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학개론 입문 (국민건강총서 제1호)
-만약 '코큐텐이 심장이 좋다더라' 류의 정보를 원해서 들어왔다면, 미안하지만 조용히 '뒤로 가기'를 눌러라. 결국 실망하게 될 테니. 굳이 바쁜 당신의 시간을 뺏고 싶지 않다. 이는 1980년 8월 28일 본 학회에서 제정된 상호 건강 보존을 위한 제1원칙에도 어긋나는 바이다. (공교롭게도 오늘이 본 학회 설립 44주년이다)
일단 거창하게 시작하겠다.
'Health is a state of complete physical, mental, and social well-being and not merely the absence of disease or infirmity'
구글님이 번역한 바에 따르면, '건강이란 단지 질병이나 허약함이 없는 것만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한 상태'가 되겠다.
위 문장은 WHO의 건강의 정의이다. 어떤가? 가슴이 벅차오르는가? 단순히 안 아픈 게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안녕한 상태라니, 말만 들어도 신체와 정신과 사회적 지위가 한껏 고양되는 기분이다.
자, 이제 고무됐던 열기를 잠시 가라앉히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저 멋진 문장이 대체 무슨 말인지 감이 잡히는가? 다시 말해, 당신의 가슴을 달아오르게 하고, 당장이라도 뛰쳐나가서 달리기를 하고 싶게 만드는가?
나는 WHO의 건강의 정의 자체를 까내릴 마음은 없다. 추정컨대, 저 정의는 긴 회의와 장고 끝에 나온 것이 분명하다. 건강을 제대로, 의학적이면서도 인문학적으로 사회인류학적으로 이상적이면서 포괄적으로 엮은 말이기 때문이다.
나는 저 말이 참 멋지다고 생각한다. (옆에 있는 우리 와이프도 가슴이 웅장해진다고 한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내 글을 읽고 그렇다는 줄 알고 나도 모르게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우리 학회 회원은 현재 나와 와이프 둘 뿐이다. 관심 있으면 문의하시라. 회원 가입은 언제든 환영이다)
그러나...
무엇이 됐든 저 말이 당신의 가슴에 미동조차 주지 않는다면 저 말은 당신에게는 그저 '헛소리' 일 뿐이다.
나에게도 와이프에게도 저 말은 10년 이상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했다. 건강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가슴을 치고 들어왔을 뿐이다.
그래서 이 매거진은 조금 다른 길을 걸어갈까 한다.
이 매거진의 목적은 우리 병원 철학과 관계된다. 우리 병원 철학은 이렇다.
건강이란 당신의 삶의 가치관을 되찾아,
당신이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을 걷는 것이다
-일부러 강조하고 싶어 크게 썼다. 미안하다;;
여기서 만약 저게 무슨 뚱딴지고? 싶다면, 지금 당장! 냉큼! 매거진의 첫 번째 글 "왜 낫지 않는 걸까요?"를 읽고 오길 바란다. 내친김에 블로그 글까지 읽고 오면 훌륭한 학생이다.
(아, 이참에 궁금해서 글 제목으로 구글 검색해 보고, 두 번 놀랐다. 첫째는 구글 검색 1페이지에 브런치 글과 병원 블로그 글이 모두 노출됨을 발견한 데서 오는 감격이었고-할렐루야~~~-, 둘째는 저 제목으로 쓴 글이 그렇게도 없구나라는 탄식이었다.)
자, 이제 읽고 왔다면 꺼진 불 보듯 다시 보자. 어떤가 우리 병원 철학은 와닿는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여전히 뭔 뜬구름 잡고 앉았는가 싶을 것이다. 저 문장은 내 가슴을 불사르지만 여러분에게는 아니다. 여전히 헛소리, 부처님 똥 작대기에 불과하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담배.
