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과거의 상처와 부끄러움을 덮기 위해 '그땐 그랬어'라는 낡은 외투를 걸친다. 과연 그 외투는 죄를 가려주는 방패일까, 아니면 비겁한 자기기만의 또 다른 이름일까? 나는 이 익숙한 변명 속에 숨겨진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몰랐다"는 변명을 들을 때마다 의문이 든다. 정말로 몰랐던 것일까?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않다고 나는 확신한다.
실제로는 알려고 하지 않았거나, 불편한 진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했을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고, 주변의 다른 목소리들을 애써 무시하거나 차단한다. '몰랐다'는 말은 무지에 대한 고백이 아니다. 그것은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기 위해 쓴, 교묘한 가면일 뿐이다.
"그때는 그게 맞았다"는 변명 역시 마찬가지다. 과연 그 시대의 모든 사람이 동일한 생각을 했을까? 역사를 보면 어느 시대든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만 다수의 의견이나 권위자의 주장을 별다른 고민 없이 따랐을 뿐이다.
그들은 듣고 싶은 것만 들었고, 보고 싶은 것만 보았다. 양심의 속삭임보다 군중의 함성을 택했을 뿐이다.
이런 변명들을 분석해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이는 스스로를 생각할 능력이 없는 존재로 규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나는 판단할 능력이 없었다", "나는 시대의 흐름을 따를 수밖에 없는 수동적 존재였다"고 스스로를 규정하는 셈이다. 이는 인간을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선택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환경에 휩쓸리는 낙엽으로 격하시키는 것이다.
더욱 위험한 것은 이런 논리가 현재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들 그러니까", "전문가들이 그러니까", "분위기가 그러니까"라는 식으로 현재의 판단 역시 외부에 위임할 수 있다.
결국 자신을 영원히 우민 상태에 두는 것과 같다. 이것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가장 치명적인 모순이 아닐까?
물론 과거의 행동을 평가할 때 시대적 맥락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당시의 정보 환경, 사회적 압력, 제도적 제약 등은 분명히 고려되어야 할 요소들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개인의 도덕적 책임을 완전히 세척해 주는 만능 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시대적 맥락을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면죄부로 사용하는 것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다.
진정한 반성은 "그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내 안의 어떤 요소들이 그런 판단을 이끌었는지"를 냉정히 분석하는 것이다. 외부 환경 탓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 과정을 거울처럼 투명하게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런 직시만이 진정한 배움을 가능하게 한다.
나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강인한 도덕적 근육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시대의 거친 파도가 몰아쳐도, 우리는 자신만의 도덕적 나침반을 잃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완벽하지 않다. 실수할 수도 있고,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실수를 인정하고 배우며 성장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특징이다. 이런 능력을 부정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존엄성 자체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당시에도 명백히 잘못된 것으로 여겨졌던 행동들, 특히 기본적인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일들은 시대상으로 합리화될 수 없다. 그 시대에도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이를 명확히 증명한다.
용기는 언제나 소수의 몫이었지만, 그 소수의 존재가 다수의 변명을 무력화한다.
과거를 돌아보는 방식에는 두 개의 길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나는 변명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반성의 길이다.
변명은 외부 요인에 책임을 전가하면서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다. "그땐 그랬어", "몰랐어", "어쩔 수 없었어"라는 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는 과거에 갇힌 채 같은 실수를 반복할 가능성을 열어둔다.
반성은 자신의 선택 과정을 분석하고 그로부터 배우려는 시도다. 외부 환경을 고려하되,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판단과 선택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변명은 과거의 포로를 만들지만, 반성은 미래의 주인을 만든다.
결국 "그땐 그랬어"라는 변명을 거부하는 것은 개인의 주체성을 되찾는 일이다. 자신을 시대의 흐름에 휩쓸리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며 그 결과에 책임지는 능동적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는 과거로 돌아가 다시 선택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과거의 선택을 통해 배우고, 현재와 미래에 더 나은 판단을 하겠다는 다짐이다.
'그땐 그랬어'라는 변명을 넘어설 때, 우리는 비로소 과거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진다. 진정한 책임감으로 자신을 직시하고, 현재를 용기 있게 살아가며,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변명이 아닌 반성만이 우리를 성장시키는 유일한 길이다.
(이미지 출처 https://namu.wiki/w/%EA%B5%B0%EC%A4%91%EC%8B%AC%EB%A6%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