이야기라서 그렇구나. 어리석은 질문을 하고 혼자 쓸데없이 상처를 받고 말이라도 그냥 괜한 기대를 했던 자신에게 실망했다. 엄마에게는 종교가 전부였고 아람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보이지 않았다.
아람에게는 한 살 차이에 남동생이 있었다. 엄마가 남동생을 임신했을 때 제대로 먹지 못하고 일만 한 탓에 동생은 삐쩍 마른 원숭이같이 미숙아로 태어났고 인큐베이터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동생은 학습장애를 앓았는데 열매가 없어서 제 때 학습치료를 받지 못했고 한글을 읽지 못하는 까막눈이 되었다. 엄마는 동생이 특수학교에 갈 장애인이 아니고 우리 아이는 정상이라며 일반학교에 보냈고 열매가 없다며 의사의 권유를 모두 무시했다. 아람이 보기엔 가난을 핑계삼은 방치처럼 느껴졌다.
아람은 어릴 때부터 동생을 가르치는 일을 도맡아 하곤 했다. 엄마 대신 엄마의 역할을 대신해야 했다. 아람이 ㄱ 을 쓰라고 알려주면 동생은 반항하듯 ㄴ을 썼고 공부한 걸 부모님께 검사를 받으러 가면 동생은 매번 아람이 알려준 것과 반대로 썼다. 아람은 제대로 가르쳤다고 주장했지만 엄마는 아람의 말을 믿지 않았고 잘 가르치지 못하는 아람이 대신 매를 맞아야 했다.
아람의 다리는 항상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어서 반바지를 입는 걸 싫어했고 항상 펑퍼짐한 긴바지를 입고 다녔다. 자신의 살을 드러내고 못생긴 다리를 내비치는 게 부끄러웠다. 동생이 학습장애라 익히는 속도가 더뎠던 건데 그 책임을 모두 아람이 지고 매를 맞아야 하니 억울함에 민감해졌다. 그래서 오해받는 상황, 억울함에 굉장히 예민해지곤 했다.
할머니는 우리 꼬추하며 동생에겐 항상 열매를 주시곤 했다. 아람은 동생처럼 열매를 달라고 하지도 않았고 사근사근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똑똑한 탓인지 아님 여자아이라서 그런지 할머니는 동생과 달리 아람에게 쌀쌀맞게 대하곤 하셨다. 싹싹하게 열매를 타가는 동생과 달리 할머니는 아람에게 무관심하게 대하곤 하셨다.
동생은 '열매 내놔.'가 입버릇이었다. 할머니한테 받은 열매로 만족하지 못했던 동생은 설날에 친척들에게 받아서 모아둔 아람의 세뱃열매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결국 꼬리가 길어 들켰지만 엄마는 '왼뺨을 맞으면 오른뺨도 맞아야지. ''일흔 번씩 일곱 번도 더 용서하라'며 성경을 제멋대로 인용하며 아람에게 무조건적인 용서를 강요했다.
오히려 억울하다는 감정을 비추는 아람을 나무라며 첫째니까 뭐든지 용서해야 된다며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 시집살이에서 참는 것을 장녀인 아람에게 강요하며 혼내곤 하셨다. 그러다 보니 억울한 감정, 부정적인 감정을 비추는 자신에게 입을 꾹 다물고 나쁜 맘을 품은 스스로를 자책하는 게 습관이 돼버렸다. 동생은 그 뒤로도 몇 차례 더 아람의 세뱃열매를 훔쳤다. 아람은 '어쩔 수 없지 뭐.. '하고 그냥 집에 붙어 있는 것만으로 감지덕지라며 중얼거리며 체념했다.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는 말처럼 동생은 점점 과감해져서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훔치기도 했고 흡연을 하고 방화를 저질러서 부모님이 경찰서에 가는 일도 잦아졌다. 동생이 속을 썩이니 아람은 엄마를 더 힘들게 하기 싫었고 누구보다 착한 첫째 딸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고치기 위해서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착하고 모범적인 첫째 딸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곤 했다.
아람이 설날에 받았던 세배 열매는 동생의 열매가 되었고 매번 밀린 부모님의 카드값을 메꾸는 용도로 쓰이곤 했다. 부모님이 힘들다고 하시니 안 쓰러워서 갚지 않을 걸 알면서도 마지못해 빌려드리곤 했다.
