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관의 죄

by 레옹
5feafe4d9e1e2315030b6cabebd64a29.jpg

1964년 3월 13일 새벽 3시 20분, 뉴욕 퀸즈의 큐 가든스 지역. 바텐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스물여덟 살의 캐서린 "키티" 제노비스는 자신의 아파트 건물 앞 주차장에서 윈스턴 모슬리라는 남자에게 처음 칼을 맞았다. 그녀는 비명을 질렀고, 인근 건물 어딘가에서 창문이 열렸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이봐, 그 여자 내버려 두라고!" 모슬리는 잠시 자리를 피했다. 그러나 10분 후 돌아왔다. 그는 아파트 현관 안쪽 계단통에서 중상을 입고 쓰러져 있던 키티를 다시 찾아 칼로 찌르고 강간했다. 그녀가 숨을 거뒀을 때 시각은 새벽 4시 15분이었다. 약 55분에 걸친 살인이었다.


이 사건을 접한 《뉴욕 타임스》 편집장 에이브 로젠탈은 경찰로부터 충격적인 정보를 입수했다. 사건 목격자가 38명에 달하며, 그중 아무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1964년 3월 27일 1면에 보도된 이 기사는 미국 사회에 거대한 파문을 일으켰다. "38명의 목격자: 퀸즈 주민들이 살인을 지켜보다 신고하지 않았다." 이 제목은 훗날 사회심리학의 역사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문장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 사건은 하나의 불편하고 근본적인 질문을 남겼다. 악을 직접 행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죄가 있는가.


흥미로운 것은 이 사건의 진실이 훗날 부분적으로 수정되었다는 점이다. 2016년 버지니아 대학교의 연구자 레이철 매닝과 마크 레빈은 원래 보도가 과장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실제 목격자 수는 훨씬 적었을 수 있으며, 일부는 실제로 신고를 시도했을 수도 있다. 키티의 친구 소피아 파라르가 그녀 곁에 있었다는 증언도 있었다. 하지만 이 사실 수정이 질문을 사라지게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예리하게 만든다. 누군가는 분명 목격했다. 누군가는 망설였다. 그리고 55분 동안 한 여성이 죽어갔다. 그 망설임과 침묵의 도덕적 무게는 38이라는 숫자와 무관하게 존재한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행위(act)와 부작위(omission)를 구별해왔다. 직접 해를 끼친 사람과, 해를 막지 않은 사람은 다르다는 직관은 일상의 언어 속에 깊이 박혀 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말이 방어 논리로 작동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손에 피를 묻힌 자와 곁에 서 있던 자를 자연스럽게 다른 범주로 분류한다. 그런데 이 구별은 과연 도덕적으로 정당한가, 아니면 우리가 스스로의 불편함을 회피하기 위해 만들어낸 심리적 방어벽인가.


철학자 제임스 레이철스는 1975년 《뉴 잉글랜드 의학 저널》에 게재한 논문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에서 이 구별의 허약함을 정면으로 공격했다. 그는 두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 스미스는 유산을 노리고 욕조에서 사촌을 익사시킨다. 두 번째 시나리오에서 존스는 같은 의도를 품고 욕조에 들어가지만, 사촌이 스스로 미끄러져 물에 빠지자 그대로 지켜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결과는 동일하다. 죽음. 행위의 형식이 달랐을 뿐이다. 레이철스는 묻는다. 존스의 행위가 스미스의 그것보다 덜 나쁜가? 의도가 같고 결과가 같다면,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도덕적 평가를 바꾸는가.


피터 싱어는 이 논쟁을 더 광범위한 층위로 확장했다. 그의 1972년 논문 「기근, 풍요, 그리고 도덕성(Famine, Affluence, and Morality)」은 오늘날까지 윤리학 강의에서 핵심 텍스트로 읽힌다. 그는 사고 실험을 제안했다. 얕은 연못 옆을 걷다가 어린아이가 빠져 익사 직전인 것을 발견했다. 당신이 뛰어들면 아이를 구할 수 있고, 당신이 치르는 대가는 비싼 신발 한 켤레다. 이 상황에서 신발을 아끼겠다며 아이를 그냥 두는 것이 도덕적으로 허용 가능한가. 답은 거의 만장일치로 "아니오"다.


