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소녀였던 내가 쓰는 글
약 2시간 상영 내내 엄마와 엄마들이 생각났고, 이모와 이모들이 떠올랐던 영화가 있었다. 바로, 이혁래 김정영 감독의 다큐 '미싱타는 여자들'이었다.
이 다큐는 1970년대 평화시장에서 시다 혹은 여공으로 일을 했던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평화시장에서 일했던 다양한 여성 노동자들이 등장하지만, 다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이숙희, 신순애, 임미경 어머니의 이야기였다. 당대 소녀 노동자들이 어떤 노동환경에서 일했는지, 얼마를 벌었는지, 얼마나 혹독한 분위기였는지 드러났다.
하루 15~16시간 일을 하고, 추석과 설날엔 2주간 작업장에서 계속 먹고 자며 일만 했다고 한다. 작은 다락방에 환풍이 잘 안 돼서 먼지가 정말 많았고, 특히 여름에 선풍기를 틀면 날개가 안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백열등 아래에서 계속 일만 하느라 해가 있는 곳으로 나오면 눈을 뜨기 어려우셨다고 한다.
당시 소녀였던 어머니들은 여자라서, 남자들을 공부시키기 위해서 일터로 내몰렸다. 자신의 꿈을 묻어둔 채 말이다.
그런 여성 노동자들을 희망으로 물들인 곳이 있었다. 바로 청계피복노동조합이 평화시장 노동자들을 위해서 1975년 문을 연 '노동교실'이었다. 어머니들은 이곳에서 통장 만드는 방법도 알게 되고, 한자도 쓸 줄 알게 된다. 무엇보다 노동자들이 일하는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 것이었는지도 깨닫게 된다. 근로기준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하지만 노동교실은 폐쇄를 앞두게 됐다. 당시 정권에게 이곳은 미운털이었다. 노동교실에 민중 운동가 함석헌을 초청하고, 이소선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른다는 이유에서였다. 노동자들은 노동교실 폐쇄를 막기 위해 투쟁했다. 치열했다. 이 투쟁은 바로 1977년 9월 9일 일어난 노동 교실 투쟁이었다.
당시 투쟁에는 시다와 여공들이 대다수였다고 한다. 좀 더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배우기 위해서 싸운 소녀들의 용기에 마음이 뭉클해진다. 당시 10대 청소년이었던 여성 노동자들에게서 어쩜 그렇게 큰 용기가 날 수 있었을까.
보통 사람들은 평화시장의 전태일만 기억한다. 하지만 다큐를 보다 보면 전태일 곁에는 무수히 많은 전태일들이 존재했음을 인지하게 된다.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를 본 후 추천사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전태일 말고도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이름들.
그녀들의 기억을 하나하나 불러내어 정성스레 축복해 주는 영화적 손길.
빛과 어둠 속에서 눈물도 웃음도 하나로 뒤섞이는 라스트에 이르르면,
누구나 다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 다큐멘터리를 왜 꼭 극장에서 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다큐 속 어머니들을 보면서 이상하게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엄마를 보면서 가끔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엄마처럼 살기 싫고, 엄마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엄마처럼 살기 싫었던 이유는 억울하고 부당하고 녹록지 않은 상황도 이 악물고 견뎌냈다는 점 때문이었다. 엄마와 엄마들이 견뎌온 삶의 무게를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도 없다. 나는 자신이 없다. 나는 못 할 것 같다.
엄마처럼 살고 싶었던 이유는 고단의 시간을 뛰어넘어 강인한 삶의 근육을 키워내셨다는 점이다. 엄마들은 말했고 발언했다. 용기 냈고 행동했다. 엄마들처럼 강한 사람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미싱타는 여자들'처럼 강한 분들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그분들을 향해 치는 박수는 동시에 나에게 치는 박수이기도 했다.
일 하는 것이 너무 힘들고, 앞으로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용기가 필요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