아람에게 성은 자연스러운 게 아닌 더럽고 부끄러운 수치심이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엄마는 한 번도 아람에게 따뜻한 스킨십을 한 적이 없었다. 아빠가 엄마한테 다가가도 엄마는 항상 거부했고 스킨십은 기분 나쁘고 더러운 것이란 생각을 무의식 중에 하게 됐다.
아람이 초경을 시작할 때도 성에 대한 어떤 교육도 이뤄지지 않았고 방치된 탓에 중학생이 될 무렵 속옷에 축축한 흑갈색 핏덩이를 발견했을 때 상당한 공포감을 느껴야만 했다. 내가 실수를 한 게 아닐까 싶어서 부끄러워서 아무한테 말도 못 하고 늦은 밤에 화장실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시린 손을 호호 입김을 불어가며 얼음장 같은 차가운 물로 속옷 손빨래를 해야 했다. 그럴 때면 눈가는 금방 촉촉해졌다. 가족들 모두가 잠든 밤 소리가 새어 나올까 싶어서 이를 꽉 깨물고서 눈물을 참아냈다. 다음날 퉁퉁 부은 눈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아람은 물속에 푹 담가져 있는 걸 좋아했는데 물속에서는 아무도 자신의 표정을 볼 수 없었고 조용하고 평화로워서 좋아했다.
샤워를 할 때면 따뜻한 물이 온몸을 감싸주는 감촉이 기분 좋았고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복잡한 머릿속이 고요해져서 샤워하는 시간을 무척 좋아했다. 아람은 물을 참 좋아했다. 교회 여름수련회에서 바닷가에 가면 내 몸을 물에 푹 담가서 그 감촉들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기분은 한결 가벼워졌다. 온몸에 힘을 툭 풀고 물 위로 둥둥 떠다닐 땐 구름 위를 떠다니는 모습을 상상했다. 물속에서는 한없이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것 같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푹 물속에 잠길 때의 고요함을 사랑했다. 물속에 푹 잠기면 울고 있는 모습을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을 것 같았다. 가족으로부터 받지 못했던 사랑을 물이 포근히 어루만져주고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물결 사이사이로 비추는 햇빛이 투명하고 찬란하게 아람을 감쌀 때 물속에서 깊은 사랑을 느꼈다. 아람은 물을 좋아했다.
아람은 초등학생 때 가슴이 답답해서 홀로 전철을 타고 겨울바다를 보러 갔었다. 고요하고 적막한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면 이내 답답함이 한결 가벼워졌다. '왜 사는 걸까? 바다를 보며 여러 질문들을 자문자답해보곤 했다. '겨울바다의 추위는 꽤나 매서웠지만 추위를 잊을 만큼 바다를 바라봄이 기분 좋았다. 아람은 답답할 때 바다가 보고 싶었다. 잔잔하고 평화로울 때의 바다의 모습과 닮고 싶었다. 멀리서 바닷속으로 쏙 해가 숨어버리며 노을이 지는 모습을 보면 가슴속에서 뜨거운 뭔가가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아람은 완전히 깜깜해진 고요한 바다를 보며 다시 또 오겠다며 홀로 바다와 약속을 했다.
초경을 시작한 이후에도 아람은 생리가 뭔지 몰랐고 엄마는 하루종일 일 아니면 교회에 계셔서 반쯤 방치된 상태로 자랐다. 몸에 일어나는 이상한 일을 혼자 해결하려고 아등바등해었다. 아람은 혼자서 해결하는 게 익숙했고 도움을 청하는 게 어려웠다. 성에 대해 순진했던 아람은 중학생이 될 무렵까지도 키스를 하면 아이를 낳는 줄 알았다. 입술 사이로 혀를 교차하는 행위가 키스란 것도 고등학생이 돼서 뮤직비디오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되었다. 뭔가 그런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 뭔가 속이 매슥거리는 것 같고 죄를 짓는 것 같았다.
