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창신동, 도심 속에 자리 잡은 소외된 동네.

by 카리타

여러 이유로 어머니는 성남에서 창신동으로 이사를 결정하셨다.

나는 그 당시 어머니에게 도곡동에 위치한 역삼럭키 아파트 매수를 강력하게 권했었다. 향후 집값의 가격상승을 무난하게 기대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었다. 그러나 나의 바람과는 전혀 반대로 어머니가 매수한 아파트는 창신쌍용아파트 1단지였다. 고려대상이 내가 아니라 내 동생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결정이 내려지게 된 것인데, 이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슬픈 감정부터 밀려오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창신쌍용 1단지 아파트는 성남의 신흥주공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6호선 창신역 2번 출구가 아파트 정문 앞에 바로 위치해 있는 아파트이다. 사실 지도를 잘 찾아보면 아파트 앞에 바로 지하철역이 자리 잡는 것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경우고 그런 경우 정말 좋은 입지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헬리오시티이다.


쌍용아파트는 1단지와 2단지가 있는데 2단지는 1단지보다 더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고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언덕을 깎지 않고 그대로 지은 아파트로 창신역부터 언덕길을 올라야 1단지 내 아파트를 갈 수 있고, 2단지는 더 높아서 계단을 오르거나 마을버스를 타고 빙 돌아 낙산공원에서 내려서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1단지에서 2단지로 가는 길에는 계단과 차가 내려오는 언덕길이 있는데 이 계단의 높이와 개수가 만만치 않았다. 어머니의 임장을 따라갔던 그 시기에 나는 임신 중이었는데 2단지를 같이 가보고는 절대 반대를 했다. 왠지 느낌이 친정에 올 일이 많을것 같은데 산 만큼 불러온 배를 견디며 계단을 오르자니 죽을 맛이었다. 우리부부는 돈을 아낀다고 차도 사지 않은 상태였다. 지하철역과 매우 가깝지만 결코 가깝지 않은 위치에 있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계단 옆에는 엘리베이터가 생기게 되어 주민들의 불편함을 덜 수 있게 되었다.

창신쌍용 아파트와 마주 보고 있는 종로 센트레빌 아파트는 건설당시에 고지대인 점을 감안하여 입주자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창신쌍용과는 달리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매매가격이 쌍용 아파트보다 높게 형성되어 있다.


동묘로 걸어내려가면 황학동 시작에는 사람이 붐볐고, 창신동 문구완구 거리에는 아이들이 부모님 손을 잡고 구경을 오는 지역이었다. 동대문 쪽으로 가면 동대문 종합시장이 있는 도심 중의 도심이었다. 창신쌍용은 이 모든 것들이 도보로 이용가능한 위치에 있었다. 청량리 청과물 시장, 경동 시장과도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에 먹거리 물가도 매우 저렴했다.


어머니가 집을 매수하려고 하실 때 반대를 했던 이유는 주변에 아이를 기르기에는 학원 등의 교육 시설이 너무 적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창신동은 아파트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창신초등학교가 있는데 학교 주변에 학원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창신초와 명신초 둘 다 학년당 학급수가 2~3개 정도이다. 거주하는 아이들의 수가 적기 때문에 학원가가 형성되기 어렵다. 때문에 이 지역 거주자들 중 사립학교를 다니는 아이들도 꽤 있는 것 같았다. 아침이면 사립 초등학교 등교버스가 단지 앞에 정차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동묘에서 창신역으로 가는 길은 치킨집이 제일 많은 거리라고 뉴스에도 보도된 적이 있는데, 동대문 시장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이 창신동에 많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환경이 상권형성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창신역 4번 출구에서 나와 종로 03번 버스를 타면 명신초등학교를 거쳐 낙산 공원까지 올라가는데 짐을 들고 올라가기에는 벅찬 언덕길이라 창신역에서 이 지역에 위치한 아파트를 이용하려면 버스나 차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창신역 주변에는 큰 마트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묘지역의 마트나 시장에서 장을 보고 창신역 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때문에 종로 03번 버스는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재였다.


창신동은 도심에 위치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매매가가 매우 저렴한 편이다.

어머니집도 매수할 당시보다는 매매가가 올랐으나 그 돈으로 역삼 럭키아파트를 샀었다면 20억을 벌 수 있으셨을 것이다. 그 당시 역삼럭키 매매가는 6억 5천만 원에서 7억 사이에 형성되어 있었다.

이 당시의 일을 생각하면 나는 아직도 가슴속에서 눈물이 난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머니가 그곳에 살고 계시기 때문에 아이 양육을 부탁하기 위해 그 단지에 아파트를 매수하려던 계획을 철회하고 방향을 튼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6. 노원구에서 신혼을 시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