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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안 해도 출간제안서는 써보기

『서툰 아빠의 마음공부』 출간제안서

by 무당벌레

출간을 꿈꾸는 분이나 원고 투고를 계획중인 분께 도움될 글이면 좋겠습니다. 『서툰 아빠의 마음공부』 를 출간하면서 만든 '출간제안서' 내용입니다. 제안서의 필요성과 중요성, 작성법, 샘플에 대한 글입니다. 제안서가 지루하면 투고 원고는 열리지도 않고 휴지통 행입니다. 원고부터 본다는 편집자 딱 1명 만났습니다. 그나마도 소개 받은 편집자였으니 그래 주신 듯합니다.


제 이력이 좀 다양했던지라 여러 입장에 번갈아 빙의하면서 써 본 출간제안서 내용입니다. 요즘 출판사가 뭘 중요하게 여길까 곱씹어 봤구요. 출판이란 기본적으로 출판사가 제 원고를 상품화하겠다며 1,000만원을 투자하는 과정입니다. '상품성은 모호한데 기묘한 원고' 정도로 받아들였음에도 출간을 결정한 건 제 제안서가 영향을 끼쳤다고 편집자가 귀뜸하더군요. 정답이야 없겠지만 행여 참고될 제안서면 참 좋겠습니다.


『서툰 아빠』를 읽어 주신 분들께는 A/S가 됐으면 합니다. 일종의 구상도나 조감도인지라 좀 다른 관점으로 소화해 보실 계기도 될 듯합니다. 가령, 저자의 기획‧집필 의도는 뭐였을까, 왜 이런 집필 방식을 택했을까, 집필 의도가 제대로 구현된 책인가, 나라면 어떻게 다르게 썼을까…. 1대 1 북토크라 할까요;; 자기 원고를 바라볼 때나 다른 책을 읽을 때도 도움되셨음 합니다.



■ 제목

서툰 아빠의 마음공부


■ 부제목

아빠와 아들을 잇는 관계 인문학


■ 장르

인문교양에세이


■ 기획 의도

1) 점점 낯선 타인으로 자라는 아들(자녀)와의 충돌에 힘들어 하는 아빠(부모)들에게

2) 다름을 존중하는 건강한 부모자녀 관계로 성장하는 마음수업이 될 수 있게

3) 소설, 영화, 희곡 속 말다툼을 인용해 20여년 부자 갈등 경험담을 풀어냈습니다.

'한 문장으로 어필한 기획의도'입니다. 1)은 '누구에게', 즉 타깃 독자입니다. 구체적 상황일수록 더 좋더군요. '우울한 독자'보다 '직장에서 짤려 우울해하는 독자' 같은 식이지요. 타깃 범위가 좁다는 것과는 다른 말입니다. 2)는 '무엇을' 입니다. 그 독자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 원고인가입니다. 3)은 '어떻게'입니다. 유사 경쟁도서와의 차별점입니다. 어떻게 다르게 보여주는가.

이 3가지가 명확하다면 이후 모든 작업에서도 기준이 돼주더군요. 원고 작성, 원고 보충 및 삭제, 제목, 소제목, 목차 구성, 퇴고, 편집디자인, 판형, 종이, 홍보/마케팅 방향 등에서요.
가령 '서툰 아빠의 마음공부'는 1)과 2)를 합친 제목입니다. 부제목 '아빠와 아들을 잇는 관계 인문학'에서는 3)을 드러내려 했구요. 무난한 방식이지요. 심지어 퇴고 때도 편합니다. 이 단어가 좋을까, 저 단어가 좋을까 싶을 때조차 마음을 정할 기준이 돼 주더군요.


■ 카피(안)

아빠는 모르고 아들은 말하지 않는다 / 작품 속 말다툼에서 배운 아빠와 아들의 속 깊은 이야기 /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기에 완전히 사랑할 수 있다. / 엄마는 모르고 아빠에게는 어려운 부자간 여정 / 위기의 아빠 vs 서울공대생 아들의 20여 년, 그렇게 부자간이 된다 / 부모 인문학만큼 필요한 마음수업도 없다!