성은 나쁜 것이란 인식과 함께 부정적인 감정, 말과 함께 금기시되어야 했고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라 혼전순결은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야한 짝짓기 동영상 같은 것도 한 번도 찾아보지 않았다. 학교 도서관의 청소년 권장도서와 문학에서 우연히 성에 대한 걸 접하며 충격을 먹고 꽤나 부끄러워했다. 왜 이런 죄짓는 행위를 그렇게 많은 책에서 언급하고 적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보는 것만으로 죄책감이 들었고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은 아람이 동생에게 '바보'라는 한 마디를 던진 적이 있었는데 엄마는 손에 짚히는데 모든 것이 회초리가 되어서 아람의 다리가 보랏빛으로 물들고는 했다.
아람의 아빠는 아람의 몸을 음흉한 눈빛을 스캔하고는 했고 은근슬쩍 가슴을 스리슬쩍 스치곤 했다. 남동생은 잠자고 있던 아람의 입술 사이로 슬쩍 혀를 들이밀고 자신의 욕망을 실험하는 듯했다. 남동생은 아람을 귀여워했는데 아람은 잠결에 물컹거렸던 촉감이 스며들어 눈을 번쩍 뜨고 동생을 밀쳤다. 토할 것 같고 헛구역질이 나고 너무 불쾌해서 눈물이 삐져나와 엄마한테 하소연했다.
하지만 엄마는 가족끼리 사랑해서 그런 건데 왜 이렇게 과민 반응하냐며 오히려 대수롭지 않다는 듯 아람을 나무라곤 했다. 아람은 살면서 키스를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 불쾌한 기억 덩어리인 성추행이 아람의 키스라면 첫 키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람은 한 번도 키스를 해본 적이 없다고 얘길 하곤 했다. 아람의 기억 속에 묻어둔 고통스러운 기억이었어서 사실 아람도 그때의 일을 잊고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로 살게 됐다.
아람에게는 스킨십이 너무 불쾌한 기억 덩어리라서 섹스라는 행위 자체는 굉장한 공포였고 두려움이었다.
가족과의 삶이 괴로웠고 상처가 많은 내가 아이를 가질 가능성을 갖는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두려움이었다.
철저히 준비한다고 해도 혹시 모를 실수로 생길 소중한 생명에게 준비되지 않은 엄마가 되어 괴로운 삶을 선사하고 싶지 않았다.
임신이 두려웠고 사랑을 믿지 않았다. 맞지 않는 사람과 결혼해서 괴로울 바에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에 대한 기대가 없었고 이성은 그냥 어색하고 불편했다. 만약 정말 그런 사람이 생기는 기적이 생긴다면 아람이 조금 더 여유 있고 준비된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되었을 때 만났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정말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확실한 사람과 불안하지 않은 사람과 깊은 사랑을 나눠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그저 나의 욕망을 위해서 몸을 함부로 굴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해 정서적 교감을 하고 싶다며 사랑 수업과 같은 책을 읽고 대화하는 게 아람의 연애 로망이 되었다. 아람의 첫 연애도 스킨십 하나 없던 무미건조한 짤막한 연애에 주변 친구들은 혀를 끌끌 차며 플라토닉 러브냐는 말을 하며 답답해하곤 했다.
어릴 땐 이성과는 눈도 못 마주칠 정도로 어려워했고 굉장히 불편해했고 많은 부분에서 부끄러워했다. 자신의 성기가 어떤지도 제대로 알아보려 하지도 않았고 부정을 했다. 오히려 남자아이들처럼 펑퍼짐한 옷을 입고 화장끼 없는 맨얼굴로 다녔고 분홍색을 혐오했고 여성스럽지 않게 보이려고 남자애들처럼 보이는 파란색을 고르곤 했다.
아람의 부모님은 아람의 눈밑에 있는 점들은 흉점이라고 불행이라고 얘길 하곤 했다. 아람은 자신의 외적인 부분에 '예쁘다'라는 칭찬 또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예쁘단 말에 어떠한 감흥도 생기지 않았다. 외모에 대한 평가보다는 실력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실력과 노력에 대한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을 때 아람은 기분이 좋았다.
