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롭게 살아라

by 레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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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가면을 쓴다. 직장에서는 유능한 전문가의 가면을, 가족 앞에서는 헌신적인 부모의 가면을, 친구들 사이에서는 재미있는 동반자의 가면을. 그런데 문득 묻게 된다. 이 모든 가면 아래에서, 우리는 얼마나 '나' 자신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서"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자신의 선택을 포장하는 데 익숙해졌다. 하지만 진정한 명예는 그런 화려한 치장이 아니라, 가장 순수하고 본질적인 자기 자신에서 나온다. 포장과 변명을 모두 벗어던지고, 오직 하늘에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당당함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명예로운 삶이다.


"가족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 "조직을 위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더 큰 선을 위해서였다". 이런 말들이 얼마나 달콤한 위안이 되는지 우리는 안다. 이 말 앞에서는 모든 것이 정당화된다. 거짓말도, 비겁함도, 심지어 배신마저도.

하지만 솔직해지자. 야근을 핑계로 하기 싫은 가족 모임을 피한 적은 없는가? "아이 교육을 위해서"라며 실상은 자신의 체면을 위해 과도한 사교육비를 지출한 적은 없는가? "회사를 위해서"라고 말하며 동료에게 불리한 정보를 숨긴 적은 없는가?

이런 순간들을 부끄러워하자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약하고 불완전하다. 문제는 그런 약함을 인정하지 않고 그럴듯한 포장지로 감추려 할 때 시작된다. 진정한 명예는 완벽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정직함에서 온다. "나는 두려웠다", "나는 편한 길을 택했다", "나는 이기적이었다"고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명예로운 출발선에 설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모든 포장을 벗어던진 후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윤동주 시인의 절절한 시구처럼, 진정한 명예의 본질은 '하늘에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내 안의 하늘, 양심의 거울에 비추어"

그 시인이 노래한 하늘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변치 않는 절대적 기준, 바로 우리 내면 깊숙한 곳의 양심을 의미한다. 세상의 시선은 하루아침에 바뀐다. 오늘 칭찬받는 일이 내일 비난받을 수 있고, 지금 인정받는 가치가 나중에는 조롱거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양심의 소리는 시대를 초월해 일관된다.

한 점 부끄럼 없다는 것은 결코 완벽무결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에게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실수했을 때 "실수했다"고 말할 수 있고, 약했을 때 "약했다"고 인정할 수 있으며, 모를 때 "모른다"고 고백할 수 있는 용기를 뜻한다.

예를 들어보자. 회사에서 누군가가 당신의 아이디어를 가져갔을 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분노하며 복수를 계획하는가, 아니면 "더 큰 그림을 위해서"라며 참고 넘어가는가? 그런데 정말로는 어떤가? 혹시 그냥 갈등 상황이 두려워서 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으려면, 이런 자신의 진짜 동기를 정직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진실한 자기 인식을 바탕으로 행동할 때, 비로소 우리는 명예롭게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이 늘 명확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길을 잃고 헤매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그런 때에도 우리는 명예롭게 살 수 있을까?


스물다섯 살 김씨는 대기업을 그만두고 작은 NGO로 이직했다. 주변에서는 "미쳤다"고 했고, 부모님은 "가족을 생각해서라도"라며 만류했다. 하지만 3년 후, 김씨는 다시 대기업으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역시 이상주의는 오래 못 간다더니."

김씨는 실패한 것일까? 명예롭지 못하게 산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김씨는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용감하게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처음 NGO로 갈 때도, 나중에 대기업으로 돌아올 때도,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양심에 따라 결정했다.

방황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방황하지 않는 삶이 더 위험하다. 한 번도 자신을 의심해보지 않은 사람, 한 번도 기존의 길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방황하는 그 순간에도 자신에게 정직한 것이다. "나는 지금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나는 지금 두렵다", "나는 지금 약하다"고 인정하는 것. 이런 솔직함이야말로 진정한 용기이고, 명예로운 태도이다.

엇나간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돌아가는 길이 지름길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겸손함, 좌절을 통해 얻는 공감 능력, 혼란을 통해 기르는 판단력.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더 깊이 있고 명예로운 사람으로 만든다.

그렇다면 이런 깨달음을 언제까지 미룰 것인가? 명예로운 삶은 "언젠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상황이 좋아지면", "여건이 되면", "나중에 시간이 생기면"... 우리는 이런 말로 명예로운 삶을 계속 미룬다. 하지만 완벽한 조건은 결코 오지 않는다. 명예는 특별한 순간에만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선택들 속에서 만들어진다.

오늘 오후, 동료가 당신에게 작은 거짓말을 부탁했다고 해보자. "고객에게 내가 자리에 없다고 해줘." 아주 사소한 일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순간이 당신의 명예가 시험받는 순간이다. 당신은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혹은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할 순간, 모르는 사람이 지갑을 떨어뜨린 순간, 친구가 다른 친구에 대해 험담을 할 때... 이런 일상의 작은 순간들이 모여 우리의 인격을 만들고, 우리의 명예를 결정한다.

"지금 당장"이라는 것은 거창한 결단을 의미하지 않는다. 미뤄둔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은 감사 인사 한 번, 외면해온 불의한 상황에 대한 작은 목소리. 이런 것들이 명예로운 삶의 실제 모습이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미루고 있는가? 어떤 진실을 회피하고 있는가? 어떤 용기 있는 선택을 "다음에"로 넘기고 있는가?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우리는 더욱 단순하고 본질적인 것으로 돌아가야 한다. 모든 포장과 변명을 벗어던지고, 오직 자기 자신으로서 하늘에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사는 것.

이것은 완벽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실수하고, 넘어지고, 때로는 길을 잃기도 하지만, 그 모든 과정에서 자신에게 정직한 삶을 사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서"라는 명분 때문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양심과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방황할 수도 있고, 엇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 과정에서만큼은 자신에게 정직하자. 그 정직함이야말로 어떤 성취보다, 어떤 인정보다 값진 것이다.

명예롭게 사는 것은 선택이다.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당신이 내리는 작은 선택들의 연속이다. 오늘 당신은 어떤 가면을 벗어던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지금 당장, 당신의 양심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목소리에 따라 행동할 때, 당신은 이미 명예롭게 살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https://www.inven.co.kr/webzine/news/?news=188497&site=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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