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짜장
먹고 싶은 음식을 못 먹으면 밤새 끙끙 앓고 밀려오는 위산과다로 잠 못 이룬다. 허벅지를 꼬집으며 수도 없이 견딜 수 있다고 다짐하지만 매번 물거품처럼 먹고 만다. 삶에서 회사 일 보다 무엇을 먹을까? 에 본능적인 가치를 둔다. 배가 고프면 야수로 변하고 개도 안 먹는다는 음식에도 환장한다. 남이 음식을 남기면 예의가 아니라고 요리사에 대한 모독이라며 당신은 먹을 자격이 없다고 비수를 꽂는다. 모든 비난과 손가락질에도 결국 남이 남긴 음식을 다 먹는다. 주위는 다 떠나고 홀로 남진 난 고독한 잡식가이다.
점심에 배달 도시락을 먹는 동안 후배가 어제 동기하고 간짜장을 먹었다고 했다. 심지어 일주일에 한 번은 가서 먹는다고 했다. 후배는 한 번도 같이 가서 먹자고 한 적이 없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이다. 고독한 잡식 가는 언제부턴가 누구와 같이 먹는 게 불편해졌다. 그 가게는 내가 사는 집에서 업어져 코에 닿는 거리이다. 간짜장을 먹었는데 진심 맛있었던지 배우자까지 함께 와서 먹고 갔다고 했다. 나보다 후배를 먼저 찾아준 간짜장에
끝 모를 질투심을 느꼈다.
점심을 다 먹고 나서도 허기가 밀려왔다. 간짜장 생각이 들이대기 시작했다. 회사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입에 침이 고여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 겨우 물을 벌컥벌컥 마셔가며 달래 보았다. 게다가 ‘고기 듬뿍 간짜장’이란 명칭과 공깃밥이 공짜요, 막걸리 두 잔이 무료라 한다. 어떻게 하루를 버텼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내일은 꼭 가봐야겠다고 배를 움켜쥐고 겨우 잠이 들었다.
진정한 맛은 공복에서 나온다고 아침도 걸렀다. 출근하여 오후에 볼 일이 있다는 핑계로 반차 휴가를 냈다. 샤워실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목욕재계를 마치고 차를 집에 주차해 놨다. 오로지 간짜장을 생각하며 모진 겨울바람을 이겨 내며 가게 앞까지 걸어갔다. 가게 앞 주자창은 거의 만석이었다. 들뜬 가슴을 숨기며 가게 안을 슬금 들여다보았다. 다행히 홀이 넓어 빈자리가 더러 있었고 또 다른 고독한 미식가가 보여 반가웠다.
가게 문을 여는 내 손은 가벼웠고 몸은 말할 것도 없었다.
종업원이 기대에 찬 목소리로 몇 분이냐고 물었다. "한 명인 데요."내 목소리는 기어들어갔다. "고기 아주 많이 많이 들어간 간짜장 주세요." 하려다 분위기에 눌려 "간짜장 하나 주세요."주문했다. 종업원은 8번 테이블로 안내했다. 4인용 식탁이었다. 고독한 잡식가에겐 과분한 자리였지만 1,2인용 식탁은 없었다. 시간은 12시가 조금 넘은 피크 시간이어서 북쩍거렸고 사방에서 사람 소리, 주방 소리, 음악이 섞여 음식에 집중하는데 방해가 되었다. 오히려 옆에서 혼자 드시는 고독한 미식가가의 메뉴가 궁금했다.
눈길이 갔지만 나만의 간짜장에 집중하기로 했기에 시선을 식탁에 두었다.
식탁엔 세 가지 약속이 있었다.
1. 최상의 식재료만 고집합니다.
2. 사명감을 가지고 항상 위생, 청결에 신경 쓰겠습니다.
3. 고객님이 계심에 저를 비롯해 직원이 존재합니다. -가게 전 직원 일동-
세 가지 약속 감명 깊게 읽고 나도 세 가지 다짐을 했다
1. 최선을 다해 남김없이 춘장까지 핥아먹겠습니다.
2. 고독한 잡식가의 이름을 걸고 죽을 때까지 간짜장의 맛을 기억하겠습니다.
3. 저의 존재를 알아주셔서 감사드리며 일 년에 한 번은 꼭 오겠습니다. -고독한 잡식가-
자리에서 일어나 양은 냄비잔에 막걸리를 한가득 담아 왔다. 셀프코너님께 찾아가 김치도 담아 왔다. 참아왔던 식욕이 마구 솟구쳤다. 코를 벌름거리며 막걸리를 한 모금 들이키자 몸 구석구석 허기에 지쳐있던 감각이 깨어났다. “캬~ 몸이 살짝 경끼를 일으켰다. 간짜장을 먹기 전에 막걸리가 선수 쳤지만 고독한 잡식가의 기분을 업시키에 충분했다. 다시 한잔을 들이켜자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자뻑에 취해 충만함은 극에 달했다.
드디어 간짜장이 도착했다. 동공을 확장시키고 후각을 곤두 세웠다. 밤새 잠 못 들게 했고 질투를 유발했던 간짜장이 나에로 온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렸다. 검은 춘장과 순백의 면이 만나는 순간, 뒤섞이며 재 탄생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이제 그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서로 어울리 것 같지 않은 흑과 백이 하나가 되는 순간 고독한 잡식가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충만한 기분도 계속 바라보고 있으니
울컥할 것 같았다. 무거운 발걸음을 남은 막걸리 한 잔을 채우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무거운 마음으로 간짜장을 먹기 시작했다. 간짜장의 달달하고 부드러운 면발이 위로를 주었다. 순식간에 야수의 본능이 깨어났다. 주체할 수 없는 침샘이 흘렀고 배고픔에 굶주린 배가 허겁지겁 움직이기 시작했다. 질투심, 울컥함, 고독함은 환희로 바뀌었다. 속을 채우면 채울수록 행복감이 풍만해졌다. 막걸리가 물밀 듯이 들어와 썰물처럼 어두운 마음을 끌고 갔다. 면이 사라질수록 슬픔이 몰려왔지만 공짜 공깃밥이 그 자리를 채워 주었다.
먹는 순간만큼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고기 듬뿍은 아니었지만 밥 알갱이와 고기가 씹 힐 때는 보석을 발견한 기쁨이 있었다. 느끼함을 김치, 단무지가 번갈아가며 잊게 해 주었고 남은 막걸리는 마지막까지 ‘뿜뿜’ 존재감을 과시하며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비로소 고개를 들자 주방에서 요리하는 붉은 불이 눈에 들어왔다. 간짜장 한 그릇이 더 먹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