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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써 보는 의사 Nov 06. 2024

디렉터스 컷

삐거덕거리는 의자 위에서


일과를 마친 저녁 

삐거덕거리는 의자에 앉아

흑막의 모니터를 쳐다본다

하루가 디렉터스 컷처럼 지나간다


편집자의 눈이 날카로운 이유는

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사는 삶이란 어찌

이리 재밌고 아름다운지


오늘도 내 삶을 자르지 못했다

욕심으로 가득 찬 필름


홀로 앉아 보는 지루한 디렉터스 컷

삐거덕 의자 소리가 시큰거린다






 

유난히 삐거덕대는 의자 소리가 거슬렸습니다. 

왜 그런지 몰랐습니다.


컴퓨터 모니터의 검정 화면을 보니 제 얼굴이 상영되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알겠더군요. 왜 그렇게 의자 소리가 유난히 꺽꺽댔는지.

10여 년을 앉아 왔던 의자는 내가 그날그날 살았던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었습니다.

오래된 만큼 마디마디 삐걱댔지만, 아마도 그날 삶의 무게가 꽤나 버거웠나 봅니다. 


살다 보면 물에 젖는 솜 같은 날이 있고, 둘째 아이 개구진 목소리처럼 들뜰 때가 있습니다.

그날은 좀 무거운 날이었나 봅니다. 

그래도 의자는 그날의 몸무게를 있는 그대로 받아줬습니다. 


덕분에 무거운 몸을 누이고 그날 상영된 영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편집 없는 디렉터스 컷

그 적나라한 지루함.

감독의 욕심으로만 가득 찬 영화는 지루하기 마련입니다. 


편집자의 눈으로 하루를 살펴봅니다. 

무엇을 빼지 못하고, 무엇을 지우지 못했는지.



한쪽 귀로 OST가 흐르고 한쪽으로 빠져나갑니다,

삐거덕거리는 의자 위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ICtVYszLvl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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