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미국 대선 직후, 페이스북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는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가짜뉴스가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하지만 불과 2년 후, 그는 의회에서 사과해야 했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 중 하나가, 자신이 만든 플랫폼의 위험성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그가 '지식의 감옥'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이런 감옥에 살고 있다. 쇠창살도, 높은 담장도 없는 감옥. 오직 우리가 '안다'고 믿는 것들로만 이루어진, 보이지 않는 족쇄에 묶여 있다.
당신은 지금 몇 시인가? 시계를 보지 말고 답해보라. 대부분 사람들은 실제 시간과 10-15분 차이 나는 답을 한다. 우리는 시간을 '안다'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이처럼 일상의 작은 착각부터 거대한 학문적 오만까지, '아는 것'이 '새로 배우는 것'을 차단하는 현상은 도처에서 벌어진다.
1900년, 영국의 물리학자 윌리엄 톰슨(켈빈 경)은 이렇게 선언했다. "물리학에서 새롭게 발견할 것은 더 이상 없다." 그로부터 5년 후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했고, 물리학계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켈빈 경의 실수는 단순한 예측 오류가 아니었다. 그는 기존 지식의 완성도에 도취되어, 미지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가능성 자체를 차단해버렸다.
이런 일이 비단 19세기 이야기일까? 2007년 스티브 발머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아이폰에 대해 "키보드도 없는 폰을 누가 사겠나? 절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기존 스마트폰의 '상식'에 갇혀 터치 혁명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의 뇌는 에너지 효율성을 위해 기존 지식으로 빠르게 판단하도록 진화했다. 하지만 이 효율성이 역설적으로 우리를 지적 감옥에 가두는 첫 번째 족쇄가 된다.
그런데 현대인이 경험하는 지식의 감옥은 이런 개인적 착각을 훨씬 뛰어넘는다. 서울 강남에 사는 30대 직장인 김씨는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뉴스를 확인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가 보는 뉴스와 부산에 사는 50대 자영업자 박씨가 보는 뉴스가 완전히 다르다. 같은 사건을 다루면서도 제목, 관점, 댓글까지 정반대다. 둘 다 "팩트"를 보고 있다고 확신하지만, 실제로는 각자의 확증편향이 만들어낸 평행우주에서 살아가고 있다.
확증편향은 단순한 심리적 경향이 아니다. 21세기 디지털 환경에서 우리를 옥죄는 강력한 족쇄다. 구글은 우리의 검색 기록을 바탕으로 '맞춤형' 검색 결과를 제공한다. 페이스북은 우리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만 골라서 보여준다. 유튜브는 우리의 '취향'에 맞는 영상을 끊임없이 추천한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대한 메아리 방 안에 갇히게 된다. 내가 믿는 것만 계속 들려오고, 내 생각만 계속 반복되는 공간에서. 이 방은 너무 편안해서 나오고 싶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바로 그 편안함이 지적 성장을 멈추게 하는 마약과 같다.
2016년 브렉시트 투표와 트럼프 당선, 2020년 코로나19 정보 혼란까지, 현대 사회의 주요 분열과 갈등 뒤에는 모두 이런 '정보 격리' 현상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같은 하늘 아래 살면서도 완전히 다른 현실을 경험하고 있다.
한편, 전문가들도 자신만의 특별한 감옥에 갇혀 있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20년간 근무한 김 의사는 환자를 보는 순간 진단명부터 떠올린다. 증상을 듣자마자 필요한 검사와 치료법이 머릿속에 정리된다. 그의 전문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바로 그 전문성이 때로는 족쇄가 된다.
어느 날 70대 할머니가 "숨이 차다"며 응급실을 찾았다. 김 의사는 즉시 심장과 폐 검사를 지시했다. 하지만 모든 검사 결과는 정상이었다. 의학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며칠 후 할머니는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외로움과 불안감이 호흡곤란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김 의사의 실수는 의학 지식 부족이 아니었다. 오히려 의학적 지식이 너무 정교해서 환자를 '질병의 집합체'로만 바라보게 된 것이 문제였다. 전인적 관점에서 환자를 이해하는 능력은 점점 퇴화되어 갔다.