고등학생 때부터 학원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했던 아람은 성인이 되어 혼자 알바를 해서 번 열매로 가족이 아닌 자신을 위해 열매를 사용하고 커피 한잔을 마시는 것은 어딘가 사치처럼 느껴졌다. 가족들은 제대로 된 외식 한 번 못 했었는데 식빵 사건 이후 혼자 값비싼 후식을 먹는다는 상상만으로도 아람은 괜한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러다 보니 맛집을 찾아 돌아다니며 먹는다는 게 아람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먹는 시간도 아깝다며 그 시간에 책을 꺼내 들고는 했고 간단한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굶는 일이 잦았다.
배움에 투자하는 거 외에 먹을 거에 열매를 쓰는 게 어딘가 아깝게 느껴졌다. 그래서 여러 동물들과의 모임 자리 또한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피하게 됐다. 대학 선배들에게 밥 사달라는 말도 어려웠고 얻어먹는 자리도 어색했다. 다음에 갚아야 될 텐데.. 밥값이 얼마가 나올지를 머릿속으로 계산을 굴리며 부담스러웠다. 밥 먹는 자리는 숨 막히는 공간이었고 아람에게는 체할 것 같은 가시방석이었다.
편의점 삼각김밥이면 되는데.. 장학금도 받아야 하고 혼자 생활비도 감당하려면 함께하는 술자리는 시간낭비, 사치라고 생각했다. 마음속에서 가고 싶고 놀고 싶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결국 자리를 피하게 됐다. 남들과 비교하며 작아질 자신이 싫었고 쓸데없는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며 sns도 일부로 하지 않고 알바를 하지 않는 날이면 학교 독서실에 하루종일 앉아 있고는 했다.
한 번은 대학 동기가 같이 밥을 먹자고 했다. 매번 성적을 챙기고 일하기 바빠서 모든 자리를 뺐던 것 같아서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마음을 내어 동기가 있는 식당으로 갔다. 식당에는 동기와 아람이 공연의 하우스 매니저 스탭을 할 때 봤던 친하지 않은 선배가 있었다. 아람이 서있는데 엉뚱한 추파를 던졌던 선배였다. 아람은 낯을 가리기도 했고 들은 바가 없어서 무척 당혹스러웠다. 선배는 같이 밥을 먹는 내내 눈을 성형했냐느니.. 입술에 키스를 갈겨버리고 싶다느니 온갖 이상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아람은 웃으면서 음~ 싫어요. 아니에요. 를 연발했고 선배는 비싸게 군다며 차갑다며 아람을 비꼬는 언행을 시전 했다. 선배는 음료를 사준다는데.. 아람은 밥만 먹고 쌩하니 기숙사로 돌아와서 이불을 머리가 보이지 않도록 뒤집어썼다. 매번 동기들과의 자리를 빼고 알바나 공부만 한다며 틀어박혀 있었다가 모처럼 마음을 냈었는데.. 씁쓸하고 불쾌했다. 아람은 원래 잘 꾸미지도 않았지만 괜히 이상한 소리 듣고 귀찮은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공연 무대에서만 화려하게 화장을 하고 일상에서는 항상 검은색 추리닝을 입고 민낯으로 돌아다니곤 했다.
아람은 열매보다 더 나은 이상적인 가치에 대한 얘길 하곤 했는데 이에 대해 '넌 열매에 대한 혐오가 있는 것 같아.'라는 말로 돌아왔다.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성경에서 열매는 일만 악의 뿌리란 말도 영향을 받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람은 가족을 미워할 수 없어서 열매를 미워하려고 했던 것 같았다. 가족을 미워하면 가족을 미워하는 자신을 미워하게 되니 열매를 미워하고자 했다. 그리고 열매에 대한 열등감과 자격지심은 다른 동물들로부터 멀어지고 스스로를 고립되게 만들었다.
과거 인간의 역사 속 마더 테라사는 물질적 지원을 받지 않고 환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받고 공포에 떨게 했던 것처럼 너무 이상적인 가치와 신념에 사로잡혀 물질을 외면하면 더 발전이 없고 그건 공포와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매를 혐오하며 이상적인 가치만을 이야기하는 것 또한 사실은 모순덩어리였다. 결국 먹고 마시고 이상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열매가 필요했다. (열매) 도구는 (열매) 도구일 뿐이고 어떤 동물이 어떻게 적절하게 사용하는지가 중요한 건데.. 물론 열매 만능주의가 되어 생명의 가치보다 경시된다면 문제가 생기겠지만.. 적절한 균형이 뭘까? 에 대해 아람은 생각해보곤 했다.
