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무라비 법전

by 레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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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현무암 석비에 빼곡히 새겨진 282개 조항. 기원전 18세기 바빌로니아의 위대한 왕 함무라비가 인류에게 남긴 이 거대한 유산은 단순한 고대 문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혼란의 시대를 정복하고 정의의 척도를 세우고자 했던 한 왕의 치열한 고뇌이자, 인류 최초의 체계적인 법치주의 실험이었다. 현대적 관점에서 일부 조항들이 가혹해 보일 수 있지만, 당시의 역사적 맥락을 고려할 때 함무라비 법전은 그 시대가 요구한 가장 공정하고 합리적인 법체계였다.

함무라비가 통치하던 고대 바빌로니아는 다양한 부족과 민족이 혼재하는 복잡한 사회였다. 각기 다른 관습과 전통을 가진 집단들이 한 지역에 모여 살면서, 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왕의 자의적 판단이나 지방 관리들의 주관적 해석에 의존하는 것은 사회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었다.

함무라비 법전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명문화된 법률을 제시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탈리온의 원칙은 단순한 보복이 아니라, 처벌의 상한선을 정함으로써 과도한 복수를 방지하는 진보적 개념이었다. 물론 이 원칙이 모든 신분에 걸쳐 완벽히 균등하게 적용되지는 않았다는 한계도 분명 존재한다. 귀족이 노예를 해친 경우 금전적 보상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는 여전히 계급사회의 엄연한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그러나 이러한 차등에도 불구하고, 피의 복수가 난무하던 시대에 '동등한 보상'이라는 개념 자체를 도입한 것은 법적 안정성의 큰 진보임에는 틀림없다.


현대인들이 함무라비 법전을 비판할 때 자주 언급하는 것이 신분에 따른 차등 처벌이다. 귀족을 해친 자와 노예를 해친 자에 대한 처벌이 달랐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당시 사회 구조를 무시한 채 현대적 평등 개념을 적용한 성급한 판단이다.

고대 사회에서 신분제는 단순한 차별이 아니라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핵심 원리였다. 각 계층은 서로 다른 의무와 책임을 져야 했고, 그에 따른 권리와 보호도 달랐다. 함무라비 법전은 이런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각 계층 내에서는 평등한 처벌을 보장했다. 같은 신분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동일한 법이 적용되었고, 이는 그 시대로서는 상당히 공정한 시스템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함무라비 법전이 상위 계층의 책임을 더 무겁게 규정했다는 점이다. 귀족이나 관리들이 직무를 소홀히 하거나 권력을 남용할 경우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 이는 권력에 상응하는 책임을 강조한 것으로, 현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과 맥을 같이 한다.


함무라비 법전의 가장 혁신적인 측면 중 하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 규정이었다. 과부, 고아, 가난한 자들을 위한 특별한 법적 보호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고, 이들을 괴롭히거나 착취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한 처벌이 따랐다.

특히 여성의 권리 보호는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적이었다. 여성도 재산권을 가질 수 있었고, 상속권도 인정받았다. 남편이 부당하게 이혼을 요구할 경우 여성은 자신의 재산을 되찾을 수 있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위자료까지 받을 수 있었다. 이는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여기던 다른 고대 사회와 비교할 때 상당히 앞선 인식이었다. 4천 년 전에도 이미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 했던 법의 본질적인 역할을 보여주며, 오늘날의 인권 개념이 어디에서부터 뿌리를 내렸는지 상기시킨다.


함무라비 법전은 또한 상업과 경제 활동을 규율하는 상세한 조항들을 포함했다. 대출 이자율의 상한선을 정하고, 계약 불이행에 대한 처벌을 명시하며, 도량형의 통일을 규정했다. 이는 상업 활동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경제적 분쟁을 줄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농업 사회에서 중요한 토지와 물 사용권에 대한 규정들은 매우 현실적이고 공정했다. 농부들의 권리를 보호하면서도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고려한 균형 잡힌 조항들이 많았다. 이는 개인의 권리와 공동체의 필요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으려 한 지혜로운 시도였으며,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해결하기 어려운 공익과 사익의 조화 문제를 고대에 이미 고민했음을 보여준다.


함무라비 법전을 평가할 때 우리는 그것이 제정된 시대의 맥락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기원전 18세기는 성문법 자체가 혁명적인 개념이었던 시대였다. 그 이전까지 법이란 왕이나 지배층의 자의적 판단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함무라비 법전이 돌에 새겨져 공개된 것은 법 앞에서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보장하려는 시도였다. 누구나 법의 내용을 알 수 있고, 같은 상황에서는 같은 법이 적용될 것이라는 확신을 줄 수 있었다. 이는 그 시대로서는 매우 민주적이고 공정한 접근이었으며, 현대 법치주의의 핵심 원칙인 '법의 공개성과 예측 가능성'을 4천 년 전에 이미 실현하고자 했던 놀라운 선견지명이었다.

또한 함무라비 법전은 단순한 처벌 규정이 아니라,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구성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종합적인 시스템이었다. 범죄 예방, 분쟁 해결, 경제 질서 확립 등 다양한 측면에서 사회의 필요를 충족시키려 했다.


함무라비 법전의 진정한 가치는 개별 조항의 내용이 아니라, 그것이 추구한 법정신에 있다. 강자의 횡포로부터 약자를 보호하고, 명확한 기준을 통해 사회 질서를 유지하며, 모든 구성원이 예측 가능한 법적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하려는 의지는 시대를 초월한 가치이다.

"강자가 약자를 압제하지 못하게 하고, 과부와 고아에게 정의를 베풀기 위하여"라는 함무라비의 선언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법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 목표를 명확히 제시한 것이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법치주의의 핵심 가치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함무라비 법전은 완벽한 법전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제정된 시대의 현실과 한계를 고려할 때, 그보다 더 공정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4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한 왕이 만든 이 법전이 오늘날까지 연구되고 논의되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 사회가 추구해야 할 정의와 질서에 대한 근본적 통찰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지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D%95%A8%EB%AC%B4%EB%9D%BC%EB%B9%84_%EB%B2%95%EC%A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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