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진화는 실패로부터
인류의 진화는 실패로부터
최초의 인류는 나무 위에서 살았다. 그러다 환경의 변화로 숲이 사라져 가자 터전을 나무 아래, 땅으로 옮겨야 했다. 처음 땅을 디딘 인류의 삶은 실패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나무 위와 땅을 반복해서 오르내리고 잡아 먹히고, 굶어 죽고, 생존에서조차 온갖 실패를 거쳐 인류는 마침내 땅에 적응했다.
나도 그랬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 나는 나무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최초의 인류였다. 감히 나는 교사였던 아버지처럼 살게 되리라 생각했다. 직장을 다니고(당시에 취직은 쉬웠다.) 결혼하고, 저축하고, 아이를 키우고, 집을 사고, 결혼시키고, 정년퇴직하고, 퇴직금으로 노후를 지내다 70~80대에 생을 마감하는.. 그렇게 안정된 삶.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최초의 인류에게 숲이 사라졌듯이 나의 인생에도, 아버지 세대 안정은 사라졌다. 1997년 IMF로 대기업, 은행은 파산하고, ‘정년퇴직’, ‘평생직장’이라는 단어는 서서히 침몰하고 직장은 더 이상 나를 원하지 않았다. 조기퇴직, 명예퇴직 등 낯선 신조어 아래 수많은 실업자가 탄생하였고, 최초의 인류처럼 나약하기 그지없는 실패가 내 인생을, 그리고 나와 같은 시대를 사는 베이비 부머 시대를 덮쳤다.
그래도 우리는 진화했다. 금을 모으고, 외국으로 나가고, 온 국민이 IMF 탈출을 위해 고통을 감수하며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하는 듯했다. 나는 중국으로 건너가 사업을 시작했고, 핀란드, 요르단, 몽골 등 여러 나라를 두루 거쳐 온갖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며 직장인에서 사업가로 진화해야 했다. 쉽지 않았지만 생. 존. 을 위해서 나는 실패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 직장인과 사업가는 완벽히 다른 삶을 나에게 요구했다.
직장인은 정해진 일을 하는 사람, 사업가는 일을 만들어내야 하는 사람
직장인은 정해진 급여의 안정을 지닌 사람, 사업가는 정해지지 않은 무한의 자산을 좇는 사람.
직장인은 정해진 시간과 급여를 맞바꾼 사람, 사업가는 내 모든 시간을 투자하여 자금으로 환원하는 사람.
직장인은 말 잘 듣는 사람, 사업가는 반기를 들고 혁명을 일으키는 사람
직장인은 두루두루 잘 어울리는 사람, 사업가는 고립 속에서 치열하게 자신과 싸우는 사람
직장인은 기술과 노동을 파는 사람, 사업가는 경험과 창조를 파는 사람
직장인에서 사업가로 변해가야 하는 나는 완벽히 나무 위의 삶에서 땅 위의 삶으로 내려와야만 했다. 그렇게 서서히 적응.이라는 것을 하면서 진. 화. 해야만 했다.
이집트 동북부로부터 메소포타미아 이란고원까지 이어지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시작된 농업혁명 또한 실패로부터 진화했다. 수렵과 채집에 의존해 살던 인류는 작물 재배를 시작했고 이는 정착 생활로 진화되었다. 그러나 정착 생활은 수렵 생활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고, 이는 집단생활이 더 유리한 삶으로 진화되었다. 또한, 더 많은 작물 재배를 위해서 개간을 해야 했고, 노동자는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끊임없는 노동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자연재해를 만나면 한해 지은 농사는 수포로 돌아가 집단의 생존과 유지가 어려웠을 테고 이러한 위기는 전쟁으로 이어졌고 전쟁의 승리자는 더 많은 소유를 하게 되었다.
2000년대 초 몽골에 유례없는 폭설과 한파로 2,000만 마리의 가축이 폐사한 일이 있었다. 2021년에도 폭설로 인해 내몽골과 몽골의 가축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가축을 잃은 유목민은 도시로 가서 도시빈민을 형성하게 되고 이는 지금까지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가면 도시를 둘러싼 구릉 지역에 게르를 설치하여 도시가 게르로 둘러싸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도시로 넘어온 유목민들이 형성한 거처인 것이다. 겨울철이면 게르로부터 나온 석탄 연기가 분지인 울란바토르 전체에 쌓여 30m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스모그가 심할 정도다.
농업혁명 이후 수천 년이 지난 지금의 인류도 자연재해를 만나면 여전히 생존에 타격을 입는다. 자연은 위대하다. 인간은 나약하다. 인간은 스스로 자연과 싸워가며 진화해야 했다. 그렇게 인간의 뇌는 점점 발달해 가고 인간군집은 서서히 세력을 확장해 갔다.
나도 마찬가지다. 직장을 그만두고 시작한 사업으로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사업을 펼쳤지만 해당국의 전쟁, 정책의 급작스러운 변화, 세계 금융위기 등은 나의 예상 밖에서 나와 무관한 이유로 나의 사업을 망가뜨렸다. 내 탓이 아니었다. 경제 탓, 전쟁 탓, 탓할 것들이 너무 많았지만 탓해봤자 소용없었다. 나 같은 소시민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숱한 경험을 거치며 스스로 발전, 진화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생존의 위협은 고통스러웠다.
실제, 2011년 몽골에서 건설공사로 한창 잘 나가다가 한국으로 돌아올 때의 나의 모습이 바로 그랬다. 당시 교량 설치공사를 대기업으로부터 수주받아 진행한 나의 사업이 대기업이 부도나자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이는 자연재해로 농사를 망치고 전쟁터에 끌려가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 농민과 다를 바 없었고 폭설로 인해 몰살당한 가축을 뒤로하고 도시빈민의 삶을 선택해야만 했던 몽골의 유목민, 그 모습이었다.
농업혁명의 허구 속에서도 인류는 더 많은 잉여를 통해 농업의 진화를 이루어냈고 몽골의 자연재해는 다른 유목민들에게 새로운 산업화의 기회를 제공했듯이 외부 환경에 의해 직격탄을 맞은 나도 나에게 또 다른 도전을 부여해야만 했다.
이제는 나와 상관없는 그 어떤 일에서도 내 인생이, 내 가족의 삶이, 내 미래가, 내 꿈이 타격을 받으면 안 될 정도로 더 굳건하게 인생을 세워놔야겠다는 현실적인 자각을 갖게 했다.
열심히 일했고 죽어라 고생한 나는 이제 외부 환경에 탓할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어야 한다.
그렇게 나에게 벌어진 사태를 나 스스로에게서 원인을 찾고 다시 도전하며 진. 화. 해야만 한다.
'중년이지만 나는 배웁니다'는 매주 토요일 6AM에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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