그렇다면 싱어의 진짜 논점은 여기서 시작된다. 지금 이 순간 지구 어딘가에서 예방 가능한 이유로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당신은 그것을 안다. 당신에게는 그 죽음을 막는 데 기여할 수단이 있다. 돈, 목소리, 시간, 선택. 그런데 당신은 그것을 쓰지 않는다. 연못 속 아이와 지구 반대편의 아이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거리뿐이다. 그런데 왜 거리가 도덕적 의무를 희석시켜야 하는가. 싱어의 결론은 불편하지만 논리적으로는 탄탄하다. 막을 수 있는데 막지 않는 것, 그것도 하나의 선택이며, 그 선택은 도덕적 평가의 대상이 된다.


물론 이 논리를 극단까지 밀어붙이면 우리는 끝없는 의무의 수렁에 빠진다. 세상 모든 고통을 막지 못하면 모두가 죄인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 있고, 이는 지속 불가능한 도덕적 소진을 낳는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극단이 아니다. "합리적으로 요구 가능한 수준의 행동"이라는 기준이다. 목숨을 걸어야 할 필요가 없고, 전 재산을 바쳐야 할 필요도 없다. 단지 전화기를 들거나, 목소리를 내거나, 증언을 하거나, 고개를 돌리지 않는 것. 그 최소한의 행동조차 하지 않을 때, 방관의 죄는 성립한다.


역사는 방관이 얼마나 거대한 파국을 완성시키는지에 관한 가장 냉혹한 교과서다.

1933년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직후부터 유대인 박해는 공개적으로 진행되었다. 불매운동, 직업 박탈, 수정의 밤(Kristallnacht)의 포그롬. 이 모든 일은 대낮에, 거리에서, 이웃이 보는 앞에서 벌어졌다. 홀로코스트가 조직적 대학살로 확대되기 전, 그것이 멈출 수 있었던 기회는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독일과 유럽 전역의 수백만 명은 알면서도 침묵했다. 일부는 공포 때문이었다. 일부는 무관심 때문이었다. 일부는 "나는 유대인이 아니니까"라는 분리의식 때문이었다. 프로테스탄트 목사 마르틴 니묄러는 전쟁 후에 이 침묵의 연쇄를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그들이 공산주의자들을 잡으러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사회민주주의자들을 잡으러 왔을 때도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대인들을 잡으러 왔을 때도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 고백에는 방관의 구조적 본질이 담겨 있다. 방관은 중립이 아니다. 방관은 악이 작동하는 시스템을 유지하는 하나의 연료다. 악인은 소수다. 그러나 그 소수의 악이 다수의 침묵 위에서 성장한다. 침묵은 동의의 신호로 읽히고, 저항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폭력을 정당화하는 논리의 일부가 된다.


한나 아렌트는 1961년 예루살렘에서 열린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직접 참관하고, 그 기록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이라는 책으로 남겼다. 수십만 명의 유대인을 아우슈비츠로 보낸 수송 작전을 지휘한 이 인물을 직접 만난 아렌트가 받은 충격은 그가 괴물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아이히만은 지극히 평범한 중간 관료였다. 그는 명령에 복종했고, 서류를 처리했으며, 승진을 원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하기를 거부했다. 아렌트는 이것을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 불렀다. 악은 이데올로기적 확신을 가진 악인에게서만 탄생하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기로 선택한, 보지 않기로 선택한,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선택한 평범한 사람들의 집합이 역사상 가장 끔찍한 악을 완성했다.


아렌트의 통찰이 특히 날카로운 것은, 그녀가 침묵과 복종 자체를 하나의 선택으로 간주했다는 점이다.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은 완전한 거짓이다. 그것은 선택을 선택으로 인식하지 않으려는 심리적 방어다. 나치 독일 내에서도 히틀러의 명령을 거부하고 전출을 신청한 군인들이 있었고, 유대인을 숨겨준 일반 시민들이 있었다. 그들이 치른 대가는 때로 컸지만, 모든 사람이 죽임을 당한 것은 아니었다. 저항의 선택지는 존재했다. 그것을 택하지 않은 것 역시 선택이었다.