제안서 필수 요소는 아닙니다. 대개 출판사가 더 잘 뽑으니까요. 다만 제목/장르/기획의도/카피가 명확한 제안서는 저자가 원고 전체를 꽉 잡고 있다는 뜻입니다. 편집자의 시선이 한번 더 머문다더군요.


■ 원고 소개 (머리말의 무난한 뼈대가 되더군요.)


1. 기획 배경

아빠는 모르고 아들은 말하지 않는 시절입니다. 한 교육학 전공 교수 엄마는 중2 아들이 극우 유튜브에 빠져 억장이 무너졌다며 공중파 뉴스에 출연해 인터뷰를 합니다. 교사들은 ‘요즘 교실엔 극우 일베 아니면 ×선비밖에 없다’고 한탄합니다. 올해 초 서울지법 점거폭동 때 건물 방화를 시도하다 체포된 이들 중 10대 남학생이 다수였습니다. 세대 간 대립이나 젊은 층 극우화 문제가 심각합니다.

20여 년 아빠육아 경험담의 탈을 쓴 소프트 교양 인문 에세이입니다. 세대 간의 가치관과 권위 충돌이라는 현대 사회의 보편적인 갈등과 대립의 이슈를, 그 가장 내밀한 형태인 부자 관계의 미숙함을 통해 비춰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어린 자녀를 키운 아빠육아 경험담은 많아도, 성인이 돼 가는 아들과 아빠 간 갈등의 지평을 드러내는 이야기는 드뭅니다. 서로 맞선 타인 사이로 변해가는 아들과 아빠의 관계를 단단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책이 절실합니다.

첫 출간을 꿈꿀 때는 대부분 쓰고 싶은 원고를 쓰기 마련이더군요. 그런데 그게 시의성이나 상품성이 있는지 한 발 떨어져 보는 일입니다. 출간 결정시 중요한 요소인 대중적 관심사와 사회적 이슈와의 연계성입니다. 편집자가 내부 기획회의시 원고를 어필하기에도 좋더군요. 언론 홍보 시에도 도움되구요. 제 경우 챕터를 추가할 때도 이 연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택했습니다. 없으면 만들거나 최소한 있는 척이라도!


2. 핵심 내용

아빠와 아들 간의 20여 년 간 에피소드를 생생하게 보여주면서, 부자관계 속 갈등과 상호 성장에 관한 다짐과 깨달음, 그리고 온전히 아빠 자신을 받아들이게 된 과정을 담았습니다.

그런데 ‘부자갈등’이라는 나무를 ‘인간관계 속 갈등’이라는 숲의 시선으로 보여드립니다. 쑥쑥 자라는 아들과 아빠 간 갈등의 밑바닥에는 부모형제자매, 부부나 애인, 오랜 친구 혹은 동료 같은 소중한 인간관계 속 갈등과 같은 맥락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전혀 다른 카테고리의 성인으로 자라는 아들과의 갈등은 심지어, 함께 부대끼며 살 수밖에 없는 세대나 집단 간 극단적 대립이라는 사회적 이슈의 축소판이었습니다. 작은 다툼이든 큰 적대든 달리 섰으나 같은 노을에 젖어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부자 갈등 경험담과 그 노을의 지평을 겹쳐 보여드립니다. 서로 다름을 확인하면서도 서로 외면하지 않는 법을 알아야 함께 성장할 수 있었고 아들과의 관계도 훨씬 단단해졌기 때문입니다.

차별성이나 임팩트 위주로 짧게 써 호기심만 줘도 충분하더군요. 원고를 읽게 만들어 결국 원고로 승부를 보니까요.


3. 차별성(어떻게 다르게 보여주는가?)

