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기

조지아 1

by 이아진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우리 시대 최대의 비극 코비드가 이제는 혹시 끝날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되어질 그 무렵, 나는 내가 무척 지쳐 있음을 불현듯 깨 달았다. 나는 힘이 들고 우울했으며 한없이 가라앉고 있었다. 오랜 세월을 한결같이, 단 한 순간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만큼 나는 참 치열하게 살았다. 물론 고단하긴 했지만 하루 한 끼를 챙겨 먹을 시간이 없던 그런 날 조차도 살아 있다는 묘한 희열이 느껴져 좋았다. 그러다 작은 애가 중학생이었던 무렵부터 그리 치열하게 소중했던 ‘나’를 내려 놓고 엄마로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목표만 있으면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잘도 달리는 나인데도 엄마 노릇이라는 그 목표에는 몰입이 쉽지 않았다. 그 삶이 나의 마음 한 부분을 비게 만드는 아련하고 조금은 허무 같은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었음을 당시에는 잘 알지 못했다.


첫 애와 둘째가 터울이 좀 졌기 때문에 둘째만 다 크고 나면 -실제로는 다 컸다는 체감을 어느 기준에서 찾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로- 막연하게 나는 그 때가 되면 안식년을 가지리라 생각했다. 타인도 나를 모르고 나도 그들을 모르는 유럽의 어느 낯설고 작은 마을을 찾아 혼자 살만한 작은 집을 구하리라. 그 곳이 바닷가라면 더 좋겠지만 상관은 없다. 그리고 작은 테라스에 앉아 지나 다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다가 게으른 걸음으로 해가 넘어갈 무렵의 작은 골목을 산책한다. 내가 잠드는 시간이 밤이고 내가 눈뜨는 시간이 아침인, 시간 맞춰 누군가에 맞춰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나는 꽤 오랫동안 해 왔다. 내가 많이 지쳐 있음을 느낀 그 순간 나는 우연한 기회에 조지아라는 나라를 알게 되었다. 그 곳은 운명처럼 동유럽 어디쯤에 위치해 있었고 내가 대강이라도 알고 있는 세가지의 언어로는 소통하기 어려운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나는 상당 부분 충동적으로 그 나라를 향해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델마와 루이스라는 영화가 있다. 나는 영화를 닥치는 대로 많이 보는 편이라 아주 디테일까지 생각나진 않지만 삶에 지치고 궁지에 몰린 두 여자가 길을 떠나는 로드 무비라고 기억 된다. 영화는 그녀들이 탄 차가 벼랑끝을 향해 날아 오르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나는 돌아와서 또 후반생을 살아야 하는데도 여행을 계획하며 나는 자꾸 그 영화가 생각났다. 현재는 없이 미래만 보고 열심히 달리고 달리다 나는 진짜 심각하게 지쳐 버린 모양이었다. 그래서 낯선 곳으로 떠나는 혼자만의 이 여행이 조금 두렵고 또 많이 기대가 되었다. 사춘기도 아니고 성인식도 아닌데 어처구니없는 과도기를 맞아 버린 50이 넘은 여자, 그 여자가 살게 될 생에 대한 해답이나 지침 같은 것이 그 곳에 있을 것만 같은 막연한 느낌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커다랗고 무거운 여행 가방 세 개를 들고 나온 작은 체구의 동양 여자가 안쓰러웠을까 공항의 직원은 기내용 가방마저 프리로 부쳐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 사소한 친절로 인해 출발부터 기분이 좋아진 탓인지 이륙을 기다리는 그 지루한 시간이 제법 견딜 만했다. 예쁜 빨간색의 헤드폰을 내어 주는 터키쉬 항공을 타고 꽤 오랜 시간을 날아 이스탄불에 내렸다. 노숙자의 삶이 이렇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9시간이나 이리 저리 공항을 떠 돌았다. 게이트 스케줄이 제 시간에 나오지 않아 공항 데스크를 3번이나 방문하고서야 겨우 안내를 받았다. 그렇게 또 한번의 짧은 비행 끝에 다소 초췌한 몰골로 나는 조지아 땅을 밟았다. 집을 떠난 지 정확히 24시간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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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여행 #루스타비 #인생에대한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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