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연재 중 노답론 15화

죄수의 딜레마

by 레옹
300px-딜레마.jpg

2008년 9월 15일, 뉴욕 맨해튼 레먼 브라더스 본사 13층. 세계 4위 투자은행의 CEO 리처드 풀드는 마지막 전화를 끊으며 창밖을 바라봤다.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월스트리트의 다른 투자은행들과 함께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계속 팔아도 괜찮다"는 암묵적 합의를 유지하고 있었다. 모두가 협력해서 위험을 줄였다면 금융시장은 안정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각자는 더 큰 수익을 위해 더 위험한 금융상품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레먼 브라더스 파산, 전 세계 금융위기, 수백만 명의 실업과 주택 압류. 모든 참가자가 개인적으로는 합리적인 선택을 했지만, 그 결과는 모두에게 재앙이었다.

이것이 바로 현실에서 벌어진 '죄수의 딜레마'다. 1950년 수학자들이 만든 추상적 게임이 아니라, 당신의 월급과 집값, 심지어 오늘 점심 메뉴 선택까지 지배하는 무서운 현실이다.


상상해보자. 당신이 절친과 함께 은행강도를 했다가 붙잡혔다. (물론 상상 속에서다!) 경찰은 확실한 증거가 없어서 당신들을 분리 수용하고 각자에게 똑같은 제안을 한다:

"친구를 밀고하면 너는 무죄. 입 다물면... 글쎄, 네 친구가 어떻게 할지 몰라."

이 순간, 당신의 머릿속에서는 엄청난 계산이 시작된다. 친구가 날 밀고하면? 나도 밀고해야 한다. 안 그러면 나만 바보가 된다. 친구가 입을 다물면? 그럼 나는 밀고해서 무죄로 나가자. 어떤 상황에서든 밀고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친구도 똑같이 생각한다. 결과는? 둘 다 밀고해서 둘 다 감옥에 간다. 만약 둘 다 입을 다물었다면 가벼운 처벌만 받았을 텐데 말이다.

이것이 '합리성의 함정'이다. 개인적으로는 완벽하게 합리적인 선택이, 집단적으로는 모든 사람을 망치는 선택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우리 주변에 너무나 흔하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당신은 어디에 서는가? 모두가 오른쪽으로 서면 왼쪽은 급한 사람들을 위한 통로가 된다. 하지만 나만 왼쪽에 서서 더 빨리 가고 싶은 유혹이 든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면 어떻게 될까? 대혼란이다.

넷플릭스 계정을 가족끼리만 쓰기로 했는데, 친구에게도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싶다. "나 하나쯤이야."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면 넷플릭스는 망하고, 결국 우리가 더 비싼 요금을 내게 된다.

카페에서 가방만 놓고 오래 자리를 비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는 편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면 진짜로 커피를 마시려는 사람은 앉을 곳이 없다.

이 모든 상황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개인의 이익과 집단의 이익이 충돌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 결국 모든 사람이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이런 딜레마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바로 기후변화 문제다. 2021년 COP26 글래스고 기후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은 "탄소중립 2050"을 외쳤다. 하지만 회의가 끝나자마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중국은 석탄 발전소를 더 지었고, 미국은 셰일가스 개발을 확대했으며, 브라질은 아마존 벌목을 계속했다. 왜? 각국 입장에서는 "다른 나라가 환경을 보호하는 동안 우리는 경제성장에 집중해서 더 앞서가자"가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결과는 어떨까? 2023년이 역사상 가장 더운 해가 되었고, 당신이 여름에 에어컨 요금으로 지불한 돈이 작년보다 30% 늘어났다. 모든 국가가 단기적 이익을 추구한 대가를 결국 모든 시민이 치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절망만 할 필요는 없다. 인간은 이런 딜레마를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왔다. 그 비밀은 바로 '반복'과 '관계'에 있다.


1980년 미시간 대학교의 정치학자 로버트 액설로드가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전 세계 게임이론 전문가들에게 죄수의 딜레마에서 이기는 최고의 전략을 프로그래밍해서 보내달라고 했다. 복잡한 수학 공식과 인공지능 알고리즘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런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가장 단순한 전략이 승리했다.

팃포탯(Tit-for-Tat) 전략: 첫 게임에서는 무조건 협력한다. 그 다음부터는 상대방의 직전 행동을 그대로 따라한다. 상대가 배신하면 나도 배신하고, 상대가 협력하면 나도 협력한다.

왜 이렇게 단순한 전략이 최고였을까? 네 가지 특징 때문이다.

첫째, 착함(Nice). 먼저 배신하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협력의 기회를 준다.

둘째, 보복성(Retaliatory). 배신당하면 즉시 보복한다. 호구가 되지 않는다.

셋째, 용서(Forgiving). 상대가 다시 협력하면 과거를 잊고 협력한다. 영원히 원한을 품지 않는다.

넷째, 명확함(Clear). 상대가 내 행동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혼란을 주지 않는다.

이 전략의 핵심은 "나는 협력하고 싶지만, 바보는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하는 것이다.


팃포탯 전략이 현실에서도 작동할까? 놀랍게도 우리는 이미 일상에서 이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를 생각해보자. 새로운 동료가 오면 우선 협력적으로 대한다. 그 사람이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주고, 내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 사람이 도와주면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나만 이용하려 한다면? 더 이상 도와주지 않는다. 그러다가 그 사람이 태도를 바꾸면 다시 기회를 준다.

국제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의 핵 억지력이 바로 팃포탯 전략이었다. "너희가 핵을 쏘지 않으면 우리도 쏘지 않는다. 하지만 너희가 쏘면 우리도 쏜다"는 명확한 메시지. 역설적으로 이런 상호확증파괴 전략이 핵전쟁을 막았다.