담배가 백해무익한 걸 아는가? 우리나라 흡연율은 2018 년 22.4 % 에서 2022년 17.7% 로 감소 추세이기는 하나 여전히 적지 않다. 2022년 남성의 30%, 여성의 5% 가 담배를 피운다. 여기서 여성의 흡연자 비율은 과소 평가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흡연 인구는 30-50세 사이에 밀집되어 있다. (질병관리청, 「국민건강영양조사」 2022).
....... 그 외에 타르, 니코틴, 카드뮴 등 수많은 화학적 성분들에 대한 자료 등... 너무 많아 찾아보는 데만도 눈알이 아파올 지경이다. 여기까지만 하자.
자 이제 알겠는가 담배의 백해무익함을?
물론, 임어당(린위탕) 선생이 널리 끽연인간 사상을 설파했지만 말이다. (임어당 선생의 책을 오래전에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으므로 그분의 취향을 존중하는 바이다. 병원 철학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나는 꼭 건강이 몸에 해가 되느냐 마느냐로만 결정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의사의 본분을 잊어서 미안하다. 그리고 자꾸 미안하다고 해서 미안하다.)
자, 그래서 이제 흡연자들이여 분연히 가슴에 손을 얹고 답해 보자. 위의 설명을 듣고 어째 당장 담배 피우던 입술까지 빠싹 타들어가는 느낌이 나는가? 심장병에라도 걸릴 것처럼 가슴이 두근 세근 벌렁거리는가? 아닐 것이다.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설명을 해 보자.
여기에 30대 여자가 있다.
10 살 때부터 시작된 담배로 폐질환이 빨리 와 산소 호흡기를 달고 사는 여자. 긴 갈색 머리칼은 푸석거리고, 화장기 하나 없는 텁텁한 얼굴에, 빛이 나던 눈밑은 이미 까맣게 변해 버린 지 오래이다.
이제 폐 이식을 눈앞에 둔 채, 아이 하나 두고 세상을 떠나게 될 여자는 침대 옆에 앉은 자기 아이를 안고서 풀린 눈으로 카메라를 찬찬히 응시한다.
'담배 끊으세요'
(정말 안타깝지만 실제 사례를 변용했다. 아이를 두고 떠난다는 건 상상만 해도 눈물이 맺힌다.)
이번에는 어떤가? 담배에 대한 수많은 사전적 지식이 와닿는가? 이 짧지만 긴 사연이 와닿는가?
이편이 아마 더 와닿을 것이다. 나를 포함해 인간은 원래 그렇게 생겨 먹었다. 논리보다는 감성이 더 중요한 법이다.
그렇다면 고기는? 고기와 대장암은 명확한 상관관계가 있다.
하루 100g의 붉은 고기를 섭취할 때 대장암의 위험도가 17% 증가한다고 한다.(이건 그냥 구글링 했다)
어떤가? 이제 X꼬가 간질간질해지는가?
그렇다면 정제 탄수화물은? 콘시럽은?
좌식 생활, 운동량 부족으로 인한 sitting disease(의자병)는?
추가로 sitting disease의 한 증상에 대해 늘어놓자면, 바야흐로 변비 인구는 늘고 늘어, 이젠 아이들마저 의자가 변기인지 변기가 의자인지 구분 못하는 변기인식장애-우리 학회가 발견한 병명이다-가 늘고 있다. 참고로 변기인식장애는 X꼬 지면 인식술로 70% 해결이 가능하다. X꼬가 지면과 가까워질수록, 오래 마주할수록 증상 경감이 크다는 우리 학회의 보고가 있다. (다만 너무 오래 앉았다 일어날 경우 10분 정도 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으니 이 점 유의 바란다)
그에 보태, 학회에서 만든 대장 애호 식단으로 변경할 시, 어지간하면 3주 내에 99% 완전관해에 도달하며, 이를 3개월 이상 유지할 경우 cure(완치) 됐다고 선포한다. 자세한 사항은 추후 공개하도록 하겠다.
자, 어떻게 이제 푹신한 의자에서 엉덩이가 떨어지는가? 일어나서 경배하는 자에게 쾌변의 기적이 임하길.