가족들은 아람에게 많이 의지했고 아람은 점점 지쳐감을 느꼈다. 도와주면 도와줄수록 빚은 늘어갔고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듯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다. 아람의 가족들은 스스로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도와주는 아람에게 더 의지하려 했고 아람의 어깨는 점점 무거워졌다. 아람이 취업난으로 열매를 벌지 못할 때면 가족들은 아람의 무능을 탓했고 아플 때면 네가 교회를 가지 않기 때문에 아픈 거라며 신의 뜻을 거스르기에 불행한 거라는 말로 되돌아왔다. 아람의 심정이 어떤지는 가족들에게는 별로 중요치 않은 것 같았다.
가족과 한마디 한마디를 나눌 때마다 상식과는 거리가 먼 답변에 벽하고 대화를 나누는 듯했고 마음속에 깊은 답답함이 올라왔다. 숨이 턱턱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 채한 것처럼 가끔 숨이 쉬어지지 않는 걸 경험했다. 화병이었다. 그럴 때면 책을 읽고 글을 휘갈기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미친 듯이 달리기를 하며 몸을 혹사시키다 보면 나아지곤 했다.
아람은 학창 시절 달리기 중에서도 셔틀런이란 종목을 좋아했다. 셔틀런 대회에 학교 대표 선수로 뽑힐 정도로 오랫동안 끊질기게 버티는 것 하나는 자신이 있었다. '말이야. 아베 마리아~~' 셔틀런을 뛸 때면 항상 나오는 음악소리였는데 노래 덕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람은 의식처럼 시험을 보거나 계주 선수로 달리기 직전에 긴장이 될 때면 손바닥에 바를 정자를 그리고 손바닥을 입에 갖다 대고 숨을 3번씩 깊게 마시고 뱉고를 반복하곤 했다. 그렇게 숨쉬기를 하면 약간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아서 습관처럼 의식을 반복하고는 했다. 삑! 셔틀런의 출발 신호가 울렸다. 삑! 삑! 느슨했던 셔틀런의 출발신호가 점점 빨라졌고 30번이 넘어갈 때쯤부터 다른 동물 친구들은 하나 둘 모두 떨어져 나갔다.
아람은 어느 시점에 턱끝까지 차오르는 숨이 가벼워지는 묘한 즐거움을 경험하며 몸이 붕붕 날듯 하늘을 나는 것 같은 경험을 했다. 35번을 왕복을 하고 40번.. 마지막 50번 음악이 끝날 때까지 왕복을 하며 달리다 보면 온몸을 감싸는 바람의 감촉이 아람이 흘리는 땀을 시원하게 식혀줬다. 바람의 느낌이 살곁으로 전해질 때 기분이 너무 좋았다. 아람은 달릴 때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고 고통스러울 때 살아있는 것 같단 묘한 느낌을 받고는 했다.
하루에 14시간씩 일만 하면서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해보고 27살이 된 아람에게 어머닌 교회에 다니고 있는 40살의 열매와 건물들을 가득 가진 두더지 씨를 만나보라고 권유했다. 아람은 가족이 자신을 열매와 맞바꿔 팔아 버리려는 게 아닌가 이게 가족이 맞나 싶어 불쾌함을 느꼈다. 아람의 가족에게 자신은 atm기계 같단 생각이 들었다. 아람은 그러면서도 그런 부모님을 마냥 미워할 수 없었다. 늙고 병들고 살아온 삶이 너무나 애처로웠고 가난을 뼈저리게 경험한 부모님이었기에 무엇보다 나를 사랑하는 걸 알고 있기에 너무 밉지만 미워할 수 없었다. 그런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하고자 했다.
누군가 연애 이야기를 하면 '해야죠~ ' 싱긋 웃으면서 얘길 했지만 사실 마음속 깊숙이 사랑을 믿지 않았다.
