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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Jan 04. 2024

가족과 거리두기 중입니다.

전화하지 말라고!

“그게 가족이지 ”

“가족이 그래도 돼?”

“가족이니깐”

이런 말들을 들으때면, 나는 가족들이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 생각을 해보곤 한다.


없어서 불편하고 있어도 그만이라는 생각보단,

나 혼자 가족들 좁은 틈에 껴있는

.

.

계속 흘러가는 강물을 거슬러

가족이라는 땅에 도착을 해야 하는

하지만 거센 물살에 계속 닿을 수 없는

떠있는 돛단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차라리 혼자가 편한 느낌,

혼자가 편해지면

다른 가족들의 감정과 시선을 신경 안 써도 되니깐

받는 게 없으면 줄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편한 거라고 생각했다.


adhd판정받기 전부터 나는 괴로웠다.

우울했고 불안했다. 의심만 가득한 내 감정들이

병원에서 판정을 받으며 이 세상에 존재한 것이 되었다.

나의 허상이 아니었다.


엄마가 우울증이라고 병원을 다닌다는 소식을 언니를 통해 들었을 때 이유 없이 화가 나고 짜증이 났다.

작은언니가 “너 왜 그래? 엄마가 우울증이래, 우리가 신경 써야지 ” 이소리가 너무나도 귀에 거슬리게 싫었다.


나도 왜 이렇게 짜증이 날까 나 스스로도 내가 못됐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어째서? 엄마가 왜?

이런 나도 버티고 있는데

왜 그렇게 나약한 소리를 하는 거야?


나를 이렇게 만든

엄마도 조금은 책임이 있는데

엄마가 어째서 나보다 아프다고 하는 거지?


이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올해로 결혼 한지 10주년이 되었다.

결혼하고 1-2년이 지났을 때쯤이었나 신랑의 사업이 타격을 받으며 내년 집세를 걱정할 때쯤이었다.


대출, 빚 이런 걱정 없이 온실 속 화초 같은 경제관념

(경제관념만)을 가지고 살던 내가…

신랑의 사업 때문에 대출도 받고 , 집세 걱정을 할 때

엄마는 그런 건 신랑이 책임져야지, 남편이 알아서 할 거라고 했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내게 했을지 조금은 짐작이 가지만, 엄마의 거절 같은 태도는 지금도 내겐 큰 상처였다.

나에게 비빌언덕이라곤 엄마 아빠 밖에 없는데 어째서 내가 이렇게 힘든데 안 도와주는 거지, 엄마아빠가 가난한 사람이었으면 마음이 편했을 것 같았다.


그 이후로도

결혼 안 한 동생은 집에 눌러 붙어살며 4천이 가까운 차도 (돌려받는다고 하지만 알 길이 없음) 사고, 동생의 반려견의 치료비로 천만 원이 넘는 돈도 (엄마는 뜯어갔다고 하지만) 쓰고…

쌍둥이인 나로서는

결혼한 자식은 내놓은 자식인 거야? 여러모로 섭섭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돈의 지원을 떠나,


차라리

결혼해 살다 보면

힘든 일도 생겨 그럴 때 엄마아빠가 도울 수 있는 건 옆에서 힘이 되어줄게,


이런 말이라도 해줬다면 돈의 지원을 떠나 힘을 낼 수 있었을 것 같다.


작년 여름이 끝나갈 때쯤이었나 adhd 때문에

약도 먹고 지내는 중 구구절절 설명하기에 긴이야기지만 엄마에게 또 섭섭한 감정을 느꼈다.


그러니 중2병의 반항, 미움, 분노, 슬픔 감정들이

밀물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의 딸의 나이쯤이었을 때 구안와사에 걸렸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눈을 감을 때마다 얼굴, 입꼬리가 씰룩거리며 올라간다.


어느 날 맘먹고 셀카모드로 촬영 후 내 얼굴을 재생해 봤는데…

눈을 감을 때마다 생각보다 심하게 망가지는 내 얼굴을 보니 끊임없는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나라면 …내 딸이 이랬음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고칠 수 있을 때까지 고쳤을 텐데 엄마는 어째서 나를 포기했을까


어릴 적 부러진 앞니도 사춘기를 견디는 동안 어떻게 그냥 뒀을까,

내가 큰언니처럼 공부도 잘하고 말 잘 듣는 아이였다면 이름 모를 간판도 없는 영업허가 안 받은

가정집 치과가 아니 좋은 곳에 데리고 가서

어렸을 때부터 앞니를 고쳐줬을까.

나도 환한 미소를 가진 사진을 어렸을 때 부터 가질 수 있었을까


하나부터 열까지 멈추지 않는 삐둔마음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래 이때는 먹고살기 힘든 때였지 그래서 그랬을 거라 위안을 삼지만 위안도 찰나로 끝난다.


우리 집 사람들은

비밀이 없다 그래서 작은언니 동생에게 이야기하면 엄마에게 들어가는 건 당연한 순서


어는 날은 우리 집 사람들로부터 도망가고 싶어

수차례 부재중에도 엄마전화를 안 받았는데

엄마에게 100만 원이라는 돈과  맛있는 거 사 먹으라는 카톡이 왔다.

나는 이 돈이 너무 싫었다.

다른 날 나였다면


“어머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감사하옵니다.”

넙죽 받았을 텐데


이돈 받고 내 감정을 떨꿔내라는 거야

뭐야


그 돈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계좌번호를 달라고 했지만


엄마는 …


답장도 마음에 안 들었다.

‘그냥 그 돈 써라, 연락 안 할게.’


이게 뭐야


‘마음이 괜찮아질 때까지

엄마가 기다릴게 ‘

라고 해줘야지

진짜 하나부터 끝까지

마음에 안 들었다.


그리고 나는 100만 원을 쓸려고 딸아이와 함께 당일치기 서울여행을 떠났다!


가족과 거리두기는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다.

어느 누군가는 도망가는 건 현명하지 않은 방법이라 하지만 지금의 난 그냥 내 마음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런지 마음도 많이 편해졌다.

내 마음 편한게 최고이닌깐,

나부터 생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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