아, 그렇다면 이쯤에서 한 마디 하고 싶은 분이 있을 것이다. 나는 담배는 안 피고, 잠도 잘 자고, 똥도 잘 싸고 간식도 안 먹고 잘 사는데?
축하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우리 학회 기준 상위 1% 최상위 건강자에 해당하겠다. 그렇다면 당신도 역시 '뒤로 가기'를 눌러라. 당신은 그냥 지금처럼 잘 먹고 잘 살면 된다.(행여 내가 하는 말이 기분 나빴다면 미안하다, 순수하게 받아들여라 진심이다, 정말로 잘 먹고 잘 살면 된다.)
그래서 본 매거진은 조금 다른 길을 선택하려고 한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의 건강학개론 버전쯤으로 생각해 줘라.
모든 숲 속 길이 마찬가지이지만, 걷기 전부터 애초에 길인 곳은 없다. 그저 잡초만 무성할 뿐이다. 그러나 풀섶을 헤치고 마른 나뭇가지를 밟고, 돌에 정강이도 까이면서 뱀도 쫓고 나아가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언젠가는 오솔길이 될 것이고, 행여 운 좋게 누군가라도 손 잡고 같이 걸어 준다면 큰길이 될 수도 있는 노릇이다. 헛된 희망일지언정 가슴에라도 품어 보고 가려고 한다. 알고 있다. 고작 한 줌의 글자들이 모여 무슨 대단한 힘을 발휘하겠는가마는 그래도 부질없는 노력이나마 해보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다.
일단 기본 전제는 '건강이란 당신의 삶의 가치관을 되찾아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을 걷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 가정에 근거해 논의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그래서 학회의 사명을 엄숙히 선언하는 바이다.
아, 사명감이 치솟아 오른다.
우리의 나름의 목적은 가급적 지식 전달에만 그치지 않으려는 것이다. 노력해 보겠다. 또 미안하지만 효과 없을 시 100 % 환불 보장은 옵션이 아니다. (학회 사정이 넉넉해지면 손톱의 때만큼 고려해 보겠다)
사실 글만으로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책이 삶을 변화시켰다는 상투적인 표현을 심심찮게 듣긴 하지만(나만 그런가?), 확률상으로 넉넉히 쳐 줘도 1/10000쯤 되지 않을까? 물론 지금 브런치의 독자들은 좀 다를 수도 있겠다. 나를 비롯해 대부분이 문자도착증이 있는 사람들이니까(이것도 나만 그런가... 이 지독한 불치병;;). 그래도 이러한 시도가 조금이나마 의미 있으리라 믿고 싶다. 그래, 무슨 생각하는지 잘 안다, 쯧쯧쯔, 그냥 믿게 둬라. 착각일지언정, 쇼펜하우어의 말마따나 인간은 행복이란 커다란 미망을 품고 사는 존재이지 않은가? 그리고 무엇보다-사실 이게 더 큰 이유인데, 이 글을 연재함으로써 내가 배우는 게 분명 더 많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앞으로 병원을 어떻게 꾸려나가고 무엇을 보강해야 할지도 더 잘 알게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항상 그렇듯 좀 길어졌다. 이제 드디어 이번 건강학개론의 가장 중요한 질문이자 숙제를 던진다. 이것이 이번 학습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며, 동시에 이 연재가 끝나는 날까지 여러분이 반드시 풀어야 할 화두이다. 정답은 이 연재가 마무리될 때쯤 알게 될 것이다.
