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행동

by 레옹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프랑스 근대 철학의 대가, 데카르트의 말이다. 어릴 적부터 나는 그의 말이 정답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는 이 말을 어떤 상황에서도 의심할 수 없는 불변의 진리라 규정하고, 자신의 모든 철학의 근간으로 삼았다. 극단적인 회의론으로 세상 모든 것을 의심하면서 꼬치꼬치 질문을 쏘아대고선, 질문을 쏘아대는 그 순간에야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질문병자랄까. 나와 흡사한 그의 말에 취하여 나 또한 항상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사소한 것에도 심사숙고하면서 늘 고뇌에 빠져 늘 번민했다.



생각을 하지 않는 자는 숨 쉬지 않는다. 생각을 하는 것은 살아있는 것의 특권이니, "생각 없이 OO 했다"라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다. 이성과 본능의 사이에서 저울질하다가 포기한 자의 변명이라고나 할까?

어떤 사람이 돈을 훔쳤는데,

"생각 없이 저지른 일입니다.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조종하는 것 같았어요."

라고 진술을 한다면, 과연 그의 진술은 효력이 있을까? 결국 행동한 것은 그 자신이고, 그는 그 행동에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렇다면, 그의 진술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진정 다른 누군가가 그에게 최면을 걸어서 조종을 했을까? 그럴 리가. 그는 머리가 아주 비상한 대신, 의지가 약한 사람이다. 의지는 곧 마음, 정신. 본능이 이성에게 패하는 마음을 자제심이라 부르고, 이성이 본능에 패하는 것을 충동심이라 부르듯이 그의 정신은 나약하다. 지나가다 떨어진 돈을 자신의 것으로 삼든, 남의 지갑에 손을 대어 돈을 갈취하든 그는 처음에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순간 돈이 눈에 보이면 생각을 하는데, "남의 것이니 그것을 취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과 "아니, 나는 저것을 가지고 싶어"라는 생각이 생긴다. 그리고 후자의 생각이 이기면 돈을 탈취하게 되는데, 붙잡히고 나면 부끄러운 나머지 그 생각을 면피하고자 내뱉는 것이 "생각이 없었다."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각이 그를 조종한 것인가? 그가 생각을 조종한 것인가? 그에게는 선택지가 있었음에도 부적절한 행동을 하였으니, 그가 생각을 조종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여기서 생각을 조종하면서 자신에게 정당성을 부여한다. 자신을 움직이는 일종의 장치로서 생각을 이용하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말로 돌아가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사람들은 이렇게 포인트를 맞추고는 한다. 나 또한 그랬으나 나이를 먹으니 보이는 것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인간은 생각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 OO을 하는 존재로서 이해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취할 행동에 따라 내가 내 생각을 부여한다면, 내 선택으로 끊임없이 흔들리는 것이 생각이라면, 생각하는 것에 나의 존재의의를 두는 것은 나조차도 나에게 흔들리는 것이 아닌가?

어느새 입 밖으로 나는 말.

"와, 헛살았는데?"

지난 고뇌와 번민들이 허탈해진다. 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생각으로 낭비했단 말인가? 장고 끝에 악수惡手를 둔 다했던가. 30년을 돌아보니 대마大馬의 숨통이 끊어짐을 느낀다. 비웃음이 두려워 나서지 못한 자리들, 차일 것이 두려워 내뱉지 못했던 고백, 번뇌에 사로잡혀 뜻을 세우지 못하고 흘려보낸 시간이 아쉬워 속이 쓰려온다.



그렇다면 내 선택, 내가 하고자 하는 행동에 의하여 내 생각이 정해진다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즉,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내 존재를 '생각' 해내는 것이 아닌가? 다행히도 이러한 고뇌들을 잘 정리한 책을 최근에 들어서야 볼 수 있었다. 리처드 와이즈먼의 립잇업이라는 책인데, 이 책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의 뇌 속에는 2명의 사람이 있는데, '지시자'와 '관찰자'가 있다."

간단히 설명을 하자면 지시자는 행동을 '지시' 한다. 관찰자는 그것을 '관찰'하고 나를 설득한다. 나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는 항상 옳다. 관찰자가 우리를 조종하기 때문에. 사람을 죽여도 '이 녀석은 죽을 만했다'라고 치부해 버릴 것이다. 또는 매일 피곤한 몸을 일으켜 세워서 새벽에 뛰러 나가는 것을 '난 아직 피곤하지 않다.'라는 정당성을 부여할 수도 있는 것이다.

대마불사大馬不死, 대마는 쉽게 죽지 않는다. 죽은 것처럼 보여도 실낱같은 숨통이 있으니, 악수惡手가 되었건 실수失手가 되었건 그 한 수 한 수에 작은 의미를 부여하면서 돌을 놓지 않는다면 대마가 기를 펼 날이 올 것이다. 작은 행동 하나하나를 모아 큰 나를 만들어 나가는 것으로 헛산 것처럼 보이는 시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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