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워킹 홀리데이를 가려고 하는가?"
단순하게 답할 수 있다. "'베가본더 vegabonder'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이다.
베가본더라는 것은 '방랑자'이다. 방랑이란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궁금한 점 하나, "왜 굳이 편안한 집을 두고 길바닥에서 고생하려고 하는지?"
성인이 되고 군대를 전역하며 9년 간 얻은 것도 많고, 잃은 것도 많다. 나열해 보자면,
얻은 것: 바리스타로서의 경험과 전문성, 서비스와 세일즈, 공간 디자인 3학년의 학업, 앞으로의 목표
잃은 것: 백수 시절, 정상 체중의 탄력 있는 몸과 신체 능력, 직업 군인의 목표
막상 적어보려니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잘 써지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나를 얼마나 돌아보지 않았는가를 알 수 있는 사실이 아닐까. 그렇게, 돌아보고 있자니 과정이 아직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 무섭게 느껴졌다. 나태하게 사이버 대학 강의를 보며 근면하게 불어버린 살을 보게 되었다. 감정소모에 기계적으로 출퇴근을 반복하는 자신을 보게 되었다. 기계적이라니? 뭔가 잘못된 것만 같았다. 이렇게 지내다가는 전부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얻은 것도 얻은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서늘함. 전기장판에 맞댄 등이 차게 느껴졌다. 검은 두건을 머리에 쓰고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칼날을 생생하게 기다리는 것. 기요틴에 목을 내미는 사람이 이런 기분이 아닐까? 문득, 칭기즈칸의 말이 떠올랐다.
"한 곳에만 머무는 자는 망할 것이고, 떠도는 자들은 살 것이다."
안주하는 것에 대한 경고다. 새로운 것을 반복하면 익숙해진다. 익숙해지면 최적화된다. 최적화되면 그것으로 끝이다. 정답을 찾았으니까, 안주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의 시대는 빠르게 변화한다. 전례 없이, 끝없이. 각 국의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내는 동안 내가 저축한 돈은 가치를 잃어 가고 있었고, 기계적으로 출퇴근을 반복하는 동안 실리콘밸리의 천재들이 나라는 기계를 대체할 혁신을 이루고 있었다. 앞에서 처럼 진짜 잃어버리고 있었고, 진짜 얻은 게 아니었던 것이다.
숨이 막히고, 손이 떨린다. 도살당하기를 기다리는 소와 돼지가 된 기분이었다. 마침 알맞게도 살이 쪄서 배가 나온 내 모습이 소름이 끼쳤다. "당장 바뀌지 않으면, 미래의 소와 돼지는 내가 되겠구나"
바뀌어야 하는 동기는 확실하다. "가축이 되어 도살당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바뀌어지는가. 일단 나를 대하는 나의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라는 정체성을 다시 확립해야겠다"라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안주하지 말고, 항상 움직여라. 이것이 베가본더 vegabonder로서의 정체성이다.
과거 친구와 워킹 홀리데이를 가려고 했던 기억이 있다. 군대를 전역하고 방황할 때, 타지 생활을 하면서 자립심과 생존력을 기르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방황하던 나는 용기가 없었고, 마침 코로나라는 적절한 핑계가 찾아와 안주할 수 있었다.
워킹 홀리데이는 만 30살까지 가능하다.(예외인 나라도 있다.) 그때는 어렸지만, 지금은 곧 서른을 앞두고 있다. 마지막 기회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용기를 내야 하는 때이며,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먼 타지에 말이 안 통하고, 문화도 모르며, 아군도 없다. 절대 안주하면 안 되는 상황을 만들기에 적절한 장소가 아닌가?
보통 워킹홀리데이를 이야기하면 호주가 1번이지만, 나는 호주를 목록에서 지웠다. 호주가 인기 있는 것은 다른 나라에도 동일한 제도가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꽤 많고, 영어권 국가라는 부분에서 어느 정도는 소통이 가능할 거라는 생각에 많이들 시도하는 곳이 호주다. 그렇다면 왜 나는 대부분 시도하고, 정보와 후기를 많이 접할 수 있는 호주를 택하지 않은 것인가.
나는 나를 잘 안다. 나는 주류 문화를 거부하는 소위 '힙스터' 기질을 가지고 있다. 학교에서 외국어를 배울 적에도 남들이 목숨 거는 영어보다는 일본어에 흥미를 느끼고 공부를 하는 등, 어쩌면 반항심일지도 모르는 일이다.(웃음)
마침 나는 사이버대학에서 건축공간디자인을 전공하면서 한 인물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르 꼬르뷔제, 현대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랑스 건축가이다. 그는 그의 건축들로 자신이 가진 수많은 생각들을 보여주며 나에게 또 다른 경지를 보여주었다. 공간은 이렇게 쓰는 거야, 이 재료는 이런 것도 가능해, 앞으로 이런 방향으로 하면 된다, 이미지로만 보는 그의 건물들이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나는 아르누보를 좋아하지만, 그의 건축은 호불호의 문제가 아닌 공간의 철학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나는 직감했다. 공간디자이너로서의 삶에 큰 임팩트를 줄 경험이 프랑스에서 기다리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