1994년 르완다에서는 100일 동안 약 80만 명의 투치족과 온건파 후투족이 학살되었다. 이것은 갑작스러운 폭발이 아니었다. 국제사회는 이미 수년간의 민족 갈등 심화를 알고 있었고, 학살이 시작되기 전 유엔 르완다 지원단(UNAMIR)의 사령관 로메오 달라이어 장군은 뉴욕 본부에 학살 계획의 구체적 정보가 담긴 팩스를 보냈다. "제노사이드 팩스"로 불리는 이 전보는 묵살되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제노사이드"라는 단어를 공식 발표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국무부 대변인 크리스틴 셸리는 기자들에게 "제노사이드라는 말 대신 제노사이드 행위라고 부를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공식적으로 그 단어의 사용을 회피했다. "제노사이드"를 인정하면 1948년 유엔 집단학살 협약에 따라 개입 의무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즉, 행동하지 않기 위해 언어를 조작한 것이다. 그 침묵의 비용은 80만 명의 목숨이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1963년 앨라배마 버밍엄 감옥에서 쓴 편지에서 백인 온건파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백인 인종주의자가 아니라 온건한 백인이 자유를 향한 길에서 더 큰 걸림돌이 되어왔다고 점점 더 확신하게 된다. 온건파는 나쁜 사람들이 아니었다. 다만 불안보다 질서를 선호했고, 긴급한 변화보다 점진적 진전을 원했으며,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보다 '적절한 때'를 기다리는 침묵을 택했다. 킹은 이것이 폭력적 억압과 다른 이름의 공모라고 보았다. 악에 반대한다고 말하면서 악이 유지되는 구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것, 그것이 방관의 정치적 형태다.


심리학은 방관자들에게 어느 정도 이해 가능한 설명을 제공한다. 존 달리와 비브 라타네는 1968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일련의 실험을 통해 방관자 효과를 체계적으로 실증했다. 실험 참가자들은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보다 혼자 있을 때 훨씬 더 빠르게, 그리고 더 높은 비율로 긴급 상황에 개입했다. 사람의 수가 늘어날수록 개인이 느끼는 개입의 압력은 줄어들었다. 이것이 "책임의 분산"이다. 나 말고도 다른 사람이 있으니, 누군가 하겠지. 그 "누군가"는 다른 사람도 기대하고 있는 누군가였기 때문에, 결국 아무도 하지 않았다.


두 번째 심리 기제는 "다원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를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참고한다. 주변이 침착하다면, 이건 긴급 상황이 아닐 것이라고 판단한다. 문제는 모두가 서로의 침착함을 참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모두가 불안하고 의심하고 있으면서도, 서로가 서로의 침착함을 평온의 신호로 읽으면서, 집단 전체가 집단적 무행동의 덫에 빠진다. 연기가 피어오르는데 다른 사람들이 계속 문제 풀고 앉아 있으니 그냥 앉아 있었다고 실험 후 참가자들이 실제로 진술한 것처럼.


이 심리적 메커니즘은 방관자들을 완전한 괴물에서 이해 가능한 인간으로 되돌려 놓는다. 그러나 이해 가능하다는 것이 도덕적 면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 핵심이다. 우리는 분노가 폭력을 유발하는 메커니즘을 이해하지만, 그 이해가 폭력을 용납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책임의 분산이 방관을 유발하는 메커니즘을 안다고 해서, 그 방관에 대한 도덕적 평가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메커니즘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더욱 의식적으로 그것을 거부할 의무가 있다. 지식은 면제의 근거가 아니라 더 높은 책임의 근거다.


달리와 라타네의 연구가 발표된 이후 수십 년간 이루어진 후속 연구들은 방관자 효과를 완화시킬 수 있는 조건들도 밝혀냈다. 피해자와 개인적 연결이 있을 때, 자신이 그 상황에서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을 때, 집단의 규범이 도움을 장려하는 방향일 때. 이 조건들은 모두 "나"를 개인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군중 속에 사라진 개인이 아니라, 책임질 수 있는 독립적 행위자로서의 나. 방관을 깨는 것은 그 인식의 회복이다.


방관의 죄는 개인의 층위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제도와 국가, 그리고 집단적 체계 역시 방관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어쩌면 가장 파괴적인 방관은 개인이 아니라 제도가 저지른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는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했다. 304명이 숨지거나 실종되었고, 그중 250명은 수학여행을 떠났던 고등학생들이었다. 배가 기울기 시작한 후 첫 한 시간, 학생들은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는 선내 방송을 들었다. 그 시간 동안 탈출이 가능했다. 해경 경비정은 현장에 도착했지만 구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진도 관제센터는 초동 대응에 실패했고, 해수부와 청와대에는 왜곡된 정보가 보고되었다. 직접 배를 침몰시킨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막을 수 있었던 사람들, 막아야 했던 책임을 가진 사람들은 도처에 있었다.


법원은 이후 일부 선원들에게 유기치사죄를 적용했다. 이준석 선장은 살인죄 적용 여부를 두고 하급심과 상급심 사이에서 긴 법적 공방 끝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더 넓은 차원의 제도적 방관에 대한 법적 책임은 불완전하게만 다루어졌다. 법이 끝나는 지점에서 도덕적 심판은 멈추지 않는다. 책임이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 그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 능력이 있으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것은 단지 절차 위반이 아니다. 그것은 방관이다. 그리고 방관은 그것이 국가의 이름을 달고 있어도 죄다.


