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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속의 사람

by 레옹

유럽을 다녀오고 한국에 와서도 변함이 없는 것이 있다면, 나는 여전히 대륙이 바뀌어도 나만의 공간에서 의식주를 해결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미토리를 사용하며 작은 방에서 여러 사람과 침대 맞대고 생활을 하든, 집 안의 내 방에서 혼자 생활을 하든 나는 나의 영역에서 생존하는 형태라는 것이다. 심지어 길에서도.



바르셀로나에서 길거리 보도블록에 앉아 당장 옆의 찻길에서 쓰레기차가 거대한 분리수거 통을 수거해 가는데 그걸 바라보며 안주 삼아 허기를 채운 적이 있다. 비둘기가 날아와 샌드위치를 호시탐탐 노리며 주변을 배회하고, 동네 사람들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하며 수군댄다. 부끄러웠냐 하면 솔직히 부끄럽지는 않았다. 공원 벤치에서 식사를 하려고 하면 엄청난 비둘기 무리가 나를 포위했고, 숙소는 무례한 직원 때문에 한시도 남아있고 싶지 않아서 빠르게 체크아웃을 해버렸다. 아침에 먹으려고 사둔 샌드위치 두 팩이 덩그러니 내 가방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서서히 배가 고파와서 체면을 차리고 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보도블록에 앉으니 근처에 거대한 분리수거통이 건너편 사람들에게서 나를 가려주었고, 강한 바람이 부는 당시의 날씨에 좋은 피풍지가 되는 듯하여 그곳에 자리를 잡고 샌드위치를 먹었다.

문득 드는 생각은 식사를 하던 당시의 내 자리가 나의 영역으로 간주하고 그곳에서 식사를 하였다면, 그곳이 나의 공간이 아닌가 싶었다. 딱히 벽이나 지붕, 바닥이 없어도 내가 나의 영역으로 생각으로 하고 그곳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그곳은 나의 공간이라는 것.

그렇다면 공간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시간과 함께 시공간을 이루며 중력에 의해 휘어질 수 있는 구조"라고 이야기를 한다. 또한 건축과 디자인에서는 "인간의 활동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서 기능적 요소로 구분된다. 그런데 나의 생각에 따르면 사람을 영역 동물이라고 보고, 만일 그 영역이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그곳은 공간으로 정의해야 하지 않을까?



길에서 고양이나 개는 자신의 채취나 분비물로 영역표시를 해서 자기만의 공간으로 지정을 하고 그 테두리 안에서 생활을 하는데, 막상 비슷한 경험을 하니까 그들에게 영감을 얻는 것을 느낀다. 뭔가 그동안의 내가 생각해오던 공간은 건축물이나 공원과 같은 형태로서 존재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영역이라는 개념으로 접근을 하니 형태를 일종의 통과 같은 것으로 치부되게 되고, 우리는 그 속을 살아가는 통 속의 사람이 아닌가 싶었다. 고양이 입장에서 보면 거대한 고양이가 캣하우스에 틀어박혀있다가 직장이라는 분쟁지대(?)에 가서 먹이를 물고 돌아오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기존의 나는 물질적인 부분과 기능적인 요소로만 공간을 바라보았다면 바르셀로나에서의 색다른 경험을 통하여 다른 방향으로 공간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고, 공간디자인이라는 것을 좀 더 철학적으로 접근해서 나만의 정의를 새롭게 확립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경험을 얻기 위해 여행을 자주 다녀야겠다는 생각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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