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에 대치동에 가보신 적 있나요?
밤 10시가 되면 한티역부터 대치동은 쏟아져 나온 차들로 도로가 꽉꽉 들어찬다. 대로변의 길가는 물론이고 작은 골목까지 승용차들이 줄지어 비상등을 켜고 대기하고 있다.
정말 대치에 사는, 학원 근처가 집인 아이들은 걸어서 집으로 간다. 문제는 피곤한데 걸어가기엔 먼, 집까지의 거리가 대략 버스로 2 정거장 이상인 집부터인 것 같다.
우리 아이는 중학생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를 너무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아서 사실 설렁설렁 학원을 다녔다. 그러다가 6학년 겨울방학부터는 대치동으로 학원을 옮겼다. 대치까지 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초등학생도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거의 모든 중학생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들이 대치동 지역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처음엔 대치동에서 다니다가 현재 다니고 있는 수학학원은 한티역 강남 롯데백화점 근처에 있는 학원인데 버스로 네 정거장 거리이다. 한티역 2번 출구 정류장과 7번 출구 정류장은 사거리의 횡단보도만 건너면 크게 거리 차이가 나지 않으므로 3 정거장 거리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나는 주말에는 운동삼아 우리 집에서 강남롯데 백화점까지 걸어가기도 한다. 느린 내 걸음으로 걸어서 대략 20분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얼마든지 도보로도 이용이 가능한 거리이다.
이제 상상을 해보시길 바란다. 아이는 일주일에 네 번 월요일과 금요일은 수학학원을,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영어학원을 다닌다. 학교는 대략 4시에서 4시 30분쯤 끝나고 학원의 수업 시작시간은 7시 경이다. 나는 라이딩이 너무 귀찮아서 영어학원은 셔틀버스가 있는 학원을 선택했다. 아이는 집에 도착해 이른 저녁밥을 먹고 잠시 쉬거나 -사실 거의 대부분은 하지 못한 학원숙제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6시 30분쯤엔 버스를 타고 학원을 간다. 아이가 학원을 출발할 시간이 직장인 퇴근시간과 겹치기 때문에 대부분의 버스가 만원이고, 도로는 꽉 차서 10분이면 갈 거리가 그 두 배가 되기도 한다. 10시에 학원이 끝나면 이제 집에 돌아와야 하는데, 학원 갈 때처럼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 되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나도 처음에는 했다. 일부러 학원도 버스정류장에서 가기에 너무 까다롭지 않은 곳으로 찾았다고 나 자신을 칭찬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가 않았다. 대치동에서 시작된 학원가는 밤 10시가 되면 모두 동시에 끝난다. 밤 10시 이후 학원수업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전쟁이 시작된다. 대치동에서 강남역 쪽으로 가는 버스는 이미 대치동에서부터 발 디딜 틈 없는 만원 버스가 되어 한티역으로 온다. 아이는 학원이 끝나고 바로 버스정류장으로 향하지만 절대 처음으로 온 버스를 탈 수가 없다. 아이말로는 평균적으로 자신에게 해당하는 노선의 버스 3대는 그냥 보내야 자신이 들어갈 틈이 있는 버스가 온다고 한다. 학원이 10시에 끝나고 정리 좀 하고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버스 3대를 놓치고 나면 10시 30분은 쉽게 넘어가버린다. 월요일의 끝이 쉽사리 나지 않는다.
비나 눈 때문에 날이 궂은날은 교통정체가 더 심하다. 부모가 되고 나니 그냥 가만히 집에 앉아서 아이를 기다릴 수가 없게 되어버리는 순간이다. 비는 오는데 버스도 못 타고 버스정류장에서 그 무거운 가방을 메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가 불쌍해서 그냥 집에 있을 수가 없다. 무엇으로 이동하든지 간에 문제인 것이 막힌다. 차가 너무 많다. 남편이 차를 가지고 나가도 막히는 날은 학원에서 우리 집까지 20분이 걸린다. 대로도 대로지만 학원들이 있는 골목에서 대로로 나가는 데에 시간이 엄청나게 소요된다. 도곡동이 대치와 가깝고 그래서 쉬울 것 같지만 생각보다 신경 쓰이는 부분이 많다. 나는 매일 아이의 귀가를 실생활로 겪으면서 왜 대치동 부근의 아파트가 비싼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수학과 영어에 국어와 과학 학원만 붙여도 7일간 대치동에 가는 스케줄은 쉽게 짜인다. 예전에 김희선이 어느 프로에서 대치동을 하루에 16번을 가봤다고 한 적이 있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대치동을 일주일 동안 매일 가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된다. 그 과정에서 시간 맞춰 매번 라이딩을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학원 간의 시간을 칼같이 맞추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중간에 비는 시간이 생기면 스터디 카페나 음식점에 들어가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집이 가깝다면 잠시 집에 들러 쉬었다가 다음 학원을 갈 수도 있다.
여기서 입지가 빛을 발하게 된다. 걸어서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은 아이의 시간만 여유롭고 편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가족의 시간이 여유로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은마아파트, 래미안 대치 팰리스, 우선미(우성, 선경, 미도)가 있는 지역은 '찐 대치'라고 할 수 있다. 주차가 쉽지 않은 은마상가부터 대치동의 학원을 도보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편리한 일이다. 남들이 다 나가고 싶어 하는 시간에 차를 끌고 나가면 제시간에 도착하기 어렵다. 주차도 쉽지 않다.
날씨가 선선한 가을은 혼자 다녀보라고 끝나면 다시 버스를 타고 오라고 하기는 했다. 그러나 일주일에 네 번이나 밤 10시나 되어야 하루의 일과가 끝나는 아이는 얼마나 고단할지, 불쌍하다는 생각부터 든다. 매주 월요일은 한주의 시작이 너무 피곤하면 안 되니 데리러 가야 할지 고민 중이다.
밤 10시의 대치동에 한 번은 가보시길 바란다. 나태해지거나 삶이 무기력할 때 가보는 것도 추천한다.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될 정도로 아이들이 정말 열심히 살고 있다. 성실하게 공부하는 아이들이 정말 많다. 굳이 대치동 아이들처럼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건지라고 생각하기 전에 공부를 하겠다는 아이들에게는 그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응원해 주는 것이 먼저 아닐까 싶다. 우리 아이도 자신이 대치동 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해서 다니고 있고 힘들어도 그만두겠다는 말 한마디 없이 지금의 힘듦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다. 이런 아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