아람에게는 연애를 하고 결혼하고 사랑을 나눈다는 게 버겁고 사치처럼 느껴졌다. 마음 한편에는 나와 함께하면 같이 불행해질 거란 그림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다채로운 사랑의 감정보다는 버림받을 것이 두렵다 못해 공포스러웠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의지를 하는 것도 몰랐고 대접을 받는 것도 부담스럽고 어려웠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너무 어려웠다. 혼자가 꽤나 익숙했고 외로움이란 감정도 사실 무감하니 느끼지 못했다. 항상 변화하고 성장하고 싶었고 평범한 삶이 목표가 되었다.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한 부모님의 서툴고 잘못된 사랑 방식이 안타깝고 그저 연민을 느꼈다. 하지만 마음속의 답답함을 지울 수 없었다. 이들 또한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해서 제대로 사랑을 주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들이니 아람은 그들을 끌어안고자 했다.
그렇게 “난 괜찮아”를 연신 입으로 되뇌었다. 아니 반드시 괜찮아야 했다. “괜찮다”를 주문처럼 되뇌다 보니 정말 괜찮은 것 같았다. 그렇게 연신 마음속으로 “괜찮아”를 되뇌었는데 날이 화창하고 찬란한 어느 날 몸이 스위치를 끄듯 turn off 상태가 되었다. 차비를 아끼려 자전거를 타면서 바삐 일을 가던 중 뜨거운 길바닥에 땀으로 차갑게 젖은 몸이 질펀히 내동댕이 쳐지고 나서야 온전히 휴식이란 걸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아.. 괜찮은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나 괜찮지 않았네. 하하.”
몸이 경직되어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던 아람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경련으로 파르르 떨리는 입술 사이로 “하하” 쓴웃음을 지었다.
그 와중에도 응급실 입원비와 일을 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걱정을 하는 자신의 처지가 꽤나 처량해졌다.
좀 더 단단하게 견디지 못하는 연약한 자신의 한계에 몸뚱이에게 화가 나고 속상해서 눈앞의 시야가 희뿌옇게 흐려졌다. 말도 나오지 않았고 몸도 움직이지 않았고 온몸이 가위에 눌린 듯 경직되었다. 아래로는 따뜻한 연한 레몬 색깔의 물이 다리를 전체적으로 감싸는데 수치스러웠다.
아람의 가족은 “각종 사기를 당하거나, 9시 뉴스에 실릴만한 퍽치기 사고로 엄마가 입원하기도 하고, 집을 담보 대출받아 헌금을 내서 막대한 빚을 지거나, 아버지가 특발성 폐섬유화증이란 불치병에 걸리기도 하고, 멀쩡한 집을 팔고 교회 앞 전세로 이사를 가고 개인회생을 하는 등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벤트들이 불꽃놀이를 하듯 겹겹이 펑펑 터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아람의 몸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종종 부서지듯 방전이 되곤 했다. 1년에 한두 번씩은 연례행사처럼 미주신경성 실신으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가는 게 꽤나 익숙했다. '흠.. 내 인생이 드라마보다 재밌는 것 같은데. 난 내 인생의 주인공이구나. 한번 소설이나 써볼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했다.
적응할 법도 한데.. 매번 겪어도 가족 일은 날로 날로 새롭고 짜릿해서 몸이 도통 적응을 못하는 듯했다.
그래서 웬만큼 화날 일도 없었고 사소한 걸로 다투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피식 웃으며 귀엽단 생각이 들었다. 싸워서 뭐 하나.. 부질없었다.
그래서 어딘가 초연한듯한 아람을 보고 동물들은 종종 애늙은이 같다는 소릴 하곤 했다.
아람은 맹자의 고 자장을 좋아했는데 가족과의 사건이 힘들 때면 꾸깃꾸깃하게 빼곡하게 적어놓은 수첩을 찾아 읽어보곤 했다.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려고 하면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근육과 뼈를 깎는 고통을 주고,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 생활을 빈곤에 빠뜨리고,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한다. 그 이유는 마음을 흔들어 참을성을 기르게 하기 위함이며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
결국 내가 이 일련의 사건들을 겪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을 공감하고 좁다란 내 마음 그릇을 조금 더 넓히고 옳게 쓰이기 위함이구나. 란 생각에 조금 더 고된 상황들을 견딜 힘이 됐다. 그래서 아람은 글을 읽는 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고 아무도 공감해주지 않는 자신을 마음속 깊숙이 위로를 건네주는 듯해서 눈가가 따뜻한 물로 촉촉해졌다.
