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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자일보 Apr 23. 2023

죄를 죄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안녕하세요. 케이입니다. 오늘은 종말론적 신앙관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위한 ‘죄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죄는 기독교 신학에서 수세기 동안 중요한 문제로 다뤄지고 있는 주제다. 기독교는 성경적인 신앙관으로 인간이 원죄에 의해 악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악함은 쉽게 이야기하면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문제이다. 기독교는 신본주의를 지향한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왔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기준을 따르기 위해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포스트 모더니즘은 인간이 그 ‘기준'을 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기준은 사실 애매모호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 한 예가 성에 대한 인식이다. 

점차적으로 한국의 미디어에서도 동거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있다. 관련 티브이 프로그램이 많이 나오고 있고 결혼의 신성함을 부정하는 듯한 내용의 프로그램이 많아지고 있다. 


즉 최근 몇 년간 점점 더 성경적 의미에서의 죄를 죄로 인식하지 않는 성향이 증가하고 있다. 이는 신학적으로나 실용적으로 여러 문제를 야기한다.


죄를 죄로 인식하지 않으면 발생하는 주요 문제 중 하나는 책임감 부재이다. 특정 행동이나 행동 양식이 죄인 것으로 인식하지 않으면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의식을 느끼지 않게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결혼의 신성함을 무시하고 책임의식이 없다면 결혼의 열매인 사랑 없이 아이들이 클 수도 있고 심지어 버려질 수 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종국에는 도덕적 상대주의를 일으킬 수 있는데, 문화 자체가 좀 더 감각적인 것 만을 추구하고 물질주의로 더욱 가게 된다. 


성경에는 헛되고 헛되다는 말씀이 나온다. 그리고 이 성경 구절을 쓴 기자는 당시 세계 최고의 부자인 솔로몬이다. 현재 세계에서 본다면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정도의 부를 이룬 왕이었다. 

그래서 여러 이웃나라에서 그 나라의 부강함과 솔로몬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 솔로몬에게 몇 십 킬로에서 몇 백키로의 금과 은 등 각종 선물을 주기도 하였다. 단지 솔로몬과 대화를 나누며 지혜를 얻기 위해서였다.


이런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던 솔로몬도 종국에는 헛되고 헛되다는 말을 남기며 “내 마음에서 나와서 내 눈이 보는 것에 대하여 나의 마음에 기쁨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보아서, 이것도 헛되고 바람을 쫓는 것이 될 것을 깨달았노라”라는 말을 남겼다. 


이미 그 당시의 물질의 끝판왕이었던 솔로몬은 그 물질제일주의의 헛됨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을 후손들을 위해서 전도서라는 책으로 남긴 것이다.


본 저자는 ‘부'는 여러 요소라고 매번 강조하였다. 부에는 물질적인 요소, 정신적인 요소, 관계, 사회적인 요소, 영성적인 요소 등 많은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만약 부를 위해 하나의 요소에만 집착하거나 영성이 들어있지 않다면 그 부는 ‘가짜 부' 또는 ‘헛된 부'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독자들도 한 번 내 마음의 중심이 무엇이고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 다시 한번 점검하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 �


*본 저자는 신학을 전공한 전문가가 아니며, 주관적인 해석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언급된 어떤 교회나 지명은 실제 이름이나 지명이 아님을 밝힙니다.


사진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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