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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정말 믿나요?

'영주산 마을공동체' 북토크

by 무당벌레

식겁했다. 학부모들의 질문은 깊었고 눈빛은 열뗬다. 식은땀이 삐질 흘렀다;;;


8세부터 초등 고학년 자녀를 둔 아빠 넷, 엄마 여섯과 둘러앉았다. 부부도 한 쌍 포함돼 있었다. 『서툰 아빠의 마음공부』 북토크. 기조발제 뒤 저녁 8시 남짓 시작된 질문들이 밤 11시가 되도록 끝날 줄 몰랐다.


책 속에 등장한 부모자녀 갈등과 그로 인한 부모의 상실감과 아픔. 그게 머지않아 닥칠 일임을 미루어 짐작할 줄 아는 학부모님들이었다. 제일 길게 나눈 이야깃거리는 아래 질문으로부터 시작됐다. 초등 두 자녀 엄마의 고백이었다.


‘자녀를 향한 믿음에 관한 내용’이
특히 와 닿았는데,
제 경우엔 자녀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속 깊이 확신하지 못해요.
믿지 못하는 부모로서 자신을 볼 때
슬픔과 불안이 찾아와요.


정말 자녀를 믿나? 자녀를 믿는다고 말하지만 진짜 그런지 의심스럽단다. 그런 모습에 슬프고 불안하다 했다. 솔직한 고백이었다. 피하고 싶은 물음과 직면하겠다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자녀가 자라면서 부모자녀는 서로에게 실망할 날이 오고야 만다. 기대의 크기만 한 좌절감과 배신감과 억울함이 덮친다. 게다가 그 상처는 잘 드러내지도 못한다ㅠㅠㅠ 물론 나도 그랬다. 저 질문은 책 속의 아래 문단으로부터 나온 질문이었다.

부모 눈높이를 떠넘기는 게 믿음이며 부모 마음에 들어서 믿는 게 신뢰라면 누군들 못 할까. 책 지정 문제로 충돌했던 그날, ‘그래도 믿었는데!’라며 아빠가 치밀어 올랐던 날 아들도 속으로 외쳤을 게다. ‘제발 날 좀 믿어주세요!’

신뢰의 뒤끝이 어째 이럴까. 내 기대에 틀리더라도, 혹시 내 기대와 틀리기에 필요한 게 신뢰 아닐까?

- 믿음 vs 믿음 공방전, 그 뒤끝은?(믿었는데 배신당하면?) 중에서


아빠는 아들을 믿었다. 아빠는 정말 최소한을 요구했으니 이 정도는 분명 따라줄 거라고 말이다. 아들은 그 믿음을 보란 듯 뭉갠 뒤 아빠에게 맞섰다. 제발 자기를 좀 믿어 달라고…. 뭐여 이거슨?


아빠와 아들이 말한 ‘믿음 혹은 신뢰’는 상대를 향한 각자의 기대였다. ‘내가 바라는 대로, 내 방식이나 눈높이(기준)에 맞게, 세상을 바라보는 내 가치관에 맞게’ 상대가 행동하거나 생겨먹었기를 바라는 기대였다. 내 바람을 저버리지 않을 거라 여김. 그건 내 눈높이에 ‘합격’하라는 은연중의 요구였다. 고상한 색조로 분장한 내 욕심 말이다.


그 뒤끝은 영 볼품없었다. 상대의 성취도를 재는 평가와 채점이 뒤따르니 말이다. 둘 중 하나. 내 맘 같아서 흐뭇하거나 그렇지 못해 괴롭거나…. 100점 만점에 50점이면 죽도 밥도 아니었다. 믿음대로 된 건지 뒤통수를 맞은 건지. 앞으로 믿어얄지 말아얄지ㅠㅠㅠ. 상대에 대한 평가와 채점을 먹고 자란 불안은 그렇게 부모와 자녀 각자를 갉아먹는다.


눈빛 속에 숨은 요구일 뿐이었으되 자녀에게는 내밀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전달된다. 부모의 커트라인을 넘지 못할 거라는 좌절감, 혹은 세상을 보는 가치관이 부모와 전혀 다르니 불가피하게 닥치는 갈등과 슬픔대체 어째야 할까. 자녀는 자기를 정말 믿는 게 아님을 알아채서 분노하고 좌절하며, 부모 역시 자녀의 세상관을 받아들일 수 없어 분노하고 좌절한다. ‘믿음’은 그렇게 부모자녀간을 할퀸다.


'찰떡같이 내 맘 같은 상대'란 게 애당초 가당키나 하던가. 고르고 고른 물건도 눈에 다 안 차는데 하물며 독립적 인격과 만나고서야…. 심지어 나 속의 또 다른 나조차 그 커트라인을 못 넘는데…. 정도의 차이일 뿐 상대는 늘 불합격이다. 믿음이 그저 ‘내 눈높이 부합 기대’라면, 믿음은 헛된 판타지다.


