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놓고 함께 걷는 일에 관해

『널 보낼 용기』 N 「이블린」

by 무당벌레

날마다 러닝 시절에 날마다 워킹을 다루는 두 작품.


첫 작품은 여러 번 망설인 책이다. 브런치 송지영 작가의 『널 보낼 용기』(딸을 잃은 자살사별자 엄마의 기록).


청소년 뇌신경질환에 버겁게 맞서다가 힘이 다해 열일곱에 사망한 딸에게 띄운 편지이자, 그 죽음을 애도하는 법을 찾아야 살 수 있어서 날마다 애쓰는 어떤 엄마의 기록이다. 사회적 질병으로 이제 막 여겨질까 말까 하는 청소년 뇌신경질환 환우와 그 족에게 쥐어주려는 마이크이자 그 질환들의 치명성 보고서 같기도 하다.


나를 끝없이 붙드는 물음 하나를 먹먹하게 깔고 있는 책이었다.


유가족이 어느 날 만약

(그러니까, 다시 빨래를 돌리거나 세수를 하거나 밥을 먹고 청소를 하겠다고 마음먹기 시작한 유가족들이, 무너진 시간을 건너온 힘으로 이제는 상처를 자기 일부로 감당하겠다 다짐하는 엄마나 비로소 고통과 화해해 고통 안에서 걷기를 마다하지 않기로 한 아빠나 끝이 없을 그 회복의 여정을 이 악물고 통과 중인 오빠 같은 이가, 그런 일상의 날에 혹시,)


잘 모르겠지만 정말 모르겠지만 어쩌면, 가장 소중한 이를 구하지 못한 거 같아요.


라는 나지막한 말을 여전히 건넨다면, 너는 그때 어떻게 답할래…라는 물음이랄까.


떨쳐내자면 떨쳐지는 게 아픔 축에나 끼던가. 없던 일로 할 수 있는 상처란 없으니 저 물음은 어디서부터 언제부터 뭐부터 답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인지 정말 모르겠지만 어쩌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겠다, 어쩌면 말없이 어깨를 내주고 눈물에 귀 기울여야 할 때도 있겠다, 숨 죽이며 물러나는 줌아웃 카메라처럼 또 어떨 땐 몇 걸음 곁을 지킬 수밖에 없겠다 싶기도 하다.


그러다가 어쩌면,


구하지 못했다는 말이 설령 남김없이 틀리진 않다 하더라도, 유가족이 그 미안함을 억누르지 않고 안전하게 나눌 수 있는 사회를 촉구하거나, 그렇게 아픔이 내는 새로운 연대의 길에서는 ‘강요된 죄책감’ 따위를 지니지 않을 권리가 온전해질 것임을 함께 믿거나, 뭣보다 그렇게 죽는 아이들이 다시는 없을 세상을 떠올리며 나란히 걷는 일,


그게 살았던 이와 죽을 듯한 이와 살아남은 이들의 곁에 서는 최소한이자 최대한의 애도겠구나 하게도 된다.


그러다 또 만약, 살아남은 이가 살았던 이를 아래처럼 용기 내어 애도하고 치열하게 기억하겠다 말한다면


너는 엄마의 끝없는 슬픔이어서는 안 돼. 끝없이 번져가는 사랑이었으면 해. 어디서든, 너의 빛과 나의 빛이 서로를 향해 비출 수 있기를.(널 보낼 용기, 207p)


그럴 때, 남은 이한테 응답하는 아래 같은 노래나마 한 번 더 전하는 게 어쩌면 방법일 수도 있을까 하게도 된다.

내가 먼저 세상을 뜬대도
슬픔이 당신의 하늘에
먹구름이게 하지는 마세요
슬픔 덕분에
용감해지고 온화해지기를요

뭔가 바뀌겠죠
하지만 떠나는 건 아니에요
죽음이 삶의 일부일 뿐이듯
죽은 이도 살아 있는 이들 틈에서 영원히 살아요
모두 모여서
우리의 여정이 풍요로워질 거예요
순간을 나누며
말할 수 없는 걸 찾아갈 거예요
끈끈함이 차곡차곡 쌓일 거예요

우리를 웃고 울고 노래하게 하는 것들
햇살에 빛나는 눈의 기쁨이나
처음 깨어나는 봄
언어는 없어도 보고 만져지는 것들
아는 것들, 주고받는 것들
그런 것들은 꽃처럼 지지도 않고
나무처럼 떨어져 사라지지도 않아요
돌처럼 비바람에 깎이지도 않죠
우뚝한 산봉우리도 시간이 지나 모래가 되지만
우리였던 건 여전히 우리에요
우리 것이었던 게 지금도 우리 것이지요

