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라-위버맨쉬인가?

by 레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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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버멘쉬는 아직 존재한 적이 없다. 나는 가장 위대한 자들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았지만, 그들조차 인간적이었다." 니체의 이 선언은 분명해 보인다. 위버멘쉬는 미래의 가능성이지, 과거나 현재의 현실이 아니라는 것. 그렇다면 기원전 1세기 로마의 독재관 술라를 위버멘쉬로 논하는 것 자체가 모순 아닌가?

하지만 바로 이 모순에서 진정한 철학적 탐구가 시작된다. 니체가 위버멘쉬를 '아직 오지 않은 자'로 설정한 것은, 역설적으로 그가 인간 역사 속에서 그 원형을 찾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니체는 나폴레옹, 카이사르, 보르지아 등 역사적 인물들을 통해 위버멘쉬의 편린들을 포착하려 했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기원전 138-78년)라는 인물이 흥미로운 것은, 그가 니체적 관점에서 볼 때 위버멘쉬의 핵심 특징들을 가장 완전한 형태로 구현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진정한 위버멘쉬가 아니다. 아무도 그럴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생애는 위버멘쉬라는 개념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탐구할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사례를 제공한다.

이 글은 술라를 위버멘쉬로 단정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오히려 그를 통해 니체가 꿈꾸었던 인간 유형의 실현 가능성과 그 필연적 한계를 탐구하려는 철학적 실험이다. 천하패도의 길을 걸었던 한 인간의 궤적을 따라가며, 우리는 권력과 창조, 파괴와 초월의 변증법적 관계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니체 자신이 위버멘쉬를 미래형으로 설정했다고 해서, 과거 인물들에 대한 위버멘쉬적 분석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주인 도덕"을 가진 고대의 귀족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선악의 저편』에서는 "자유 정신"의 역사적 선구자들을 찾으려 했다. 중요한 것은 술라를 완성된 위버멘쉬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행동 양식과 사고 구조에서 위버멘쉬적 요소들을 발견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술라의 행동을 단순한 정치적 실용주의로 해석하는 관점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물론 그의 많은 결정들이 현실적 계산에 바탕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핵심은 그가 기존의 정치적 게임 규칙 자체를 거부하고 새로운 규칙을 창조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로마 진군이라는 결정은 단순히 정적들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그것은 "로마 시민은 로마에서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근본 원칙 자체를 무효화하는 행위였다. 이는 기존 가치 체계의 해체와 새로운 가치 체계의 제시라는 위버멘쉬적 특성과 일치한다.

술라의 개인적 동기를 완전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의 행동 패턴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은 개인적 이익을 넘어선 어떤 '큰 그림'에 대한 집착이다. 이는 그가 권력을 포기한 행위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 개인적 권력욕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기원전 88년 술라의 로마 진군은 단순한 정치적 쿠데타가 아니었다. 이를 이해하려면 당시 로마인들의 정신 구조를 파악해야 한다. 로마는 무력이 아닌 법과 관습으로 통치되는 도시였다. 시민이 시민에게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신성모독이었다. 술라는 이 금기를 깨뜨림으로써, 사실상 로마 문명의 기초를 부정했다. 그러나 이는 니체가 말한 "가치 전도(Umwertung aller Werte)"의 실천이었다. 기존 가치가 더 이상 유效하지 않음을 선언하고, 새로운 가치의 필요성을 제시한 것이다.

술라의 부관들조차 그를 버리고 떠났다는 사실은 그의 결정이 얼마나 급진적이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바로 이 고독함이 위버멘쉬적 특성이다. 니체는 "높은 산 위의 고독"을 위버멘쉬의 필연적 조건으로 보았다.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자는 필연적으로 기존 질서에 안주하는 대중들로부터 고립될 수밖에 없다.

술라가 자신의 행위에 대해 변명하거나 정당화하려 들지 않았다는 점도 중요하다. 그는 "로마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단순한 확신만을 표현했다. 이는 외부적 승인이나 도덕적 정당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 위버멘쉬적 태도의 전형이다. 그에게는 자신의 내적 확신이 모든 외부적 판단보다 우선했다.