각자의 입장에서 건강이란 무엇인지 꼭 한 번씩 숙고해 보기 바란다. 만약 이것이 오프라인 수업이라면 A4 용지 한 장에 글자 크기는 10쯤으로 해서 빽빽이 채워 오라는 과제를 냈을 것이다.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해보자. 못하겠거든, 나름의 답변을 간단하게 한 문장으로 엮어 답글로 남겨봐라. 그 정의와 그에 따른 이유가 충분히 개연성 있으며, 개인사에 긴밀히 얽혀 있다면 그 학생은 앞으로의 수업은 쭉 짼다 해도 A+ 를 수여하도록 하겠다. 고백건대, 학창 시절 나는 언제나 융통성 있는 선생이 그리웠다. 왜 그런 선생님은 영화에만 있는 걸까? (선생님들 미안합니다. 사실 제 주례 봐주신 분이 고교 은사님이십니다. 선생님들 사랑해요^^)
안타깝게도 건강을 잃기 전에는 건강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모든 학문은 정의가 중요하다. 학교 다닐 때 교수님이 그런 얘기를 했다. 공부는 결국 terminology(용어) 싸움이라고. 자신이 생각하는 건강의 정의나 이미지가 명확하지 않다면 건강 관리 역시 모호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참에 건강의 정의를 세워보자.
나는 여러분의 삶이 좀 더 주체적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인터넷, 수많은 책들, 유튜브, 정보들이 난무한다. 그리고 제가끔의 타당한 이유들이 있다. 물론 걔 중에는 거짓된 정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개는 각자 나름의 근거를 가진 정보들이다. 다만 한쪽으로 치중되어 있을 뿐이다. 지금부터 내가 전달하려는 내용들도 사실 치우침에서 자유롭지 않다. 나 역시 내 기준에 따라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어차피 모든 데이터를 공평하게 제시하는 건 애당초 불가능하다. 다만 그 정보들을 여러분이 사고할 수 있기를 바란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차피 어떤 정보든 쓰레기더미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 매거진을 끝까지 구독하고 났을 때 여러분의 삶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조금 더 전진하기를 바랄 뿐이다. 아니, 달라질 기미만 있어도 성공한 것이다.
미리 얘기하자면, 다음 글은 '건강의 삼요소'를 다룰 예정이다. 훌륭한 학생들이 늘 그렇듯 예습을 해오면 본인 건강에도 유익할 것이다.
명리학에서 큰 병은 팔자소관이고 작은 질환은 관리 소홀이라는 말이 있다. 의학적으로 바꿔 말하면 큰 병은 유전자의 문제이고, 작은 질환은 망가진 생활습관 때문이다라고 해석해 볼 수 있다.
허나 신빙성을 담보할 수 없는 어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자연인은 코끼리처럼 자기 죽을 때를 알고 자기 머리 누일 곳을 정한다고 한다. 물론 내 눈으로 확인한 바는 없으니 증거를 대라고 눈을 부라리지는 마시라. 다만 나 역시 자기 환경과 스스로의 생활 습관을 충분히 조절한다면, 아름다운 자연사도 가능하리라 믿을 뿐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다. 숙제는 꼭 잊지 말도록!!!
cf. 앞으로 이 책은 모진 말과 공포와 협박과 이따금 위로와 회유, 더 잦은 질책으로 가득할 것이니 새삼 경고하는 바이다. 부디 상처받지 말기를.
참고문헌 (문항마다 각주는 달지 않아 또 미안하다. 일단 각주를 어떻게 다는지도 모르겠고, 이 매거진은 그냥 매거진일 뿐 학술 논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1.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Tobacco-related Mortality. Accessed: March 3, 2022. https://www.cdc.gov/tobacco/data_statistics/fact_sheets/health_effects/tobacco_related_mortality/ (페이지가 바뀐 것 같다;; 어차피 찾아볼 분은 거의 없을 줄로 믿는다)
2.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Fact Sheet Health Effects of Smoking. 2020. Accessed: December 2, 2020. https://www.cdc.gov/tobacco/data_statistics/fact_sheets/health_effects/effects_cig_smoking/index.htm
3. World Health Organization. Tobacco. Accessed: March 3, 2022. https://www.who.int/news-room/fact-sheets/detail/tobacco#
4.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Health Effects, Smoking and Tobacco Use. Accessed: march 3, 2022. https://www.cdc.gov/tobacco/about/?CDC_AAref_Val=https://www.cdc.gov/tobacco/basic_information/health_effects/index.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