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위버멘쉬인가?

by 레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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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을 선포하던 그 순간, 한 시민은 라디오 앞에서 이런 말을 중얼거렸다고 한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의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유신체제는 단순한 정치적 변화가 아니라, 한 인간이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자신의 절대적 의지로 재편하려 했던 거대한 실험의 시작이었다.

니체의 '위버멘쉬(Übermensch)'는 기존의 도덕과 가치를 초월하여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초인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강력한 권력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위버멘쉬는 타인을 지배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극복한다.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절제할 줄 아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과연 박정희는 니체가 말한 '자기 극복'과 '가치 창조'를 통해 시대를 초월한 위버멘쉬였는가, 아니면 권력의 늪에 빠져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훼손한 독재자였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찬사와 비판이 교차하는 역사의 격전지에서 감정을 배제하고 냉철한 분석으로 접근해야 한다.


박정희가 보여준 첫 번째 위버멘쉬적 면모는 기존 질서에 대한 과감한 도전 정신이었다. 1960년대 한국은 절망적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다. 당시 국제사회는 한국의 경제 발전 가능성에 회의적이었다. 세계은행은 한국을 "원조 없이는 생존 불가능한 국가"로 분류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농업국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하지만 박정희는 이러한 패배주의적 전망을 거부했다. 그는 중화학공업화라는 당시로서는 무모해 보이는 비전을 제시했다. 국제적 회의론과 국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를 관철했다. 포항제철소 건설 당시 일본은 반대했다. "한국에는 철강 기술도, 자본도, 시장도 없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박정희는 "우리가 만들어내겠다"는 의지로 이를 추진했다. 이는 니체가 말한 "자기 자신의 가치를 창조하는" 초인적 결단력의 발현이었다.

유신체제 하에서 한국은 연평균 8-10%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 의지의 승리였다. 박정희는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국가 자원을 전략적으로 배분했으며, 개인적 이익보다는 국가적 목표를 우선시하는 고독한 결단을 내렸다. 이러한 모습은 자신만의 가치 기준으로 행동하는 위버멘쉬의 특징과 일치한다.


박정희의 두 번째 위버멘쉬적 면모는 국민 의식의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낸 점이다. 그는 단순히 경제 정책을 시행한 것이 아니라, '조국 근대화'라는 거대한 서사를 통해 국민들에게 새로운 목표 의식을 제공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상처받은 민족에게 "할 수 있다"는 정신을 심어준 것이다.

새마을운동은 이러한 의식 혁명의 대표적 사례였다. 이는 단순한 농촌 개발 사업을 넘어 "우리 스스로 우리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자기 극복 정신의 전파였다. 박정희는 기존의 체념과 패배주의를 거부하고, 새로운 가치체계 - 근면, 자조, 협동 - 를 창조했다. 이는 니체가 강조한 "새로운 가치의 창조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수출 드라이브 정책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출이 곧 애국"이라는 구호는 단순한 경제 전략을 넘어 국민들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했다. 박정희는 경제 활동을 도덕적 가치와 연결시켜, 개인의 경제적 성공이 곧 국가의 발전이라는 새로운 윤리를 만들어냈다.


진정한 위버멘쉬라면 자신의 권력을 스스로 제한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박정희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유신헌법은 그를 사실상 종신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이는 니체가 강조한 "자기 지배"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긴급조치를 통한 자의적 통치는 법치주의를 파괴했다. 1974년 긴급조치 1호로 유신헌법에 대한 어떤 비판도 금지되었고, 이를 위반한 수많은 시민들이 감옥에 갇혔다. 언론의 자유는 사라졔고, 정치적 반대 세력은 무자비하게 탄압받았다. 이는 다양한 목소리를 허용하고 자기 비판을 받아들이는 진정한 위버멘쉬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김대중 납치 사건(1973), 인혁당 사건(1974-1975), 민청학련 사건(1974) 등은 유신체제의 폭압성을 상징한다. 특히 인혁당 사건의 경우, 무고한 시민 8명이 조작된 혐의로 사형당했는데, 이는 단순한 '억압'을 넘어 '사법 살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행위는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것으로, 니체가 말하는 "고귀한 정신"과는 정반대였다.