술라가 창설한 "법과 국가 재건을 위한 독재관"은 로마 정치사상 전례 없는 발명이었다. 기존의 독재관이 특정 위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임시직이었다면, 술라의 독재관은 국가 자체를 재창조하기 위한 절대권력이었다. 이는 단순한 권력 욕망의 발현이 아니라, 기존 제도의 한계를 인식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창조적 행위였다. 니체가 말한 "권력에의 의지"는 단순한 지배욕이 아니라 창조적 형성 의지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술라의 제도 혁신은 이러한 의지의 구현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제기된다. 진정한 위버멘쉬라면 권력 자체를 초월해야 하는 것 아닌가? 술라의 절대권력 추구는 오히려 그가 여전히 기존 가치 체계(권력 = 선)에 매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이에 대한 답은 술라가 권력을 포기한 행위에서 찾을 수 있다. 그에게 권력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다.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였을 뿐이다. 목적이 달성되면 도구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이는 권력을 다루는 방식에서 그가 얼마나 독특한 존재였는지를 보여준다. 대부분의 권력자들은 권력 그 자체에 중독되어 그것을 놓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술라는 권력을 완전히 도구적으로 취급했다. 이러한 태도는 일반적인 인간의 심리를 크게 벗어난 것이었고, 바로 이 점에서 그의 위버멘쉬적 특성이 드러난다.


술라의 프로스크립티오를 단순한 복수나 학살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는 철저히 계산된 사회 재편 프로젝트였다. 3천 명의 목록에 오른 사람들은 대부분 기존 정치 질서의 핵심 인물들이었다. 술라는 이들을 제거함으로써 새로운 질서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논란이 되는 지점이 등장한다. 과연 새로운 가치 창조를 위해 기존 질서의 담지자들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이는 위버멘쉬 개념 자체가 갖는 근본적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술라가 프로스크립티오 과정에서 보여준 도덕적 무감각은 두 가지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나는 그가 전통적 도덕을 초월한 위버멘쉬적 존재라는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단순히 잔혹한 독재자였다는 해석이다. 핵심은 술라의 냉혹함이 감정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분노나 증오로 적들을 제거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계산된 판단에 따라 행동했다. 심지어 자신의 친구들까지도 목록에 올린 것은, 개인적 감정을 완전히 초월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철학적 문제에 직면한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더 나아가, 위버멘쉬는 기존 도덕을 초월했다는 이유로 어떤 행위든 할 수 있는 존재인가? 니체 자신도 이 문제를 의식하고 있었다. 그는 위버멘쉬가 단순한 "짐승"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위버멘쉬는 기존 도덕을 파괴하되, 동시에 새로운 도덕을 창조해야 하는 존재다. 술라의 경우, 그가 새로운 질서를 창조했다는 점에서는 위버멘쉬적이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준 잔혹함은 여전히 문제적이다.

이는 모든 혁명가들이 직면하는 근본적 딜레마이기도 하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술라는 이 질문에 대해 가장 극단적인 답을 제시했다. 그의 성공은 분명하지만, 그 대가 또한 엄청났다.


술라의 헌법 개혁은 겉보기에는 보수적 복고주의로 보인다. 원로원의 권한 강화, 호민관의 권한 제한, 민중 집회의 영향력 축소 등은 모두 과거로의 회귀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술라가 복원한 것은 과거의 제도가 아니라 과거 제도의 형식을 빌린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이었다. 원로원의 권한은 강화되었지만, 그 구성원은 대부분 술라가 새로 임명한 인물들이었다. 형식은 전통적이지만 내용은 혁명적이었던 것이다.

