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를 배우면서 하나 느낀 것이 있다. 한국어는 문법이나 어순이 다양해서 어려운 거지, 규칙 자체에 열받지는 않는다는 것. 특히 숫자는 정말 경악을 금치 못한다.
1 = un 옹
2 = deux 두
3 = trois 트화
4 = quatre 꺄뜨흐
5 = cinq 쌍끄
...
그래, 한국도 10까지는 외워 줘야지.
11 = onze 옹즈
12 = douze 두즈
13 = treize 트헤즈
14 = quatorze 꺄또즈
15 = quinze 깽즈
16 = seize 세즈
그래, 영어도 12까지는 따로 이름이 있고, 너네는 다른 나라니까 더 있을 수 있지.
20 = vingt 뱅
30 = trente 트헝뜨
40 = quarante 꺄헝뜨
50 = cinquante 쌍껑뜨
60 = soixante 쓰와썽뜨
...
그래, 십진수별로 이름을 붙이는 건 흔한 일이지.
70 = soixante-dix (60+10) 쓰와썽뜨 디쓰
예?
60진수도 아니고 60 더하기 10이요?
80 = quatre-vingts (4×20) 꺄뜨흐뱅
예?
갑자기 곱하기를 하신다고요?
90 = quatre-vingt-dix (4×20+10) 꺄뜨흐뱅디쓰
예?
이걸 다시 덧셈을 하셔요?
프랑스인들의 산수 능력과 혓바닥 스피드는 상상을 초월하는가 본데? 대체 어느 놈들이 이따구로 숫자를 만들어놨어...?
빡침(호기심)과 함께 인터넷으로 어느 정도 조사를 해보니, 과거 켈트인들이 20진법을 사용하던 것의 영향이라고 한다. 로마인들이 켈트인과 다투면서 영역이 겹치고 두 문화가 결합되던 것의 흔적이라나. 확실히 독특한 문화인 것 같은데 프랑스인들도 불편함을 알고 있으나, 그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숫자 체계를 유지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전통의 보존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것처럼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이상할 정도로 문화의 보존에 강경한 자세를 취한다. 수백 년 된 파리의 건물들을 보존하기 위해 재건축은 물론 에어컨조차 설치하기 힘들 정도라고 하니, 보존에 대한 집착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대체 왜 이러는 것인가?
이들에게 그들의 문화란 그들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마치 우리가 한민족으로서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과 흡사하다. 프랑스어란 프랑스혁명 이후 나폴레옹으로 대표되는, 온 유럽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프랑스의 외교적 지위, 하나 된 국가로서의 자긍심, 영어와의 위상 역전으로 인해 상처 입은 자존심 등등 '문화방어기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파리의 건물을 극도로 보호하는 것 또한 이와 흡사하다. 오스만 남작 주도하에 예술적인 근대 도시로 탈바꿈함으로써 만들어진 파리만의 아름다운 경관, 수백 년간의 보존 노력, 나치 독일의 침탈에도 지켜낸 자부심, 현제까지 이 경관을 지키지 위한 법률제도화까지. 그야말로 집착에 가까운 보호다. 얀데레인가?
프랑스인들의 고집은 비이성적인 수준이라고들 이야기하는데, 아무래도 이러한 부분이 대략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이게 당연해 보일 정도로.
어느 순간 애국가의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은 무색하게 되어 버렸다. '콘크리트 1200KM 아파트강산' 이 아닐까? 우후죽순 생겨나는 아파트와 국민의 혈세로 만들어진 사치스러운 건축물들(예를 들면 경북도청)은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난다. 대나무를 닮아서 그렇게 공실이 많은가? 어느 나라 관리가 사치를 부리며 골프를 치는가? 국민을 일개미로만 알고, 개미굴 같은 아파트에 처박으려는 것이 아닌가. 일벌로만 알고 천편일률적인 벌집 아파트에 살게 하려는 것이 아닌가. 과거의 청백리들은 굶어 죽어도 부정한 것을 탐하지 않았고, 목을 아깝게 여기지 않고 충언을 고하였다고 배웠다. 수백 년이 지난 우리는 먹을 것을 먹을 수 있으며, 잠을 청할 곳이 있고, 입을 옷이 수두룩하여 내일을 걱정하지 않음에도 부정한 것을 탐하고 말을 담아두니 애석할 따름이다.
저 먼 곳의 프랑스인들처럼 문화를 아끼고 보존하며 그 의지를 똑바로 계승하였더라면 좀 다른 세상일지. 모로 가나 도로 가나 비이성적인 것은 같아 보이니 차이가 없다 할 수 있을까? 우스울 따름이다.
하지만 우리도 이러한 고집을 지닌 분이 있었다. 태조부터 세종 대까지 벼슬을 지낸 수응재상瘦鷹宰相 허조許稠 정승은 늘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충심으로 가득했으며,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어찌나 신념에 대한 고집이 세면 국왕에게 '바르지 않다.'는 말을 달고 살았겠는가. 또한 '탈탈 털어 먼지 안 날 사람 없다' 하는 말이 있는데, 적어도 기록 상으로 이 분은 먼지 한 톨 나지 않았다. 누추한 집에서 소량의 녹봉만으로 검소하게 살고, 죽을 때마저 '태평한 시대에 나서 태평한 시대에 죽으니, 천지간에 굽어보아도 부끄러움이 없다.' 하였으니 지금의 사람들이 정말 목표로 해야 할 삶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