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즈마고리아-10
며칠 뒤 병원을 방문한 놀이공원의 관계자들은 미하가 돌려보냈다. 오히려 사과해야 할 쪽은 우리라는 게 그녀의 굳은 생각이었다. 나는 애써 미소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들이 내 표정을 이상하게 봤을까 걱정이 든다. 반면에 등산 재킷 차림의 경찰들은 여전히 병실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살아남은 사실보다 자신들의 관할 지역에서 보복성 청부살인 미수 사건이 발생했다는 걸 더욱 믿기 어려운 눈치였다. 이해할 만했다. 내가 애처럼 놀이공원을 가는 건 경솔한 선택이었으니까. 증인 보호를 받는 사람은 그저 집 안에 냉장고나 소파처럼 머물러 있어야만 하니까.
회색 수염이 난 한 형사는 퍼즐 조각 같은 내 진술들을 끼워 맞추느라 애를 먹었다. 혹여나 답이 안 나오는 상황에 그가 울음을 터뜨릴까 걱정이 들어서, 어둠 속에서 나를 가차 없이 끌고 다니던 손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도대체 어디로 길을 샌 거야?" 미하 역시 답답함을 참지 않고 물었다.
나는 처음에 들어갔던 방을 떠올렸다.
"내 바지 어디에 있어?"
형사는 화덕에서 뜨거운 피자를 꺼내듯 옷장에 고이 접혀있던 바지를 들고 아내에게 넘겼다.
"단서를 찾으려고 방에 들어갔어요. 그리고 서랍에서 이걸." 나는 구겨진 카드를 들었다.
형사는 유심히 살피고는 아래턱을 샐쭉거렸다.
"네, 잘 알겠습니다." 그는 조심스레 미하에게 카드를 건네며 예의 있는 미소를 보였다.
"근데 잠깐만요. 혹시 단서라고 말씀하셨나요?"
"네. 그 방의 벽에 있던, 나무로 된 서랍 안에."
형사는 손바닥만 한 수첩을 펼치더니 엄지를 이용해 재빨리 종이를 넘겼다.
"뭔가 잘못 기억하고 계신 것 같은데, 말씀하신 그 방은 플라스틱 재질로 된 구조물이고 다른 모든 공간들도 마찬가지로 나무로 제작되지 않았습니다. 상자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는 나를 쏘아보았다. "바닥의 카펫, 천장의 홀로그램 영사기가 전부입니다. 사람들은 3D 유령들을 보러 판타즈마고리아를 가는 것이지, 그곳은 서울의 여느 방탈출 카페와 다른 곳이에요."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등의 상처엔 검붉은 딱지가 앉아있었다.
"아무튼, 예바훈씨. 용의자가 공격을 가하기 전 상황에 대해 제게 더 해주실 말씀이 있을까요?"
형사가 펜으로 수첩의 빈 페이지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무엇을 더 설명할지 몰라 어둠 속에서 날 놓아주지 않던 그 손의 감촉을 떠올리려 했다. 그 손이 진짜였다고 믿을 힘은 남아있지 않았다.
"예바훈씨?"
그때 창가 앞에 서있던 미하가 작은 목소리로 뭔가를 읽었다.
"그러면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녀는 카드를 손에 쥔 채 긴 한숨을 쉬었다. 생각해 보니, 단서라 굳게 믿었던 카드에 뭐가 적혀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형사는 입술을 깨문 채 날 노려보았고, 나는 손등의 상처만 어루만졌다.
붉은색 아픔은 꿈처럼 황홀하고, 현실보다 선명하게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