민주적 견제 장치의 부재는 필연적으로 권력의 부패를 초래했다. 박정희 자신은 개인적으로 청렴했을지 모르지만, 그가 구축한 권력 구조는 점차 부패해져 갔다.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액튼 경의 경고가 현실로 나타났다.

더 심각한 것은 박정희 자신의 현실 감각 상실이었다. 유신체제 말기로 갈수록 그는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더 강한 억압으로 대응하려 했다. 1979년 부마항쟁은 민심의 이반을 보여주는 명확한 신호였지만, 박정희는 이를 "불순 세력의 선동"으로 규정하고 계엄령까지 검토했다.

YH 무역 사건에서 김영삼을 제명하고, 부산과 마산의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려 한 것은 자기 성찰 능력의 완전한 상실을 보여준다. 진정한 위버멘쉬라면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고 성찰해야 하지만, 박정희는 비판을 허용하지 않았고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적으로 규정했다. 이는 권력에 취한 평범한 독재자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니체의 위버멘쉬 개념을 박정희에게 적용하기 전에, 우리는 이 개념의 진정한 의미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위버멘쉬는 단순히 강력한 의지를 가진 자나 탁월한 성취를 이룬 자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한 지배"를 완성한 존재, 즉 타인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욕망과 한계를 끊임없이 극복하는 존재를 의미한다.

니체는 위버멘쉬를 "자기 극복(Selbstüberwindung)"의 존재로 규정했다. 이는 기존의 가치를 파괴할 때도 그에 대한 깊은 고뇌를 거치며,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때도 그것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아는 존재를 의미한다. 진정한 위버멘쉬는 자신의 힘에 도취되지 않으며, 오히려 더 큰 책임감을 느끼고 더욱 엄격한 자기 절제를 실천한다.

또한 위버멘쉬는 "영원회귀(ewige Wiederkehr)"의 관점에서 자신의 행동을 성찰한다. 즉, 자신의 모든 행동을 영원히 반복할 수 있는가를 자문하며, 그에 따라 행동의 기준을 설정한다. 이는 권력의 남용이나 타인에 대한 억압과는 양립할 수 없는 철학적 입장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박정희를 위버멘쉬로 규정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다. 그는 특정 영역에서 탁월한 성취를 보였지만, 그의 권력 독점과 민주주의 억압은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쉬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첫째, 박정희는 "자기 지배"보다는 "타인 지배"에 집착했다. 진정한 위버멘쉬라면 권력을 영구히 독점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후계자를 키우고, 민주적 제도를 발전시켜 권력의 평화적 이양을 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박정희는 유신헌법을 통해 종신 집권의 길을 열었고, 이는 자기 절제와는 정반대의 행위였다.

둘째, 박정희는 자기 비판 능력을 상실했다. 그는 자신의 정책과 통치 방식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았고,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을 "불순 세력"이나 "용공 분자"로 매도했다. 진정한 위버멘쉬라면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고 성찰하며, 다양한 관점을 수용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셋째, 박정희가 창조한 가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새로운 가치"가 아니었다. 그의 근대화 이념은 서구의 발전 모델을 답습한 것이었고, 그의 통치 방식은 전통적인 권위주의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쉬는 기존의 모든 가치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완전히 새로운 윤리를 창조하는 존재여야 한다.


결국 박정희는 위버멘쉬가 아니라 권력의 유혹에 굴복한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는 초기에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권력을 장악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권력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렸다. 이는 니체가 경계한 "권력에의 의지"의 타락한 형태였다.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Wille zur Macht)"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구가 아니다. 자기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실현하려는 창조적 충동을 의미한다. 하지만 박정희는 이를 정치적 권력의 확장과 유지로 왜곡시켰다. 그 결과 그는 창조자가 아니라 파괴자가 되었다. 해방자가 아니라 억압자가 되었다.