술라의 개혁이 단순한 권력 욕망의 산물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그 완성도와 지속성이다. 그가 만든 시스템은 실제로 작동했고, 그의 사후에도 상당 기간 유지되었다. 이는 그가 진정한 국가 설계자였음을 의미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술라의 개혁이 체계적이고 일관된 철학에 바탕했다는 것이다. 그는 무질서한 민주주의보다는 질서 있는 귀족정치가 로마에게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모든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이러한 창조적 보수주의는 술라의 독특한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그는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려 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가치를 현재의 상황에 맞게 재해석하려 했다. 이는 니체가 말한 "영원회귀"의 또 다른 버전으로 볼 수 있다. 과거를 단순히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본질을 새로운 형태로 재창조하는 것이다.


기원전 79년 술라의 권력 포기는 고대사에서 거의 유례를 찾기 어려운 사건이다. 절대권력을 손에 넣은 자가 스스로 그것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심지어 그의 동시대인들조차 이 결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술라의 권력 포기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 번째는 초월론적 해석이다. 술라는 권력 자체를 초월한 진정한 위버멘쉬였다. 그에게 권력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고, 목적이 달성되면 수단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이는 권력에 대한 완전한 초월을 의미한다.

두 번째는 실용론적 해석이다. 술라의 결정은 냉철한 현실 판단의 결과였다. 그는 자신의 건강 상태, 정치적 상황, 그리고 후계 구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적절한 시점에 물러난 것이다.

사실 이 두 해석은 상호 배타적이지 않다. 진정한 위버멘쉬라면 감정적 결정이 아닌 냉철한 판단에 따라 행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술라의 권력 포기가 계산된 선택이었다고 해서 그것이 덜 초월적인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술라가 권력을 유지하려는 본능적 욕망을 극복했다는 점이다. 이는 일반적인 정치가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대부분의 권력자들은 권력을 잃는 것을 죽음보다 두려워한다. 하지만 술라는 권력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믿었고, 실제로 그것을 실천했다.


술라가 스스로를 '펠릭스(Felix)', 즉 '행운의 술라'라고 칭한 것은 단순한 자화자찬이 아니었다. 이는 자신의 존재 방식에 대한 철학적 선언이었다. 그는 자신을 운명의 희생자가 아닌 운명의 창조자로 인식했다. 니체의 "amor fati(운명을 사랑하라)"는 단순히 주어진 운명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창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술라의 '펠릭스'라는 자기 인식은 바로 이러한 태도의 표현이었다.

술라는 자신이 비너스(Venus)의 특별한 총애를 받는다고 믿었다. 이는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자신의 행위에 대한 우주적 정당성을 확신하는 태도였다. 그에게 성공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고, 실패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술라의 확신이 맹목적 믿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행운'을 스스로 만들어갔다. 철저한 준비, 냉철한 판단, 과감한 실행을 통해 자신의 확신을 현실로 만들어냈다.

술라의 사례에서 흥미로운 점은 주관적 확신과 객관적 성공이 서로를 강화하는 선순환 구조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는 성공했기 때문에 자신을 '펠릭스'라고 부른 것이 아니라, 자신이 '펠릭스'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는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의 핵심 특성 중 하나다. 위버멘쉬는 외부적 조건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내적 확신에 따라 행동하며, 그 확신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춘 존재다.


술라와 카이사르는 종종 로마 공화정을 무너뜨린 쌍벽으로 비교된다. 하지만 두 인물의 본질은 완전히 달랐다. 카이사르는 민중의 지지를 갈구했고, 자신의 행위를 끊임없이 정당화하려 했으며, 권력을 죽을 때까지 유지하려 했다. 또한 감정적이고 카리스마적이었다. 반면 술라는 대중의 승인에 무관심했고, 정당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으며, 권력을 스스로 포기했다. 또한 냉철하고 체계적이었다.

이러한 차이는 두 인물의 근본적 차이를 보여준다. 카이사르는 여전히 기존 가치 체계(민중의 지지 = 정당성) 안에서 움직였지만, 술라는 그러한 가치 체계 자체를 초월했다. 니체가 나폴레옹을 위버멘쉬의 선구자로 본 것은 유명하지만, 술라와 나폴레옹을 비교해보면 흥미로운 차이점들이 발견된다. 나폴레옹은 권력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였고, 자신의 업적에 대한 과시욕이 강했으며, 결국 권력 유지에 실패했다. 반면 술라는 권력에 대한 도구적 태도를 보였고, 과시보다는 실질적 성과를 추구했으며, 권력을 스스로 포기하여 '완전한' 생애를 완성했다.

