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25~29세 청년층의 57.3%가 여전히 부모님과 동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0년 전보다 15% 이상 증가한 수치다. 28세 이현수 씨도 그 중 하나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IT 대기업에 취업했지만, 월 400만원의 연봉으로는 서울 시내 원룸 전세금조차 마련하기 어렵다는 현실 앞에서 그는 오늘도 부모님의 그늘 아래 머물러야 할지 고민한다.
이현수 씨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서 '캥거루족'이라는 용어가 점점 더 자주 언급되는 현실을 대변한다. 캥거루 새끼가 어미의 주머니에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는 것처럼, 성인이 된 후에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며 독립하지 못하는 현상을 지칭하는 이 용어는 단순한 사회적 현상을 넘어 깊은 구조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법적 성인 연령이라는 잣대만으로 이들에게 무조건적인 독립을 요구하는 것이 정당한가? 이 질문이 바로 우리가 이 글에서 심도 있게 고찰하고자 하는 바이다.
캥거루족 현상은 단순히 개인의 의지나 능력 부족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사회 문제다. 먼저 경제적 요인을 살펴보면, 청년 실업률의 증가, 비정규직의 확산, 부동산 가격 상승 등이 젊은 세대의 경제적 독립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과거에 비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졌고, 설령 취업을 하더라도 월세나 전세 보증금을 마련하기에는 소득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교육 시스템의 변화도 중요한 요인이다.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면서 경제적 독립의 시기가 자연스럽게 늦어졌고, 취업 준비 기간도 길어졌다. 또한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부모 세대의 경제적 여유가 상대적으로 증가한 것도 자녀들의 독립 시기를 늦추는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법적으로 성인이 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완전한 권리와 의무를 갖는 주체가 됨을 의미한다. 선거권, 계약 체결권, 법적 책임 등이 부여되며, 이론적으로는 독립적인 경제 활동과 생활이 가능해야 한다고 가정된다. 하지만 이러한 법적 기준이 현실적인 독립 능력과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18세나 19세라는 성인 연령은 신체적, 정신적 성숙도를 기준으로 설정된 것이지, 경제적 독립 능력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고등교육의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어, 법적 성인이 되는 시점과 실질적으로 독립이 가능한 시점 사이에 상당한 시간적 간격이 존재한다.
성인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적인 독립을 강요하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첫째, 개인의 상황과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접근이다. 경제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독립은 오히려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 불안정한 주거 환경, 영양 부족, 정신적 스트레스 등이 장기적으로 개인의 발전과 사회 참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가족 관계의 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 준비되지 않은 독립에 대한 압박은 부모와 자녀 간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건전한 가족 관계를 해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는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족의 안정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셋째,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의 자녀는 부모의 지원을 받으며 충분한 준비를 한 후 독립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가정의 자녀는 불완전한 상태에서 독립을 강요받게 된다. 이는 출발선에서부터 불평등을 야기하는 것이다.
독립을 강요하기보다는 점진적이고 건설적인 독립 과정을 지원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 분리가 아닌, 정신적, 경제적, 사회적 자립 능력을 키워나가는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부모와 자녀 간의 상호 존중과 소통을 바탕으로 한 점진적 독립은 여러 장점이 있다. 자녀는 안정적인 기반 위에서 자신의 능력을 개발할 수 있고, 부모는 자녀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며 적절한 시기에 지원을 조절할 수 있다. 또한 경제적 효율성 측면에서도 무리한 독립보다는 합리적인 자원 활용이 가능하다.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는 일정 기간 주거비나 생활비를 일부 지원하되, 자녀에게도 단계별 자립 계획을 세우고 공유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취업 후 1년간은 생활비의 70%를 지원하고 점차 50%, 30%로 줄여나가거나, 가사 분담이나 가계 관리 참여 등을 통해 책임감을 단계적으로 부여하는 것이다. 또한 월 1회 가족 회의를 통해 독립 계획의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필요시 계획을 수정해나가는 유연한 접근도 도움이 된다.
캥거루족 현상을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지 않고 사회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청년 일자리 창출, 주거 정책 개선, 교육 시스템 개혁 등 근본적인 사회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 또한 다양한 생활 방식에 대한 사회적 수용도를 높이고, 획일적인 독립 모델에서 벗어나 개인의 상황에 맞는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
법적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독립을 강요하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개인이 진정으로 독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나이가 아닌 실질적인 준비 상태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
캥거루족 현상은 현대 사회의 복잡한 구조적 문제의 반영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과 함께 사회적 지원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 강요와 비난 대신 이해와 지원을 통해, 젊은 세대가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결국 진정한 독립은 외부의 압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충분한 준비와 의지를 갖추었을 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회는 이러한 과정을 인내심을 갖고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캥거루족이라는 용어가 사라지고,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건강한 자립을 이뤄내는 젊은 세대에게 따뜻한 연대와 희망을 전하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우리 사회 전체가 더욱 포용적이고 지속 가능한 공동체로 발전하는 길이기도 하다.
진정한 성숙한 사회란 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모든 구성원이 자신만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회이다. 오늘 부모님 댁에서 미래를 고민하는 청년이 내일은 당당히 자신의 꿈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그들의 든든한 사회적 지지대가 되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