독일과 프랑스를 포함한 다수의 유럽 국가들이 착한 사마리아인 법(Good Samaritan Law)을 형법에 포함시킨 것은 이 문제에 대한 사회의 도덕적 판단이 법에 반영된 결과다. 프랑스 형법 제223-6조는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지 않는 행위를 최대 5년의 징역과 75,000유로의 벌금으로 처벌한다. 독일 형법 제323조c항도 유사한 구조다. 이 법들이 말하는 것은 단순하다. 막을 수 있었는데 막지 않은 것은 무죄가 아니다. 법이 도덕을 완벽하게 반영하지는 못하지만, 이 입법들은 적어도 방관이 법적으로도 중립이 아닐 수 있다는 사회적 합의의 표현이다.


이 논의의 긴장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역사 속에 존재했던 방관 거부자들을 돌아볼 때다.

르완다 학살이 진행되는 동안 수도 키갈리의 밀 콜린 호텔 지배인 폴 루세사바기나는 후투족 극단주의자들을 속이고 돈을 쓰고 협상하면서 1,268명의 목숨을 지켰다. 그는 호텔 경영자였다. 군인도, 외교관도, 국제기구의 직원도 아니었다. 그에게는 그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정당한 이유"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하기로 선택했다. 그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 「호텔 르완다」(2004)는 한 사람의 선택이 얼마나 많은 생명과 직결되는지를 보여준다.


2차 세계대전 중 덴마크에서는 나치 독일이 유대인 추방 명령을 내리자 덴마크 시민들이 집단적으로 움직였다. 어부, 상인, 교사, 의사들이 약 7,000명의 덴마크 유대인을 보트에 태워 중립국 스웨덴으로 탈출시켰다. 이 구출 작전은 일부 영웅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수천 명의 평범한 시민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덴마크는 홀로코스트 시기 유럽에서 가장 많은 비율의 유대인을 보호한 국가가 되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덴마크 사람들이 특별히 용감했기 때문이 아니다. 덴마크의 사회 규범이 유대인을 이웃으로 포함시키고 있었고, 그 이웃을 지키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집단적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방관을 거부하게 만드는 것은 개인의 영웅심이 아니라, 타인을 자신의 공동체 안에 포함시키는 도덕적 상상력이다.


개인적 규모에서는 1930년대에서 1940년대까지 볼리비아,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등 남미 각국에서 유대인 이민자를 받아들인 영사들의 이야기도 있다. 당시 비자 발급 권한이 없거나 본국 정부의 명령을 위반하면서도, 수천 장의 비자를 발급한 일본 외교관 스기하라 치우네는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리투아니아 카우나스 주재 일본 영사관에서 명령을 거슬러 가며 약 2,000장의 통과 비자를 발급했고, 그 비자들은 6,000명 이상의 생명을 구했다고 추산된다. 그는 훗날 이 결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은 하나뿐이었다. 비자를 주는 것. 그것이 옳은 일이었으니까.


이 사람들은 영웅으로 불린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존재는 역설적으로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그들이 한 일은 왜 그토록 많은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았는가. 능력의 차이였는가, 정보의 차이였는가, 아니면 선택의 차이였는가. 영웅을 찬양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 찬양이 나머지 침묵자들의 선택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기능을 한다면, 그 찬양은 또 하나의 방관이 된다.


오늘날 방관의 죄는 더욱 복잡하고 광범위한 형태로 우리 앞에 놓인다.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은 전례 없는 규모의 정보 접근을 가능하게 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분쟁, 기아, 인권 침해, 환경 파괴에 대한 실시간 정보를 손 안에 쥐고 있다. 알지 못한다는 변명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렇다면 알면서도 스크롤을 내리는 행위는 무엇인가.


기후 위기를 예로 들어보자. 과학적 합의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이루어졌다. 그 위기가 가장 먼저, 가장 심각하게 타격하는 것은 책임이 가장 적은 사람들, 즉 적도 인근의 저개발국 주민들, 빈곤층, 미래 세대다.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안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 정도의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 소비 방식, 투표 선택, 압력 행사, 목소리.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문제에서 방관자가 아닌가.


