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숫자가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거울을 보며 '나는 내 각 부분의 힘을 모두 합쳐도 결국 나 자신이야'라고 속삭이는 숫자들이 있다. 나르키소스가 물에 비친 자신에게 매료되었듯, 이 숫자들은 자신만의 완벽한 '자아상'에 푹 빠져 있다. 이들이 바로 수학의 오묘한 세계에서 발견된 **암스트롱 수(Armstrong Number)**다.
암스트롱 수는 각 자리 숫자를 총 자릿수만큼 거듭제곱하여 더했을 때, 원래의 숫자로 돌아오는 신비로운 존재들이다. 예를 들어 153이라는 수를 보자. 이 세 자리 수는 1³ + 5³ + 3³ = 1 + 125 + 27 = 153이 되어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흥미롭게도 암스트롱 수라는 이름은 수학자 마이클 암스트롱(Michael F. Armstrong)에서 따온 것이 아니다. 이 이름은 오히려 특정 연구 프로젝트나 문서에서 파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숫자의 신비로움만큼이나 그 명명의 유래 또한 흥미로운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오히려 이 개념은 고대부터 수학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왔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사람들은 숫자의 특별한 성질에 매료되었고, 완전수나 친화수와 같은 개념들을 탐구했다. 암스트롱 수는 이러한 "특별한 숫자들"의 계보에서 비교적 늦게 발견된 보석 같은 존재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컴퓨터의 발달은 이처럼 숨겨진 숫자의 보석들을 체계적으로 탐색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마치 망원경이 발명되면서 새로운 별자리를 발견할 수 있게 된 것처럼, 컴퓨터는 숫자의 우주에서 숨겨진 보물들을 찾아내는 도구가 되었다.
한 자리 수부터 살펴보면, 모든 한 자리 수(0부터 9까지)는 암스트롱 수다. 각 숫자를 1제곱하면 자기 자신이 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마치 "나는 나야"라고 당당하게 선언하는 어린아이들 같다.
두 자리 수에서는 암스트롱 수가 존재하지 않는다. 두 자리 수 ab(10a + b)에서 a² + b²이 원래 수와 같아지려면... 아무리 계산해봐도 불가능하다. 마치 사춘기 시절처럼, 자신을 찾지 못하는 혼란스러운 시기인 셈이다.
마치 사춘기의 혼란을 겪던 숫자가 마침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내듯, 세 자리 수에서 암스트롱 수의 반가운 귀환이 시작된다. 153, 370, 371, 407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153은 1³ + 5³ + 3³ = 153, 370은 3³ + 7³ + 0³ = 370, 371은 3³ + 7³ + 1³ = 371, 407은 4³ + 0³ + 7³ = 407이 된다. 이들은 마치 성인이 되어 다시 자신을 찾은 것처럼 당당하다.
자릿수가 늘어날수록 암스트롱 수는 더욱 희귀해진다. 네 자리 암스트롱 수는 단 두 개뿐이다: 1634와 8208. 1634 = 1⁴ + 6⁴ + 3⁴ + 4⁴ = 1 + 1296 + 81 + 256 = 1634이고, 8208 = 8⁴ + 2⁴ + 0⁴ + 8⁴ = 4096 + 16 + 0 + 4096 = 8208이다.
다섯 자리로 올라가면 54748, 92727, 93084라는 세 개의 암스트롱 수가 있다. 이들은 마치 높은 산 정상에 홀로 서 있는 고독한 거인들 같다. 각자의 완벽함을 증명하기 위해 엄청난 계산을 거쳐야 하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 자기 자신이다.
더 놀라운 것은 39자리의 거대한 암스트롱 수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115,132,219,018,763,992,565,095,597,973,971,522,401이라는 경이로운 자아를 가진 숫자는 자신의 39개 자리 각각을 39제곱해서 모두 더해도 자기 자신이 된다. 이는 마치 우주의 모든 별을 세어도 결국 하나의 우주가 되는 것과 같은 경이로운 일이다.
현대 컴퓨터과학 교육에서 암스트롱 수는 단골 문제다. 초보 프로그래머들이 반복문과 조건문을 익히기에 완벽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숫자를 각 자릿수로 분해하고, 거듭제곱을 계산하고, 합을 구하는 과정은 프로그래밍의 기본기를 모두 담고 있다.
주어진 수가 암스트롱 수인지 확인하는 간단한 알고리즘은 다음과 같다:
숫자의 자릿수를 구한다
각 자릿수를 총 자릿수만큼 거듭제곱한다
모든 거듭제곱의 합을 구한다
원래 숫자와 비교한다
이 간단해 보이는 과정 속에는 수학과 컴퓨터과학의 아름다운 만남이 숨어있다.
암스트롱 수를 바라보다 보면 철학적인 질문이 떠오른다. 과연 완벽함이란 무엇일까? 암스트롱 수는 자기 자신과 완전히 일치하는 수다. 변화나 성장이 아닌, 현재 상태의 완벽한 유지가 이들의 존재 이유다.
인간의 삶에서는 변화와 성장이 중요하지만, 수학의 세계에서는 이런 불변의 완벽함도 나름의 아름다움을 가진다. 암스트롱 수는 "나는 내가 되고 싶은 바로 그 모습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
흥미롭게도 암스트롱 수는 무한히 많지 않다. 수학자들은 암스트롱 수가 유한개라는 것을 증명했다. 자릿수가 커질수록 그 수를 만족하는 암스트롱 수는 점점 드물어지고, 결국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는 마치 우주에서 생명체를 가진 행성을 찾는 것과 같다. 이론적으로는 무한한 우주에 무한한 행성이 있을 수 있지만,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을 만족하는 행성은 극히 드물다. 암스트롱 수도 마찬가지로, 숫자의 무한한 바다에서 아주 특별한 조건을 만족하는 희귀한 존재들이다.
암스트롱 수는 결국 숫자들의 자화상이다. 각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완벽함을 표현하며, 그 완벽함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153부터 시작해서 39자리의 거대한 수까지, 이들은 모두 "나는 나의 각 부분의 힘을 모두 합쳐도 결국 나 자신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의 삶에서는 변화와 성장이 중요하지만, 암스트롱 수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들의 완벽한 자기 완결성은 우리에게 깊은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과연 완벽함이란 무엇일까? 끊임없는 변화와 성장일까, 아니면 현재 상태의 완벽한 수용일까?
수학의 아름다움은 종종 이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된다. 단순해 보이는 정의에서 시작해서 복잡하고 신비로운 패턴을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그 패턴이 우리에게 깊은 사색거리를 제공하는 것.
다음에 153이나 371을 만날 때, 이 숫자들의 특별함을 넘어 우리 삶 속의 '완벽한 자기애'는 어떤 모습일지, 그리고 우리는 우리 각자의 방식으로 얼마나 아름다운 '암스트롱 수' 같은 존재인지 잠시 사색해보는 것은 어떨까? 암스트롱 수는 수학이 단순한 계산을 넘어 예술이자 철학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완벽한 예시이자, 스스로 빛나는 아름다운 존재들이다.
(이미지 출처 https://www.learn-r.org/r-tutorial/examples/armstrong-number-in-R.p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