모자 갈등의 주요 이슈는 대개 사랑의 태도와 방식입니다. 애틋함과 서운함, 혹은 잔소리거리 등입니다. 부자 갈등에는 좀 낯선 이슈가 추가됩니다. 서로 맞선 인간관, 도덕관, 직업관, 정치관, 사회관의 격돌과 상호 관용의 이슈입니다. 부자 갈등을 타자와의 공존을 성찰하는 인문학적 지평에서 탐색한 책이 필요한 이윱니다.

부자 갈등을 비춰볼 인문학적 거울과 저울로 고전 소설과 희곡, 영화를 빌어왔습니다. 부자 갈등의 각 챕터마다 픽션 속 등장인물 간 생생한 말다툼 장면을 인용했습니다. 다른 속상함에 비춰봐야 자기 속상함의 맥락이 선명하고 풍성해집니다. 엄선한 작품들이기에 일상 에세이 이상의 재미와 소양을 얻는 기회도 될 것입니다.

가볍지 않은 얘기이지만 최대한 친근한 단어와 위트 넘치는 짧은 문장으로 썼습니다. 극강의 가독성은 물론 화해와 공존을 밝히는 책이 되고 싶어섭니다.(기타 차별성에 대해서는 ‘유사경쟁도서 및 차별점’ 참조)

같은 메시지의 여타 책과 다른 이 원고만의 차별성입니다. 두드러지는 게 없다 싶으면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4. 독자가 얻을 수 있는 것

아들과 틀어져 맘이 뒤죽박죽인 아빠들에게, 사춘기 대전을 앞둔 부모의 다짐에도 보탬이 되는 기록일 것입니다. 엄마에게는 부자 갈등의 세계를 엿들을 기회도 될 것입니다.

서울대 공대 최고학부생 아들의 아빠도 별 수 없이 겪어야 했던 상황별, 시기별 부자 갈등의 나이테를 엿볼 수 있습니다. 공감과 위안을 얻으며 갈등에 대처하는 마음가짐을 돌아보실 수 있을 겁니다. 좀 낯설지만 꽤 유용했던 육아 및 자녀교육 팁도 덤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부모자녀 간 상처가 안 나게 하는 솔깃한 방법이나 없던 일로 되돌릴 솔루션이 담기진 않았습니다. 대신 서로의 상처가 서로를 연결하는 단단한 힘이 될 수 있음을 느끼실 수 있을 것이며, 흔들리면서 성장해 가는 부모 자신을 긍정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부자 갈등에 대한 대처법 뿐 아니라 가깝지만 부족한 인간 관계에서 서로 인정하면서도 외면하지 않고 행복해질 수 있는 단단한 힘도 얻게 될 것입니다.


■ 원고 관련 저자 이력

'이 원고의 집필 자격이 있음'을 보여줄 이력 위주로 간추리는 게 좋더군요. 관련 전문적 이력이나 성과, 그리고 실제 경험 말입니다. 관련 이력이 부족하다면 꾸준한 관심사였다는 것만이라도 보여줄 내용이 있어야겠지요. 관련 없는 장황한 이력 소개는 자신감이 없어 보여 안 적는 것만 못하더군요.
가령 제 브런치 작가소개에 그대로 담았는데, 육아 경험과 문제 상황, 그리고 자녀교육 전문성과 성과, 그리고 인문서 집필 역량 위주로만 추린 소개입니다.


■ 유사경쟁도서 및 차별점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전승환, 북로망스) _ 위로/공감 에세이에 인문학 문장들을 인용해 성공한 대표적 케이스. 자신을 다정하게 대하고, 힘든 관계에는 차라리 적절한 거리두기가 낫다는 위안 심리학 독서 수요의 최근 결정판.

『아빠의 마음공부』 _ 인문작품을 인용하는 장점 도입하면서도 말다툼 인용에 집중해 몰입감 더 높임. 메시지 면에서도, 상처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애증관계 앞에서 자기위로 외에 근본적인 단단한 힘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메시지. 자기긍정심리학만으로 부족한 독자에게, 충실하게 관계와 직면할 필요가 있다는 전복적 메시지 소구.