하지만 팃포탯이 작동하려면 중요한 조건이 있다. 반복적인 만남이다. 앞으로도 계속 만날 가능성이 높아야 협력할 이유가 생긴다. 단 한 번만 만날 사람에게는 배신이 여전히 유리하다.


그렇다면 처음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협력이 불가능할까? 여기서 신뢰와 평판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국가들의 높은 사회 신뢰도를 보자. 이 나라들에서는 세금 회피율이 낮고, 부패 수준이 낮으며, 공공재에 대한 지지도가 높다. 사람들이 서로를 그리고 정부를 신뢰하기 때문에 협력적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다.

반면 신뢰도가 낮은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제로섬 게임이 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배신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선제적으로 배신한다. 불신이 불신을 낳고, 비협력이 비협력을 강화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새로운 종류의 딜레마들이 등장하고 있다. 바로 디지털 시대의 딜레마들이다.


틱톡을 보면서 "하나만 더"라고 하다가 2시간이 지나 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것도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다.

플랫폼 입장에서는 사용자가 오래 머물수록 광고 수익이 늘어난다. 그래서 점점 더 자극적이고 중독성 강한 콘텐츠를 추천한다. 콘텐츠 제작자들은 더 많은 조회수를 위해 더 자극적인 영상을 만든다. 개별적으로는 모두 합리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결과는? 사용자는 시간을 낭비하고 정신건강이 악화되며, 사회 전체적으로는 가짜뉴스와 극단적 콘텐츠가 넘쳐난다. 모든 참여자가 단기적 이익을 추구한 결과, 모든 사람이 장기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개인의 선의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딜레마의 힘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도적 해결책이 필요하다.

법률과 처벌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배신(범죄)에 대한 처벌이 확실하고 그 비용이 클수록, 개인의 합리적 계산은 협력(준법) 쪽으로 기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게임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개인의 이익과 집단의 이익이 충돌하지 않도록 인센티브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다.

넷플릭스의 계정 공유 대응이 좋은 예다. 2023년부터 계정 공유를 단속하기 시작했는데, 사용자들의 반발을 예상했지만 오히려 신규 가입자가 폭증했다. 그동안 공유 계정을 쓰던 사람들이 "어차피 써야 하는데 내 계정을 만들자"고 생각한 것이다. 넷플릭스는 단속보다는 추가 멤버 옵션이라는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해서 딜레마를 해결했다.


거대한 사회 문제 앞에서 개인은 무력할 수밖에 없을까? 그렇지 않다. 작은 변화가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

2019년 16살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변화에 대해 연설했을 때, 많은 어른들이 "애가 뭘 안다고"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은 전 세계 수백만 청소년들의 기후행동을 이끌어냈다. 그녀가 한 일은 게임의 규칙을 바꾼 것이다. "어른들이 해결해줄 때까지 기다리자"에서 "우리가 직접 나서자"로.

당신도 일상에서 게임의 규칙을 바꿀 수 있다.

1. 장기적으로 생각하기. 투자할 때 "10년 후에도 이 회사가 존재할까?"를 묻고, 관계에서 "이 행동이 장기적으로 우리 관계에 도움이 될까?"를 생각하는 것.

2. 투명하게 소통하기. 온라인에서 실명을 사용하고, 약속과 원칙을 명확히 하며, 실수했을 때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

3. 적절한 보상과 처벌. 협력하는 사람과는 더 긴밀한 관계를 맺고, 배신하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되, 상대가 변화하면 기회를 주는 것.


앞으로 우리는 더 복잡한 딜레마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각국과 기업들이 AI 군비경쟁을 벌이고 있다. 개별적으로는 뒤처지면 안 되니까 투자할 수밖에 없지만, 모든 주체가 그렇게 하면 AI 안전성 연구는 뒷전으로 밀려날 위험이 있다.

메타버스와 가상현실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딜레마도 등장할 것이다. 유전자 편집 기술이 보편화되면 '유전자 계급사회'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희망의 근거는 분명히 있다. 인류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결국 협력 때문이다. 수렵채집 시대에 먹을 것을 나눠 먹고, 농업혁명 때 함께 농사짓고, 산업혁명 때 분업으로 효율성을 높이고, 정보혁명 때 지식을 공유한 것. 모든 발전의 근본에는 "함께 하면 더 좋아진다"는 깨달음이 있었다.


죄수의 딜레마가 우리에게 주는 진짜 교훈은 "배신이 이익"이 아니라 "협력의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어진 게임의 규칙에 따라 플레이할 수도 있고, 규칙 자체를 바꿀 수도 있다. 위키피디아를 만든 지미 웨일스처럼,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시작한 리누스 토발즈처럼, 작은 시작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은 수많은 크고 작은 선택에 직면하고 있다. 오늘 점심을 일회용기에 포장해서 편하게 먹을 것인가, 다회용기를 가져가서 환경을 생각할 것인가? SNS에서 클릭베이트 제목의 글을 공유할 것인가, 검증된 정보만 공유할 것인가? 직장에서 내 성과만 생각할 것인가, 팀 전체의 성공을 생각할 것인가?

이 모든 선택들이 모이면 사회가 된다. 당신의 선택이 다른 사람들의 선택에 영향을 주고, 그것이 모여서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세상을 만든다.

결국 게임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 게임을 하고 싶은가? 당신은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가?

선택은 당신의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의 결과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이미지 출처 https://wiki1.kr/index.php/%EC%A3%84%EC%88%98%EC%9D%98_%EB%94%9C%EB%A0%88%EB%A7%88)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14화정의의 저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