다른 예로, 알렉산드로스는 정복자였지만 파괴자는 아니었다. 그는 헬레니즘이라는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냈지만, 기존 질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았다. 반면 술라는 로마라는 기존 질서를 완전히 해체하고 재구성했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 볼 때, 술라의 독특함은 '창조적 파괴'의 철저함에 있다. 그는 단순히 영토를 확장하거나 제도를 개선한 것이 아니라, 문명 자체의 기초를 재정의했다.


술라가 위버멘쉬적 특성을 보여준다고 해서 그의 모든 행위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프로스크립티오로 인한 수천 명의 희생, 내전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 그리고 공화정 전통의 파괴는 분명히 문제적이다. 특히 술라가 보여준 도덕적 무감각은 위버멘쉬라는 개념 자체가 갖는 위험성을 보여준다. 기존 도덕을 초월한다는 것이 어떤 행위든 허용된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술라의 고독함은 위버멘쉬의 필연적 조건이지만, 동시에 그 한계이기도 하다. 그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 자신도 타인과의 진정한 소통을 추구하지 않았다. 이는 인간 존재의 사회적 본질을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술라가 만든 시스템은 그 자신에게만 최적화되어 있었다. 그의 후계자들은 그의 방법을 모방했지만 그의 철학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결국 술라의 개혁은 장기적으로 로마 공화정의 붕괴를 가속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위버멘쉬적 창조의 근본적 한계를 보여준다. 개인의 천재성에 의존한 시스템은 그 개인이 사라지면 지속되기 어렵다. 진정한 위버멘쉬라면 자신이 창조한 가치가 자신의 존재를 넘어서 지속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을 것이다.


술라의 사례는 현대의 리더십 이론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효과적인 리더십을 위해서는 때로 기존의 도덕적 제약을 뛰어넘어야 하는 상황이 있다. 하지만 그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술라는 이 질문에 대한 극단적인 답을 보여주었다. 그의 성공은 분명하지만, 그 대가 또한 엄청났다. 현대의 리더들이 술라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결단력과 일관성이지, 그의 잔혹한 방법론은 아니다.

술라의 사례는 또한 개인이 체제를 어느 정도까지 바꿀 수 있는가 하는 근본적 질문을 제기한다. 그는 실제로 로마라는 거대한 체제를 개인의 의지로 재구성해냈다. 하지만 그 변화가 과연 지속 가능했는가? 현대 사회에서 제도적 혁신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술라는 양면적 교훈을 제공한다. 개인의 의지로 체제를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는 희망과, 그러한 변화의 한계와 부작용에 대한 경고를 동시에 보여준다.


술라가 보여준 가장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절대권력을 갖고도 그것을 포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현대의 권력론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진정한 권력자는 권력에 매몰되지 않는 자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술라의 사례는 권력 포기가 반드시 책임 회피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보여준다. 그가 만든 시스템의 결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그에게 역사적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술라의 생애를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위버멘쉬라는 개념의 현실적 한계다. 니체가 꿈꾸었던 완전한 위버멘쉬는 아마도 실현 불가능할 것이다. 인간은 결국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술라는 위버멘쉬에 가장 근접한 인간 유형이 어떤 모습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의 성취와 한계는 모두 인간 정신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귀중한 사례다.


술라의 사례에서 가장 중요한 철학적 통찰은 창조와 파괴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이다.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의 것을 부수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엇을 파괴하고 무엇을 보존할 것인가의 선택이 중요하다. 술라는 이 선택에서 너무 급진적이었을 수 있다. 그는 로마의 정치 제도를 혁신했지만, 동시에 로마의 정신적 전통도 훼손했다. 이는 모든 혁신가들이 직면하는 딜레마다.