아람은 여러 차례 실신을 경험한 탓에 ”아.. 쓰러지겠네. “ 감이 오며 머리를 보호할 요령이 생겼고 이번에도 머리에 이상 없이 무사히 잘(?) 기절할 수 있었다. 그래도 갑작스럽게 쓰러지는 거다 보니 일에도 지장이 생기는 부분은 꽤나 번거롭고 괴로웠다. 명색의 움직임 강사인데 별거 아닌 일에 쉽게 무너진 자신의 나약한 모습이 약간 화도 나고 부끄러웠다.
이렇게 실신을 한 번 겪고 나면 한동안 몸의 텐션을 끌어올리려고 해도 도저히 올라가지 않았고 강바닥에 가라앉은 진흙 마냥 축 늘어져 있는 상태를 지속해야 했다.
생각이 많고 몸의 감각들이 예민한 탓에 아람의 스트레스는 신체화로 발현되곤 했는데 그중에 몸이 가장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바로 *미주신경성 실신이었다.
움직임을 공부하면서 공황장애와도 비슷하고 우울증과 비슷한 이 증상에 대해 알았으니 망정이지. 몰랐다면 정신과에 우울증 치료약을 먹으며 해결을 못 보고 계속해서 괴로워하고 있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공황장애와도 비슷한 이 질환이 공포 그 자체였다.
아람은 어릴 땐 정확한 진단 없이 기립성 저혈압 정도로 알았는데 움직임 강사로서 몸의 대한 공부를 하다 보니 미주신경성 실신임을 혼자 어림잡고 자가 진단하고는 있었다. 응급실에서 ct, mri, 피검사 등 여러 검사를 하며 예상했던 증상이 ”미주신경성 실신“임을 의사 선생님의 말을 통해 정확히 확인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죽음을 한 번씩 상기시켜 주는 데에 나름 배울만하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고 아람은 자신과 비슷한 회원님들을 보며 산후 우울증과 스트레스로 몸이 망가진 분들에게도 얘기할 소스와 공부할 거리가 많이 생겼고 몸이 괴롭긴 해도 공감 거리가 생겼으니 힘들지만 이 경험 또한 썩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아람은 처음 몸이 강제적으로 전원이 꺼질 때의 죽음의 공포를 기억한다.
앞의 시야가 흐려졌고 속이 매슥거렸으며 죽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의 주마등이 스치는 듯 자신을 회고하게 되었다.
아람은 이 실신이 참 괴로운 와중에도 마음속으로 간절히 살고 싶었다.
문득 내가 먼저 살아야 가족을 살릴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해서 나가라며 나가지 말라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릎 쓰고 아람은 살고 싶어서 회색빛 일터 바로 앞으로 조그마한 단칸방을 구해서 그렇게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집을 떠나 생긴 자신만의 보금자리는 아람에게 홀로 사색할 여유를 가져다줬다. 보금자리를 빌리기 위해 은행에서 대출받은 열매들은 일을 더 열심히 해야 되는 충분한 동기가 됐다. 홀로 누울 자리 하나밖에 없는 (6평이라곤 하지만 실평수는 4평 남짓) 자그마한 단칸방이었지만 한쪽 벽에 좋아하는 책들을 가득 넣을 공간이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아기자기한 알전구 조명과 어릴 적 그린 그림들로 아이보리 빛깔로 포근하게 보금자리를 꾸몄다. 조그마한 집은 앞으로 더 큰 공간으로 갈 수 있고 앞으로 더 올라갈 일만 남았단 생각에 들뜬 희망도 품게 되었다. 무더운 여름 에어컨 하나 없이 선풍기로 버티는 방이었지만 눅눅하고 습한 반지하에서 벗어나 햇볕이 드는 방이었기에 작아서 여름엔 너무 덥고 겨울은 금세 차가워지곤 했지만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대출받은 열매와 맞바꾼 자유를 아람은 사랑했다. 가족과의 거리감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아람의 증상들은 금방 호전되는 듯했다. 아람은 그렇게 회색빛 일터에서 일에 푹 빠져 살았다. 청춘이라는 푸르른 세월이 가는 것도 모를 정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에 매진했다. 누가 일을 시킨 것도 아니었는데 일이 주는 성취감과 보람을 사랑했고 노력한 만큼 결과로 되돌아오는 정직함이 좋았다.
