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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을 향하여

by 레옹

여행의 시작은 1월 15일, 끝은 4월 28일. 막 떠오르는 태양처럼 찬란했던 여행의 도입부가 무색하게도 이제는 해 질 녘에 잔잔한 노을을 뿌리는 태양을 연상케 하는 시기. 어느새 다가오는 종언에 달력을 흠칫 확인하는 일이 부쩍 늘어났다. 여행에 집중해야지 하면서도 뭉개 뭉개 피어나는 것은 여행이 끝나고 나서의 미래. 나는 어쩔 수 없는 J인가 보다.




퇴사하고 여행을 시작했으니 돌아가면 나는 백수. 서슬 퍼런 취업시장을 걱정하자면 칼바람 몰아치는 밤이 찾아오는 듯하다. 사이버 대학교는 4학년 복학을 앞두고 있고, 자격증 준비, 생계, 뒤늦게 시작하는 디자인학도로서의 툴 숙련 등 해야 할 일이 수두룩하다. 가장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커리어. 바리스타로 수년간 커리어를 이어오다가, 30살이 되어서야 마주하는 공간디자이너로서의 새 시작은 많은 고민을 가져다준다.

내 또래들은 빳빳한 정장을 입고 대리, 팀장 명함을 달고 있을 때, 나는 나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가르침을 청하며 고개를 숙여야 하는 부분이라던가,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내가 원하는 길이 맞을까?" 같은 스스로에 대한 의문들까지. 나는 스스로 정말 주접을 떨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내가 좀 늦게 시작하면 어떤가.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으면 어떤가. 내가 해내지 못하면 또 어떤가.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원하지도 않는데 왜 내가 이러한 걱정들을 하고 있겠는가.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오히려 더 복잡해진다. 쓸데없는 잔머리를 굴리며 편한 길을 추구하고 싶으니까 이런 식으로 생각이 늘어나는 것이겠지. 어쩔 때는 머리를 강하게 후려쳐서 뇌를 정지시키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언제까지 걱정만 하고 살려는지. 언제까지 준비만 하고 살려는지.

깨닫는 부분은 결국 이것은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일이라는 것이다. 지금을 살지 않고 어찌 내일을 보겠는가. 당장 여행은 지속되고 있고, 그간의 여정 속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많은 대미지를 입은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해내야 한다는 것. 내일을 걱정하며 지금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생각이 엉킬수록 정답은 선명해진다. 정답을 알면서도 당당히 마주할 자신이 없으니까 생각 속으로 도피하고, 그것을 엮고 엮어 정답을 가리려는 것이다.

내일의 숨을 지금 마실 수는 없듯이, 나는 지금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일의 내일의 태양이 뜨듯이, 지금은 지금의 내가 있다. 황혼의 저편에서 태양은 스스로 오롯하게 빛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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