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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옴

by 레옹

한국에 왔다. 여행의 마지막 한 달은 정신이 한국에 먼저 와있던 상태여서 오래간만에 밟은 한국 땅의 촉감은 감회가 새롭지 않았다.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질려있던 상태였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생각 저편에 밀어두었던 공부와 취업이 한국 땅바닥을 가시밭길처럼 보이게 했다. 인천에 착륙하기 싫다. 태국이라도 잠깐 다녀올까. 일본은 어떨까. 오만가지 생각으로 도피를 구상했다.

유럽에서는 용기 있는 청년이었지만, 한국에서는 캥거루족 백수일뿐인 사실이 너무 힘들었다. 가진 것은 없지만, 증명할 수도 없지만, 나도 나름 열심히 도전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누가 그러더라, 네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된 것뿐인데 왜 슬프고 왜 힘드냐고.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다. 그래, 당신이 보기에는 가소로워 보이겠지. 내가 겪어온 고통의 경험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고, 그냥 포기해 버린 실패자처럼 보이겠지. 건방진 놈. 이해하는 척하지 마라. 일깨워준답시고 어설픈 말로 내 상처를 진단하지 마라. 도화지에 아무리 강한 색을 덧칠해도 찢어진 것을 감출 수는 없고, 풀칠을 했다 해서 전과 같아지는 것도 아니니까.


이러니 저러니 해도 흔들리는 것은 결국 나다. 법륜 스님 말씀처럼 "지금 내가 흔들리는구나" 하면서 나를 객관화하기에는 내가 수행이 부족할 따름이다.

중요한 것은 결국 나다. 누가 인생 대신 살아 주는 것도 아닌데 나에게 10할 집중을 해도 모자랄 시기에 타인에게 여지를 준단 말인가. 여행은 끝났고, 목표에 도전하던 나로 돌아올 시간이다.


귀국한 지 20일이나 지나서야 글을 적는 것은 이제야 여행자에서 벋어났기 때문이다. 알바라도 하면서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데 현실자각이 늦었다. 물론 그냥 뒹굴거린 것보다는 귀국하고 2주간 몸살에 시달리고, 교정기도 다시 붙이고, 이빨도 빼고, 다래끼도 나고, 근육통에 병원도 가고 그러긴 했다. 재충전이 마무리될 즈음에 혼자 우울해져서 찌질거리기도 했고. 사실 여행 중에도 최소한 5일에 한 번을 글을 써야겠다 싶었는데 한 달 조금 넘어서 노트북도 부서지고, 몸살감기에 시달리고 하다 보니 몇 편 쓰지도 못했다. 보시는 분들께 죄송할 따름이다. (추후에는 여행 중에 있었던 일을 조금 적어보거나 따로 수필을 써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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