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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써 보는 의사 Sep 17. 2024

사랑이 내게 묻거든, 오블리비언

시간이 없는 사랑에게



사랑이 내게 묻거든

남은 시간이 없다고 말해주오

대신 내가 들었던 소리를 들려주오


우리 처음 만난 엠티 날

햇빛에 부서지던 당신의 웃음소리

당신이 웃을 때마다 진동했던 내 심장소리

그날 밤 당신이

천둥처럼 이 갈던 소리

그때마다 키득키득 내 웃음소리

그 소리에 우리 만났소


떨리던 그날

미처 끄지 못한 휴대전화 벨소리

한숨도 못 잔 빨간 눈, 내 고백에

깔깔깔 당신의 대답 소리


태양도 수줍어

구름 뒤로 얼굴을 숨기던 날 꽃보라처럼 흩날리던 빗소리

함께 눈물 흘렸던 은사님 주례사

첫날밤 같이 부비던 건조한 이불 마찰음

이따금 어둔 이불속

번쩍이던 정전기의 사랑


내가 어느 날 아프다고 했을 때

새벽기도를 다녀온 당신이 삐그덕

현관문 열던 소리

가스렌지 불 켜던 소리

서걱. 서걱. 도마 위 파 썰던 소리


어제저녁 내 더러운

빨래를 삶던 소리

거기 삼켜지던 당신의 흐느낌


그리고 매일 당신이 끓이던 커피 포트

그 속에서 내 마음이 당신으로 온통

들끓던 소리

그 뜨거운 온도로

이 차가운 인생을 견뎌왔다오

그러니 슬퍼는 마오

내 남은 외투가 당신의 남은 삶 지켜주고

내 남은 신발이 당신의

길동무가 되어 줄 테니


그저 조금 일찍

당신이 올 자리를 준비하기 위함이니

슬퍼는 마오


다시 만날 때 돌려드리오

당신이 내게 해준 수많은 키스들

밤마다 당신이 내 뺨에 들려준

그 많은 숨소리들

그때 내 귀에 들리던 시냇물 같은

당신의 속삭임들


그리고 언제나

당신으로 벅찼던 내 가슴

당신의 사랑이 난폭하지 않음에 감사하오


우리,

참 많이 사랑했소









사랑이 떠나도 기억은 영원하다.

영화 ‘오블리비언’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사랑과 기억, 그리고 정체성에 관한 영화로 기억합니다.


그 사람이 사라져도 그 사람의 기억이 남아 있으면 그 사람은 영원히 살아있는 것이 됩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에너지적인 관점에서 정말로 그렇습니다.

오블리비언의 OST 도 참 좋아해서 한동안 당직 서면서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음악은 M83이라는 뮤지션이 담당했는데 그래서 이 사람 음악을 쭉 찾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때론 긴장감 있게, 때론 새로운 우주가 시작되는 듯 설레게, 때로는 웅장한 러브스토리처럼.


지금 이 영화에 대한 기억도 나의 머릿속에 에너지로 저장되어 어느 곳에선가 살아 숨 쉴 것입니다


당신이 나를 기억하는 한 나는 언제까지고 죽지 않고 살아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겐 가족이 중요합니다.


가족은 제 불멸의 비결입니다. 진시황을 만난다면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이 찾던 불멸의 음식이 여기 있다고. 진정 불멸의 음식은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제가 죽어도 제 아내와 자식들은 저를 기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죽어서도 나를 기억해 주는 이는 누구든, 저에게는 가족입니다. 

‘내가 죽어도 네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갈게’ 삼류 멜로 영화 속 대사지만, 적어도 저에게는 '기억'은 '실재'입니다.



그래서 만약 

내 소중한 사람이 옆에서 죽어간다면 

손을 꼭 잡고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내가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



         -2024.09.18.  내 기억의 우주 속 어떤 사연을 건져 올리며.




https://www.youtube.com/watch?v=Fx2QHiX4snI

오블리비언 OST 풀버전



ps. 내친김에 다음에는 음악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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