직장 내 괴롭힘, 학교 폭력, 가정폭력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피해자 곁에 있었던 동료, 학교 친구, 이웃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그 침묵은 가해자에게 암묵적 동의의 신호를 보낸다. 폭력이 일어나는 공간에서의 침묵은 폭력을 지속시키는 힘이다. 한국에서 매년 발생하는 학교 폭력 피해 사례 중 다수는 주변 학생들이 알고도 신고하지 않았거나, 오히려 구경하는 방식으로 그 폭력에 가담했다. 직접 때리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이 그 폭력과 무관한 것인가.


이 모든 상황에서 공통적인 합리화 언어가 있다. "나 혼자 해봤자 뭐가 달라지겠어." 이 문장은 표면적으로 현실적으로 들리지만, 그 안에는 심각한 논리적 오류가 있다. 만약 모든 사람이 이 논리를 따른다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결론이 자기 충족적으로 완성된다. 반대로, 한 사람이 행동할 때 그것이 다른 사람의 행동을 촉발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은 사회심리학적으로도 증명되어 있다. 달리와 라타네의 실험에서 한 명의 협력자가 긴급 상황에 먼저 반응하자, 다른 참가자들이 훨씬 높은 비율로 뒤따랐다. 첫 번째 목소리는 언제나 가장 힘들다. 그러나 그 첫 목소리가 없으면 두 번째도 없다.


방관의 죄를 논할 때, 마지막으로 반드시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이 죄의 무게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지 않다. 책임의 위계가 있다.


자신도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상황에서 타인을 위해 행동하지 않은 사람과, 아무 위험 없이 전화기 한 통으로 개입할 수 있었던 사람은 다르다. 권력과 자원을 가진 자, 정보를 먼저 접한 자, 공적 책임을 진 위치에 있는 자의 방관은 아무 힘도 없는 개인의 방관보다 훨씬 무겁다. 알면서 덮은 언론인, 증거를 가지고도 침묵한 목격자, 보고를 받고도 외면한 공직자. 이들의 침묵이 남긴 공백은 그들의 권한만큼 크다.


동시에, 방관의 죄를 무한히 확장하는 것에도 주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한계가 있는 존재다. 도덕은 불가능을 요구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명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서 침묵은 다른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아우슈비츠 경비원 중 명령을 거부했다가 처형된 이들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역사가들이 대부분의 처형이 규율 위반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거부에 따른 전출이나 징계로 그쳤다고 주장한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는 가능성을 이유로 모든 침묵자들이 면제받는다면, 역사의 가해는 결국 소수의 극악인들만의 것으로 축소된다. 그 축소는 정직하지 않다.


방관의 죄가 요구하는 것은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응답이다. 신고 전화 한 통, 증언 한 마디, 침묵 대신 목소리, 외면 대신 고개를 돌리지 않는 것. 그 최소한의 행동이 합리적인 비용 안에서 가능했음에도 하지 않았을 때, 우리는 그것을 방관이라 부른다. 그리고 방관은 도덕적으로 중립이 아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1964년 3월 13일 새벽, 뉴욕 퀸즈의 한 골목. 키티 제노비스는 55분 동안 죽어갔다. 법은 그 창문들 뒤의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그 사건을 기억하고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법적 의문 때문이 아니다. 도덕적 직관 때문이다.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깊은 감각. 창문을 열어 소리를 지른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는 느낌. 그것이 아무것도 안 한 것과 다를 게 없다는 불편함.


그 불편함은 감정적 반응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공동체로 살아가기 위해 서로에게 맺고 있는 근본적 약속에 대한 감각이다. 우리는 혼자서 살 수 없다. 사회는 협력과 상호 의존의 구조 위에 서 있다. 그 구조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위기 앞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응답한다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방관은 그 신뢰를 깨는 행위다. 칼을 들지 않고도 공동체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악은 언제나 거대하고 극적인 형태로만 오지 않는다. 악은 조용히, 아무도 나서지 않는 순간들이 쌓이면서 자란다. 히틀러 한 사람이 6백만 명을 죽인 것이 아니다. 수백만 명의 방관이 그의 손을 잡았다. 모슬리 혼자 키티 제노비스를 죽인 것이 아닐 수 있다. 38개의 닫힌 창문이 함께 그녀를 죽였을 수 있다.


그래서 방관의 죄는 실재한다. 칼을 들지 않아도,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직접 해를 끼치지 않아도. 막을 수 있었고, 그 비용이 감당 가능했으며, 그럼에도 하지 않았다면. 그 침묵은 단순한 소극성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선택이고, 선택은 책임을 낳는다. 우리가 도덕적 존재라고 자처하는 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말은 무죄의 증거가 될 수 없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강력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https://kr.pinterest.com/pin/15903404930639890/)

일요일 연재
이전 10화선행의 강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