자녀를 믿지 못하는 슬픔과 불안을 고백한 저 엄마의 용기처럼, 자녀를 향한 믿음이라기보다 욕심일 뿐이었을 수 있음 앞에 무릎 꿇을 수 있다면, 그 좌절 뒤의 자기연민을 치유하거나 충돌 넘어설 길도 열리기 시작할지 모른다.



이 마을의 학부모들은 가족이란 가장 중요한 타인일 뿐임을 이해하고 있었다. 부모자녀 사이 역시 가장 조심스럽게 대할 하나의 인간관계라는 걸 말이다. 인간관계 속 그 어떤 독립된 인격에게도 희망사항대로 키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나 원하는 대로 자라줄 거라는 욕심을 떠넘길 수 없다.


커가는 자녀와 '함께 잘 지낼 수 있기 위한' 진정한 믿음에 관해 오래 이야기 나눴다. 믿음의 품격에 대해 따로 발행글을 쓸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책을 통해 말하려 했던 건 결구라를 넘어선 진정한 믿음을 향한 염원이었겠구나 하고 깨달았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마땅히 거처할 믿음의 자리가 있다면 어떻게 마련돼야 할까. 그 열띤 이야기들이 깊어가는 초겨울밤의 마을 다락방을 데웠다.


'영주산 마을공동체’와 함께한 북토크였다. 10여 년 전부터 고양시 덕양구 내곡동으로 알음알음 이사와 모여 사시는 분들이다. 공동육아 어린이집과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엮인 공동체다. '마을 다락방'은 출자금과 회비를 모아 마련한 공동공간이었고 모임과 취미 활동의 중심이었으며 고민을 나누는 사랑방이기도 했다. 수원으로 이사갔는데도 이날 북토크에 참석하면서 오랜만에 자고 가겠다는 분도 있었으니 끈끈한 인연들이었다.


공동체를 잇는 연결고리 중 가장 중요했던 게 함께 하는 육아였으니 『서툰 아빠의 마음공부』를 읽은 뒤 주신 질문도 하나같이 진지하고 의미심장했다. 식은땀마저 흘렀으니 내게도 참석자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을 채운 질문들이었다. 작가님들께도 그럴 지 모르겠다 싶어 나머지 질문을 추려서 싣는다. (게임 대처법, 독서 습관, 사춘기 팁 같은 육아법 질문들은 자료로 대체해 드렸다.)



Q. 작가님이 아빠가 될 무렵 ‘나는 이런 아빠가 되고 싶다’라는 지향점이 있었나요?


Q. 책에서 ‘부모는 자기가 겪은 세상대로 부모 노릇을 계획한다’는 문장이 있어요. 작가님이 기억하는 아들로서 본 세상과 작가님의 아버지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누군가의 아들에서 누군가의 아빠로 되어가는 과정에서 달라진 관점이 있다면?


Q. 부모로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언제였고, 그 경험이 지금의 관계에 변화를 주었나요?


Q. 많은 부모들이 내가 잘 키우고 있나 하는 불안과 후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작가님은 서툰 부모들의 실수와 후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가요?


Q. 부모가 된다는 것의 본질에 대해 한 문장으로 말해 주신다면?


Q. 관계에서 믿음에 대한 내용이 특히 와 닿았는데 저의 경우 자녀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속 깊이 확신할 수 없고 믿지 못하는 부모로서의 자신을 볼 때 슬픔과 불안이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서로 다르고 부족한 게 만나서 함께 자라고 그런 믿음 안에서 서로 공존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좀 더 쉽게 풀어주신다면?


Q. 중학교 때 아들에게 사준 샌드백이 여기저기 찢긴 것을 보며 마음이 무거웠다고 하셨는데, 어른도 아이도 본인의 감정을 잘 표현하는 것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자녀가 잘 표현해 주길 바라지만 나는 잘 되지 않아서 내 부모에게는 표현이 서툰 저를 보기도 해요. 감정을 잘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방법이 있다면?


Q. 평범한 육아 에세이에 머무르지 않고 문학, 고전, 영화 등 인문학과 연결하여 성찰하셨는데, 만약 책을 읽어 보지 않은 분들께 소개된 영화나 고전 중 꼭 보면 좋겠다고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그리고 그 작품을 감상하면서 지녔으면 하는 질문이 있다면 부모들이 스스로 답을 찾아 갈 수 있도록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Q.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기에 완전히 사랑할 수 있다’라는 표현으로 전하고 싶은 작가님의 진짜 마음을 들려주신다면? ('진짜 마음';;; 질문하신 분의 진짜 마음은 또 어디에 닿아 있을까 한참 고민했다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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