박정희를 평가할 때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무시할 수는 없다. 1960년대-1970년대 한국은 냉전 체제의 최전선에 위치해 있었고, 북한의 지속적인 위협, 경제적 절망, 사회적 혼란 등은 강력한 리더십을 요구하는 상황이었다. 또한 당시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군사 정권 하에서 경제 발전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대적 제약이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같은 시기 싱가포르의 리콴유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면서도 법치주의와 제도적 민주주의의 기본 틀은 유지했다. 대만의 장징궈는 1980년대 말 민주화 이행을 주도했고, 칠레의 피노체트조차 1988년 국민투표에서 패배를 인정하고 권력을 내놓았다.

박정희의 선택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그의 개인적 판단과 가치관의 결과였다. 그는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 발전을 양자택일의 문제로 인식했지만, 이는 잘못된 인식이었다. 진정한 국가 발전은 경제 성장과 정치적 자유가 함께 이루어질 때만 가능하다.


진정으로 위대한 지도자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권력을 확장하는 능력이 아니라 권력을 제한하는 지혜, 개인적 카리스마가 아니라 제도적 유산, 단기적 성과가 아니라 장기적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는 능력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진정한 위대함은 자신의 권력을 스스로 제한하고, 후계자를 키우며, 민주적 제도를 발전시키는 데서 나온다. 여기에 더해 시민 사회의 역량을 강화하고, 비판적 담론을 허용하며,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적 리더십의 핵심이다.

박정희는 경제 발전이라는 분야에서는 탁월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정치적 성숙과 민주주의 발전에서는 명백한 실패를 보였다. 그는 자신이 만든 경제적 토대 위에 민주적 상부구조를 건설하는 데 실패했고, 오히려 그것을 방해했다. 이는 그의 역사적 유산을 불완전하게 만드는 결정적 한계였다.


박정희를 위버멘쉬로 규정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위험한 시도다. 그는 분명히 한국 현대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지만, 동시에 민주주의와 인권을 심각하게 훼손한 독재자였다. 이러한 이중성을 인정하는 것이 성숙한 역사 인식의 출발점이다.

진정한 역사적 평가는 흑백논리를 넘어서야 한다. 박정희의 경제적 업적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정치적 억압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그의 강력한 리더십을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은 단호히 비판해야 한다. 역사는 단순한 영웅 서사가 아니다. 복잡한 인간 드라마이다. 이러한 복잡성을 인정하는 것이 역사로부터 진정한 교훈을 얻는 길이다.


유신 독재의 역사는 우리에게 명확하고도 불변의 교훈을 남긴다. 어떤 명분과 성과도 민주주의와 인권의 파괴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권위주의의 유혹이 여전히 존재하는 현대 사회에도 유효한 교훈이다.

경제 발전과 정치적 자유는 상충하는 가치가 아니다. 오히려 상호 보완적인 가치다. 지속 가능한 발전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창의성에 기반해야 한다. 이는 민주적 제도와 자유로운 환경에서만 가능하다. 박정희는 이 중 하나만을 선택했다. 그 결과 불완전한 유산을 남겼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박정희식 "강한 리더"가 아니라, 민주적 가치와 인권을 존중하면서도 효과적인 국정 운영을 할 수 있는 지도자다. 니체의 위버멘쉬 개념을 올바르게 이해한다면, 그것은 권력을 추구하는 자가 아니라 권력을 절제할 줄 아는 자, 타인을 지배하려는 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자여야 한다.

박정희라는 인물은 우리에게 권력의 유혹과 위험성, 그리고 진정한 리더십의 의미를 끊임없이 묻고 있다. 그의 공과(功過)가 얽혀 있는 복합적인 유산을 직시하고, 그로부터 올바른 교훈을 도출하는 것이야말로 과거의 그림자를 넘어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동력이 될 것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영웅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시민 모두가 주인이 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것이 유신 독재의 어둠을 넘어 우리가 꿈꿔야 할 희망의 방향이다.


(이미지 출처 https://namu.wiki/w/%EB%B0%95%EC%A0%95%ED%9D%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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