이런 '전문가의 함정'은 모든 분야에서 벌어진다. 변호사는 모든 문제를 법적 관점에서만 접근한다. 경제학자는 인간을 합리적 경제주체로만 본다. 엔지니어는 기술적 완벽함에만 집중한다. 각자의 전문 지식이 만든 렌즈는 선명하지만, 동시에 시야를 극도로 제한한다. 혁신은 경계에서 일어난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컴퓨터 전문가가 아니라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자신만의 지식 영토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지식의 감옥이 어디서 시작되는 걸까? 바로 교육 시스템에서다. "1+1은 몇이야?" "2요!" "맞아, 착하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정답'을 찾는 훈련을 받는다. 문제에는 반드시 하나의 정답이 있고, 그것을 빠르게 찾아내는 것이 똑똑함의 증거라고 배운다. 20년 가까이 이런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사회에 나와서 갑자기 창의적이고 비판적으로 사고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한국 교육의 대표적 산물인 수능시험을 보자. 하나의 정답을 찾기 위해 수십만 명의 학생들이 12년간 같은 방식으로 사고하도록 훈련받는다. 이 과정에서 '왜?'라는 질문은 사라지고, '어떻게?'라는 기법만 남는다. 결국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는 기계는 만들어냈지만, 문제를 발견하는 인간은 잃어버렸다. 더 심각한 것은 성인이 되어서도 이 '정답 찾기' 사고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복잡한 사회 문제를 단순한 공식으로 해결하려 하고,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한다. "정답이 뭐야?"라고 묻는 사람은 많지만, "정말 정답이 존재할까?"라고 묻는 사람은 드물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정교한 형태의 지식의 감옥을 마주하고 있다. 2018년, 구글에서 10년간 일한 엔지니어가 충격적인 실험을 공개했다. 같은 키워드를 검색해도 사용자마다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구글의 '개인화 알고리즘'이 각자의 검색 기록, 위치, 관심사를 바탕으로 정보를 필터링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구글 검색 결과가 '객관적 진실'이라고 믿으며, 첫 번째 페이지에 나오지 않는 정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하지만 실제로는 알고리즘이 미리 선별해서 보여주는 정보만 보고 있을 뿐이다. 넷플릭스는 내가 '좋아할 만한' 영화만 추천한다. 스포티파이는 내 '취향'에 맞는 음악만 틀어준다. 인스타그램은 나와 '비슷한 관심사'의 사람들만 보여준다. 우리는 선택의 자유가 늘어났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알고리즘이 미리 정해놓은 선택지 안에서만 움직이고 있다.
이 감옥은 물리적 구속도, 강제도 없다. 오히려 편의와 효율성을 제공한다. 하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우연한 발견, 예상치 못한 만남, 생각지도 못한 관점을 경험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지식의 감옥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피해는 상상 이상이다. 개인 차원에서는 창의성과 상상력이 점진적으로 소멸되고, 불확실성을 견디는 능력을 상실하며,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는 포용력이 감소하고, 진짜 문제를 발견하는 직관력이 퇴화된다. 사회 차원에서는 집단 극화와 사회 분열이 가속화되고, 혁신 능력 저하로 인한 경쟁력을 상실하며, 복잡한 문제에 대해 단순한 해법만을 추구하고, 민주주의의 기반인 합리적 토론 문화가 붕괴된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보자. 과학자들은 바이러스의 특성을, 경제학자들은 경제적 영향을, 정치인들은 정치적 계산을 각각 따로 분석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바라보며 창의적 해법을 제시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각자의 전문성이 만든 벽이 협력과 통합을 막았다.
다행히 지식의 감옥에서 탈출할 방법은 있다. 하지만 추상적인 조언이 아닌,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첫째, 매일 하나씩 자신의 신념과 반대되는 글을 읽어보자. 정치적 성향이 다른 신문, 자신의 전공과 정반대 관점의 책, 평소 싫어하던 장르의 콘텐츠까지. 목표는 마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체감하는 것이다.
둘째, 일주일에 세 번은 "모르겠다", "확실하지 않다", "다른 관점도 있을 것 같다"라고 말해보자. 처음엔 어색하고 권위가 떨어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더 신뢰받고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셋째, 매일 15분씩 완전히 무작위의 주제를 탐험해보자. 위키피디아의 '임의 문서' 기능을 활용하거나, 서점에서 눈감고 펼친 책을 읽거나, 전혀 모르는 분야의 유튜브를 보자. 목적 없는 탐험이 때로는 가장 큰 발견을 가져다준다.
넷째, 어떤 주장이나 정보를 접했을 때 최소 5번은 '왜'를 물어보자. "왜 그럴까? 왜 그렇게 생각할까? 왜 다른 가능성은 없을까? 왜 나는 이것을 당연하게 여겼을까? 왜 이 질문을 하지 않았을까?" 질문의 연쇄는 사고의 틀을 깨뜨리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다.
마지막으로, 일주일간 모든 개인화 기능을 꺼보자. 구글 검색 기록 삭제, 유튜브 추천 기능 끄기, 뉴스 앱 대신 다양한 매체 직접 방문하기. 불편하겠지만, 알고리즘이 얼마나 우리의 시야를 제한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내가 아는 것은 내가 모른다는 것뿐이다"라고 말한 것은 2400년 전이다. 하지만 이 고전적 지혜가 오늘날 더욱 절실한 이유는, 우리가 역사상 가장 정교한 지식의 감옥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은 분명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하지만 그 지식이 독단과 편견으로 굳어질 때, 그것은 해방이 아니라 새로운 구속이 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그 정보를 의심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지적 용기다.
진정한 지혜는 확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질문과 열린 마음에서 나온다. 우리가 '안다'고 믿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다른 가능성에 마음을 열고, 불확실성을 견딜 용기를 가질 때, 비로소 지식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마크 저커버그가 자신의 착각을 인정하고 사과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지식의 감옥은 우리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들어가고, 스스로 문을 잠그는 감옥이다. 그렇기에 탈출의 열쇠 역시 우리 손에 있다.
문제는 그 열쇠를 사용할 용기를 갖는 것이다. 편안한 확신을 버리고 불편한 의문을 품을 용기,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험할 용기,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용기 말이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어떤 지식의 감옥에 갇혀 있는가? 그리고 그 문을 열 준비가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