이런 방식으로 총 5권을 선정해 비교했습니다. 『부모 인문학 수업 :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한』(김종원, 청림life),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김봄, 걷는사람), 『감정수업』(강신주, 민음사), 『철학 버스 : 생각의 씨앗을 발견하는 열두 번의 부모 철학 수업』(우서희, 다산에듀)입니다.

출판사는 이게 어느 정도 팔린 책들인지 체크합니다. 그러니 좀 팔리는 분야임을 어필하면서도 자기 책은 또 어떻게 다르다는 걸 어필하는 난이도 높은 과정... 원고 자체가 엄청 뛰어나다면 모를까 말씀드렸듯 자기 객관화를 위해서도 충실하게 조사해 봐야 할 듯합니다.


■ 저자 홍보/마케팅/판매 역량

SNS 채널이나 독서 모임, 북토크 같은 기본적 채널을 나열할 거라면 아예 안 적는 게 좋더군요. 원고 자체에 자신이 없다는 뜻으로 비칠 듯합니다. 추천사 '섭외 중', 협조 '가능' 같은 표현도 없느니만 못 하더군요.

두드러지고 확실한 판매 채널을 보유했다면 당연히 출간 결정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그런 것 위주로만 한두 가지 적는 게 좋습니다. 유튜브 구독자 10만 명 이상이라든가 특정 기관의 확실한 구매 의사 같은 것만 적는 게 좋더군요. 추천사도, 정말 가능한 상황이라면 한 분에게서라도 간략하게 받아서 투고 시 첨부하는 게 좋구요. 무난한 구독자수의 SNS라면 저자 소개에 링크 주소만 달아 출판사가 살펴보게 하는 게 낫겠더군요.

미팅이 성사됐을 때 제안하고 언급해도 충분한 듯합니다. 홍보 마케팅에 적극 참여할 자세가 돼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필요시 저자 구매 의사도 이때 밝히면 될 듯합니다.


■ 목차 첨부

제안서 내용보다 목차를 먼저 보는 편집자도 꽤 있다더군요. 그 뒤에 제안서를 볼 지 정한다네요. 목차만으로 스토리텔링이 된다면 베스트입니다. 각 부와 장 제목이 잘 뽑혔나는 덜 중요합니다. 나중에 뽑아도 되니까요. 구조적 짜임새나 내러티브가 드러나는 목차는 제안서 뿐만 아니라 원고까지 읽게 만듭니다.




투고용 출간제안서의 1차 목적은 출판사가 '원고를 열어보고 제대로 읽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원고 자체의 매력과 상품성을 오래 고민한 흔적이 우선입니다. 누가 봐도 확실한 출간 결정 요소다 싶은 게 아니라면 부가적 요소에 목 맬 필요 없더군요.


필자에게는 '자기 원고를 낯설게 보게' 해줍니다. 그러니 출간제안서는 때마다 써보는 게 좋을 듯합니다. 원고 구상 단계에서부터 출간 직전까지도 자꾸 자꾸 써보고, 피드백 받고, 업그레이드하다 보면 '점점 자기 원고를 장악'해 간다는 자신감이 오릅니다. 저 같은 아마추어일수록 꼭 거쳐야 할 과정이더군요. 원고보다 제안서를 쓰면서 더 많이 배우는 듯하더군요.


어쩌면 저를 성찰해 보자며 시작했던 원고가 다행히 기획출간까지 이르게 된 데는 제안서를 20번 가까이 갱신했던 덕 아닐까 싶습니다. 그냥 연재하는 원고도 제안서를 써볼수록 상품으로 변해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존 원고를 공모전용으로 다듬다 보면 원고의 질도 올라가지요? 비슷한 듯합니다.


<서툰 아빠의 마음공부>

프롤로그

목차/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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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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