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뒤죽박죽

by 레옹

후... 바르셀로나를 거쳐 마르세유와 니스에서 재밌게 놀고 드디어 이탈리아. 현재 패션의 도시 밀라노, 상업공화정의 도시 제노바, 피사의 사탑으로 유명한 피사를 거쳐서 메디치 가문의 피렌체까지 왔다.

많은 사람들이 이탈리아에 대해 정말 많은 환상을 가지고 있는데 나 또한 그런 부류였다. 이탈리아는 신사의 나라고, 문화 강국이며, 미식의 나라라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밀라노와 제노바에서 겪은 사건에 대해 글을 좀 적어 보겠다.

밀라노 중앙역. 경이로운 사이즈와 고풍스러움을 자랑하는 곳으로 현대적이었던 마리아 잠브라노 역 이후로 제일 놀란 기차역이다.

날씨는 구름이 많고 우중충 했다. 다만 골목의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참 이뻐서 좋았다.



브레라 미술관에서 유명한 아예츠의 키스. 개인적으로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그림이라고 생각하는 작품으로, 이탈리아 독립운동이라는 험난한 길을 나서는 사내와 그를 보내야 하는 여인의 애절함이 담겨있다. 색에 의미를 부여하여 여인은 프랑스, 사내는 이탈리아를 뜻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양국의 긴밀한 동맹관계를 상징한다고)

가만히 보고 있자니 일제강점기 시절이 떠올라 속에서 분기에 피가 끓었다. 우리는 동맹 따위는 없었다. 외면당한 동쪽의 작은 나라는 허공의 아우성처럼 사라졌었지. 생각해 보니 이탈리아, 그때 일본 편이었지? 살짝 씁쓸해지는 순간이었다.



브레라 미술관에서 스포르체스코 성을 가는 길에 생면 파스타 집이 유명해서 갔더니 웬걸. 면이 딱딱하다. 겉만 익히고 속이 너무 안 익어서 떡을 먹는 기분이었다. "후, 그래 유명하다고 맛있지는 않겠지" 하고 떠나려는데 계산서에 6유로가 더 포함되어 있었다. 무슨 일인고 하니, 자릿세 2유로와 탭워터 4유로. 아니 수돗물을 돈 주고 파는 곳이 있었다니 어이가 없어서 이야기를 해보니까 자기들은 물은 무조건 돈을 내야 한다고 한다. 그럼 내가 뭘 마신 거냐고 물으니 정숫물. 탭워터(수돗물, 무료) 달라니까 오케이라고 해놓고 이제 와서 이런다고? 설명이라도 처음부터 하던지, 너무 열받아서 평점 1점 박고 나와버렸다.

앞선 사건과 꾸리꾸리한 날씨에 스포르체스코 성을 봐도 별 감흥이 없었다. 내부 박물관을 돌아도 딱히...라는 생각뿐.




@@@피가 나오니 주의@@@




그 후에도 며칠간 밀라노를 즐기고 제노바로 향했다. 그런데 도착 당일 사건이 터진다.

숙소에서 세수하다가 재채기를 했는데 수도꼭지에 머리를 박고 두피에서 피를 뿜어버렸다. 피칠갑을 한 체 리셉션 내려가니까 직원이 없어서 1차 당황. 리셉션 바로 옆에 술집이 벽 없이 붙어 있는데 그곳에서 밴드가 와서 공연 중이라 모두 광란의 밤을 보내고 있어서 2차 당황. 하도 열정적이게 노느냐고 내 상태를 눈치채는 사람이 없기에 숙소로 올라가서 3분 뒤에 내려가니 직원이 있었다. 이번에는 피칠갑을 한 나를 보고 직원이 당황. 직원이 갑자기 밴드 쪽에 뭐라고 이야기하니 갑자기 사장이 사색을 하고 뛰어와서 얼음찜질을 해주고 피를 지혈해 줬다. 다들 이런 상황이 처음인지 직원(손님 같기도 하다) 다섯 명이 나를 둘러싸고 담요도 가져다주고, 물도 가져다주고 극진히 보살펴 주었다.

그렇게 사건을 만들고 밤을 간신히 넘어가나 싶었다.


후, 위기는 연달아 온다고 하던가. 자는 도중에 마약쟁이가 문을 따고 들어와 내 팔목과 멱살을 잡고 깨웠다. 정신이 없어서 벙쪄 있는 와중에 이 놈이 뭐라고 아랍어?로 횡설수설 하더니 밖으로 후다닥 나가버렸다. 따라나가니까 다른 방문을 또 따려고 시도 중이길래 녀석을 붙잡아 얼굴 사진을 찍고 무슨 종이를 가지고 있길래 내가 도와준다고 거짓말로 회유해 서류도 사진을 찍었다. 입가에 하얀 가루부터 해서 눈이 자꾸 돌아가고, 안절부절을 못하는 것,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부터 해서 마약쟁이로 판단하고 리셉션에 넘기려고 하니까 리셉션에 또 직원이 없다. 그리고 이 놈은 그사이 도주.

다음날 리셉션에 가서 사진을 보여주고 cctv를 돌려가며 대조한 결과, 이 사람은 외부에서 침입한 사람이고, 리셉션은 늦은 밤부터 아침까지는 운영을 안 한다고 하더라. 직원이 좀 더 좋은 방으로 내 방을 옮겨주고, 경찰을 불러주어서 경찰에게 최대한 많이 진술을 했다. 시간부터 이 사람이 하던 행동 하나하나 다 이야기해주는 와중에 경찰이 머리에 지혈한 것을 보고 이놈한테 다친 거냐고 묻길래 전날 재채기해서 머리 박았다고 설명을 했다. 그러니까 리셉션 직원들이 당시 상황을 또 설명을 하니 어이가 없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건 덤. 괜히 머쓱해진 나였다.(ㅎㅎ)

소통의 원활함을 위해 경찰이 통역사분과 전화해서 대화를 이어나갔고 진술을 마치니 경찰들이 이후로 진술을 더하고 싶다면 경찰서로 찾아오면 된다고 하고는 재채기 조심하라는 말을 덧붙이며 떠났다. (머쓱)



여행이 길어지니 진짜 별의별 사건이 다 생기는 것 같다. 이외에도 다른 호스텔에서 리셉션 직원이 나에게 갑질을 시전 한 적도 있고, 널어놓은 빨래를 깜빡하고 다른 도시로 이동하여 옷을 의도치 않게 버리게 되거나, 길거리에서 외국 가수의 길거리 공연을 본다거나 하는 일 등, 술자리에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자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밤새도록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여러 경험을 하고 있다. 다만 늘 그렇듯이 너무 기대를 가지면 그렇지 않은 현실에 실망을 하게 되고, 너무 큰 두려움을 가지면 생각보다 별일 없어서 허탈하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제일 재밌게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