술라의 사례는 개인이 아무리 뛰어나도 역사의 흐름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가 만든 시스템은 그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고, 결국 그가 구하려 했던 공화정의 종말을 가져왔다. 이는 위버멘쉬적 야망의 근본적 한계를 보여준다. 개인의 의지는 강력하지만, 역사의 복잡성과 예측 불가능성 앞에서는 항상 겸손해야 한다.

니체가 말한 '영원회귀'의 개념이 여기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진정한 위버멘쉬라면 자신의 행위가 가져올 모든 결과까지도 영원히 반복하고 싶어해야 하는데, 술라는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술라와 진정한 위버멘쉬 사이의 거리가 드러난다.

위버멘쉬는 자신의 삶 전체를 무조건적으로 긍정하는 존재여야 한다. 하지만 술라의 은퇴와 문학적 몰두는 오히려 자신의 과거로부터 도피하려는 의지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가 진정으로 자신의 모든 행위를 영원히 반복하고 싶어했다면, 권력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니체 철학의 발전 과정을 보면, '자유로운 정신(freier Geist)'에서 '위버멘쉬'로의 개념적 진화가 나타난다. 자유로운 정신은 기존 가치를 의심하고 비판하는 해체적 존재인 반면, 위버멘쉬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건설적 존재다.

술라는 분명히 탁월한 '자유로운 정신'이었다. 그는 로마의 모든 전통적 가치들을 의심하고 해체했다. 하지만 진정한 위버멘쉬가 되기 위해서는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했다. 단순히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것을 넘어, 인류 전체를 위한 새로운 가치 체계를 제시해야 했던 것이다.

술라의 한계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는 로마를 위한 새로운 질서는 창조했지만, 인간 존재 자체를 위한 새로운 가치는 제시하지 못했다. 그의 창조는 정치적 차원에 머물렀을 뿐, 철학적·정신적 차원으로 승화되지는 못했다.


술라는 위버멘쉬였는가? 이 질문에 대한 최종적 답변은 '아니다'이다. 하지만 그는 위버멘쉬에 가장 근접했던 인간이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통해 위버멘쉬라는 개념의 본질과 한계를 가장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술라가 진정한 위버멘쉬가 되지 못한 결정적 이유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그는 자신의 삶을 영원히 반복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권력 포기와 은퇴는 오히려 자신의 과거로부터의 도피였을 가능성이 높다.

둘째, 그는 탁월한 '자유로운 정신'이었지만, 정치적 차원을 넘어선 보편적 가치를 창조하지는 못했다. 인류를 위한 새로운 철학이 아닌, 로마를 위한 새로운 제도에 머물렀다.

셋째, 위버멘쉬는 고독하지만 인류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술라는 점점 더 고립되어갔고, 결국 인간적 연대로부터 완전히 단절되었다.

넷째, 그의 파괴는 완전했지만, 그의 창조는 불완전했다. 진정한 위버멘쉬라면 파괴한 만큼 창조해야 하는데, 술라는 너무 많이 부수고 너무 적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라의 실험은 실패가 아니었다. 그는 인간 정신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고, 개인의 의지가 얼마나 강력할 수 있는지를 실증했다. 그의 천하패도의 길은 위버멘쉬로 향하는 험난한 여정의 이정표가 되었다.

술라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하지만 그 질문들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가장 중요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인간은 신이 될 수 있는가? 개인의 의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가? 창조를 위해서는 반드시 파괴가 선행되어야 하는가? 절대적 자유를 얻은 인간의 마지막 모습은 무엇인가?

이 질문들 앞에서 우리는 여전히 답을 찾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탐구 과정에서, 술라는 자신이 꿈꾸었던 영원불멸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걸었던 천하패도의 길은 끝났지만, 그 길이 제기한 물음들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 영원성 속에서,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무한한 가능성과 비극적 한계를 동시에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미지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B%A3%A8%ED%82%A4%EC%9A%B0%EC%8A%A4_%EC%BD%94%EB%A5%B4%EB%84%AC%EB%A6%AC%EC%9A%B0%EC%8A%A4_%EC%88%A0%EB%9D%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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