함께한 시간은 영원히 존재하니까
함께 거닐던 숲을 혼자 산책할 때
당신 곁의 얼룩진 비탈에서
내 그림자를 찾게 될 거에요
산에서도 늘 쉬어가던 언덕에 멈춰
펼쳐진 땅을 바라보면
뭔가가 보여 습관처럼 손을 뻗을 거에요
그렇게 허공을 더듬다가
슬픔이 덮쳐오기 시작하면
가만히 눈을 감고 숨을 쉬세요
당신 마음속의 내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세요
난 떠난 게 아니에요
당신 안으로 걸어갔을 뿐

_「이블린Evelyn」 후반부에 삽입된 시


「이블린」은 10대 후반부터 뇌신경질환과 싸우다 20대 초반 사망한 이블린의 형과 가족에 관한 기록 영화다. 분쟁 지역에서 10여 년간 사람들의 고통을 담아 왔음에도 정작 동생의 자살 사고를 감당할 수는 없던 한 다큐멘터리 PD의 작품.(올랜도 본아인지델, 2019)


13년이 흘러도 이블린 이야기를 꺼내는 게 두려웠던 가족들이 마침내 서로의 상처를 터놓고자, 이블린과 같이 갔던 산과 호수와 숲을 5주 동안 함께 걸어가는 과정을 담았다. 대문 이미지는 이 다큐 장면이며 위 시는 필자 발번역 버전이다.


성장 서사 드라마를 기대한다면 밋밋할 다큐영화다. '그렇게 아무리 터놓고 이야기를 나눠봐도 고통스런 기억과 트라우마만 생생해지더라'는 이블린의 여동생 말이 기억나고, 그렇더라도 '상처가 줄지는 않지만 이블린과의 시간을 입밖으로 내고 이블린의 (죽음이나 죽음 무렵이 아니라) 삶에 대해 생각하기가 조금은 더 쉬워졌다'는, 그러니까 극복되진 않으나 회복해 갈 순 있으며 집착하지 않으나 애도할 수 있겠다는 형의 말이 계속 남던 작품이다. 바로 그 끝나지 않는 트라우마 덕분에 서로 껴앉을 수 있던 장면도 그렇다.


얼핏 사춘기 징후 같아서 넘어가는 게 청소년 뇌신경질환의 위험성이라고 한다. 도움을 주기 정말 어렵다는 공통점 외에는 완전히 다른 두 가지인 모양이다. 이 구분에 무지했다는 경각심을 『널 보낼 용기』로부터 얻는다.


사춘기가 자연스럽다면 청소년 뇌신경질환은 부자연스럽다. 게다가 사춘기는 일어나는 일들의 원인에 가깝다면 후자는 결과인 측면이 강하다고 할까. 비판적 보건학에 시선을 주려는 분, '우리의 몸과 질병은 구조적 폭력과 불평등이 벌이는 전쟁터'(김승섭)이기에 '의학은 사회과학이고 정치는 대규모의 의학'(Rudolf Virchow)이라는 데 관심 가진 분들께는 청소년 질병 사회역학 임상필독서일 수도 있겠다.


청소년의 편두통, 간질, ADHD, 자폐 스펙트럼 장애, 틱, 뇌수막염, 뇌염, 우울증, 불안장애, 조현병, 양극성 장애 같은 뇌신경질환으로부터, 사회적 약자의 뜻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위험에 자주 노출되며 위기 앞에 취약한 이들'한테 일상 언어 습관과 무심한 통념과 찰나의 눈빛은 가장 광범위한 위험이자 치명적 위기일 수 있다. 표현할 언어와 목소리를 가지지 못한다는 은밀한 위험과 위기. 청소년이자 뇌신경질환 환우는 이중의 사회적 약자일지 모른다. 자살 유족도 다르지 않겠다. 이 책은 그들에게 음성을 찾아주겠다고 직접 나선 유족의 책이다.


뭣보다, 살 권리 선언문 '자살유가족 권리장전'을 떠오르게 한다. 송지영 작가 말처럼 이 책이 “같은 아픔을 겪은 이들과 여전히 버텨내고 있는 아이들을 보듬는 데"에 널리 쓰였으면 진심으로 좋겠다.■

============

안녕하세요 글벗 작가님들. 무당벌레입니다^O^


무심히 클릭하며 보내는 시간을 좀 갖자고 발행을 쉬었는데, 급기야는 브런치북을 어떻게 만들더라? 하질 않나, 엊그제는 팔로워와 팔로잉을 혼동하질 않나, 좀 마이 쉬었나 싶네요ㅠㅠㅠ


책 이야기를 하되 영화나 연극(희곡)과 묶어 하면 어떨까 했던 꼼수 매거진인데 오늘에야 첫 글을 발행하네요ㅠㅠ;; 자기 좌표를 옮기는 일은 늘 쉽지 않더군요. 이 매거진이 같은 책을 살짝 다른 좌표에서 보시는 데 도움되면 좋겠고, 제 힘을 빼는 데도 낫지 않을까 해서 가끔 채워보려 합니다.


실내가 더 쌀쌀한 월요일이었네요. 더 포근해지는 한 주 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