"넌 너무 일만 하는 기계 같아."
1년이 지나갈 무렵 회색빛 일터에서 아람을 지켜보던 백곰 매니저가 던진 한마디였다.
아람은 머릴 얻어맞은 듯 이 말을 곰곰이 곱씹게 되었다.
아람은 사람들에게 움직임을 알려주는 일을 했었는데 한 번은 과로로 인해 출근길에 졸며 걷다가 언덕길에서 다리를 접질려 깁스를 한 적이 있었다. 다친 당일도 쉬지 않고 저녁에 절뚝거리며 바로 일을 나갔다. 그런 아람을 보며 주변 동물들은 독하단 소릴 종종 하곤 했다.
아람도 본인 자신보다도 일이 우선순위임을 알고는 있었다. 주변에서 쉬라는 만류에도 꿋꿋이 쉬지 않고 일을 했다. 일이 없는 것, 뭔가 발전이 없고 비어있는 여백은 아람을 꽤나 불안하게 했다. 오히려 비어있는 여백은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만들어서 치열하게 머릿속에 뭔갈 채우거나 몸을 고단하게 혹사시키고자 했다. 좋게 포장하면 워커홀릭, 나쁘게 표현하자면 일중독이었다. 항상 열매가 없고 부족하다는 조급함이 아람을 짓누르곤 했다. 누구 하나 의지할 수 없고 홀로 서야 된다는 생각은 세상을 보는 시야를 더 좁게 만들었으며 자신밖에 보지 못하고 계산적으로 현실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아람에겐 타인을 돌아보고 주위를 둘러볼만한 여유가 없었다.
주 6일을 일을 나가고 주말도 항상 워크숍을 나가며 일에 푹 빠져 살았다. 그렇다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한 것도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었다. 순수하게 일과 배움이 재밌었다.
배운 지식들을 현장에 적용하고 여러 동물들이 좋아지는 모습들이 뿌듯했다.
아람에겐 일이 주는 성취감이 즐거웠다. 일과 운동은 노력한 만큼 정직하게 결과를 보여줬다. 일을 할 때 아람은 살아있는 것을 느꼈다. 무가치하게 느껴졌던 자신이 일을 할 때만큼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가치 있는 존재처럼 느껴졌고 일을 하면서 조금씩 자존감도 차오르는 걸 느꼈다. 일을 하면서 칭찬과 긍정적인 피드백,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을 다양한 동물들을 통해 받았다고 생각했다.
아람에겐 일이 곧 사랑이었다. 아람은 얼핏 일을 빼곤 자신에게 다른 색깔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단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식을 전달하는 건 자신 있었는데 관계와 마음을 살핌에는 표현하는 것이 서툴고 두려웠다.
그렇게 아람은 '너무 일만하는 기계같아.' 란 한마디에 회색빛 일터를 떠나 일이 없는 주말에는 푸르른 빛을 지닌 산을 찾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제 2봉우리 계속-
푸르른 산, 바다, 다양한 공간에서 동물 친구들을 만나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을 예정이에요.
*열매
:돈과 같은 개념으로 화폐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아람의 세계에서도 열매는 권력이기도 하고 열매만능주의 사회이다. 열매가 나쁜 게 아닌 열매를 대하는 각각의 동물들의 마인드가 결국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미주신경성 실신
:자율신경계의 문제로 교감신경의 기능이 과하게 활성화되고 부교감신경계의 기능이 떨어진 상태로 뇌신경의 문제로 생기는 실신 증상이다. 공황장애와도 얼핏 비슷한데 현재 별다른 치료약은 없다. 한의학에서는 화병 상태에서 외부적 스트레스가 왔을 때 생기는 것으로 보고 림프순환을 연구한 교수는 뇌신경 10번 신경인 미주신경을 깨우는 작업을 통해 호흡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