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너 정말 서운해 / B: 어쩌라고;

by 김승규

누군가 서운함을 표할 때마다 저는, 머릿속으로 물음표를 띄웁니다. 서운함의 감정이 왜 저를 향하는지, 저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서운함의 발로를 섣부르게 정의해 보자면, 기대와 현실의 충돌, 그로부터 생기는 간극이 서운함을 말할 것입니다. 쉽게 말해, 타인에게 기대를 했지만, 타인이 그 기대에 응하지 않았을 때 드러나는 감정이 서운함일 것입니다.

정성껏 요리를 해줬을 때, 저는 자연스레 맛있게 먹는 타인을 상정할 것입니다. 그러나 타인이 그 기대에 호응해주지 않는다면, 저는 서운함을 느낄 것입니다. 부드러운 말을 기대했는데 날카로운 문장이 온다면, 그때도 서운함을 느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저는, 서운함이란 기대와 현실의 충돌로 인한 발로라 생각합니다.

사회적 언어로서의 서운함은, 대개 타인을 향합니다. “네가 ~식으로 해서 내가 서운했어”라는 식 따위일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괄호 속의 문장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행동을 할 때마다 나는 서운하니까, 다음부터는 그런 언행을 삼갔으면 좋겠어]가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 멋대로 저에 대해 기대를 하고, 왜 멋대로 실망을 하며, 그 지적을 왜 멋대로 저에게 갖다 대는지, 저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왜 멋대로 저의 행동을 규제하려 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건 저의 병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이러한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들은 기대합니다. 저의 행동에 대해서, 본인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를 고대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맞춰줄 생각이 없습니다. 가식적인 휴머니스트엔 흥미가 생기지 않습니다. 때문에 저는 저의 진실됨이 우선입니다. 때문에 저와의 관계에서 서운함이란, 필연의 감정일 것입니다.

서운함을 표한다는 것은, 일종의 규정일 것입니다. 타인의 행동에 규제를 넣는 행위라 생각합니다. “네가 ~한 행동을 했을 때, 나는 서운해. 그러니 그런 행동은 다음부터 조심해”라는 문장이 숨겨져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문장이 불편합니다. 타인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제가 추구하고 싶은 방향입니다.

저 역시 타인에게 서운한 감정을 품은 적이 있습니다. 꽤나 많을 것입니다. 저 역시 타인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의 서운함은, 되도록이면 저를 향하도록 지시합니다. 타인의 행동을 지적하기보다는, 저의 기대를 문제 삼는 식입니다. 제멋대로 한 기대입니다. 때문에 저의 기대가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당하는 것이 타당하다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저는 서운함의 방향은 스스로를 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이 본인의 기대에 어울려주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사람에게 갖는 기대를 수정해 나가면서 서운함의 농도를 조절하는 것이, 현재 제가 추구하고 싶은 방향입니다. 저의 입맛에만 맞춰 춤추는 누군가가, 과연 무슨 가치를 띄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때문에 누군가 저에게 서운함을 표할 때면, 그 사람에 대한 저의 애정도가 크지 않더라면, 저는 머릿속에 “어쩌라는 거지?”라는 식의 문장이 떠오릅니다. 그들 멋대로 저에게 기대를 걸었습니다. 저는 그 기대를 눈치채지 못했고, 혹여나 눈치를 챘더라도 어울려줄 생각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친구를 잘 못 사귀는 이유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때로는, 누군가 서운함을 표했을 때, 그 서운함에 순응할 때도 분명 있습니다. 그 사람의 서운함을 제가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을 때일 것입니다. 쉽게 말해, 그 사람에 대한 저의 애정도가 크다면, 저는 기꺼이 저의 행동을 규제할 것입니다. 제가 서운함의 원인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에선 서운함의 원인을 기대라고 말했지만, 이때만큼은 저의 잘못으로 돌릴 것입니다. 때문에 때로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오히려 더 자유롭지 못하다 생각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참으로 역설적입니다.

작가의 이전글모순하는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